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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약국에 1960년대 잡지까지...'향수' 가득한 영주의 사랑방

입력
2023.02.18 05: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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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경북 영주 스쿨서점
1954년 문 열어 70년째 영업 중
한때 제천까지 5개 지점 낼 정도로 번창
2021년 중기부 '백년가게'로 선정
감성적 출판문화활동 지속 추진

송태근(오른쪽) 경북 영주 스쿨서점 대표가 부인 안은숙씨와 진열한 책을 살펴보고 있다.

송태근(오른쪽) 경북 영주 스쿨서점 대표가 부인 안은숙씨와 진열한 책을 살펴보고 있다.

대형 서점의 공세에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다. 힘든 파고를 넘나 했더니 전자책이 등장하고 온라인 서점이 대세가 됐다. 전국의 주요 도시마다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라는 기능을 넘어 만남의 장소로 상징됐던 서점들이 시대의 변화를 배기지 못하고 대부분 문을 닫았다. 지방 중소도시 서점은 더하다. 갈수록 척박해지는 환경에서 70년을 버텨 온 인구 10만 도시의 서점이 있다. 6·25전쟁 직후인 1954년 문을 연 경북 영주의 스쿨서점이다.

인구 10만 영주에 경북 최장수 스쿨서점

경북 영주 스쿨서점 1층 모습.

경북 영주 스쿨서점 1층 모습.

스쿨서점이 자리한 곳은 영주동 최대 번화가다. 길쭉한 삼각형 모양의 교통섬 한가운데 분수대가 있어 분수대길로 불리는 대로변 3층 건물 1층에 청록색 간판을 따라 들어가면 빽빽하게 들어찬 책들이 손님을 맞는다.

130㎡ 규모의 1층은 신간이나 잡지, 참고서 등이 진열돼 있다. 그중에서도 각종 질병에 대한 치료법 등을 소개한 책을 모아둔 '종이약국'이 눈에 띈다. 종이약국은 각종 질환과 치료법 등을 소개한 책을 모아둔 코너에 붙인 이름이다.

전문서적이 주로 비치된 2층에는 1960~1980년대 사이 발행된 참고서와 여성잡지, 교양서적에 눈길이 간다. 추억의 공간이다. 스쿨서점 창업자로부터 물려받은 자료에 송 대표가 틈날 때마다 수집한 것까지 모여 이른바 '희귀템'들이 즐비하다.

2층 한쪽에는 지역민을 위한 문화공간도 마련돼 있다. 20여 명이 둘러앉아 독서토론회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아담한 공간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개점휴업 상태지만, 조만간 문화사랑방으로 다시 기지개 켤 날을 기다리고 있다.

참고서보다 일반 책으로 승부 차별화

경북 영주 스쿨서점 2층에 마련된 추억의 책 진열 모습.

경북 영주 스쿨서점 2층에 마련된 추억의 책 진열 모습.

영주중앙초와 영주초, 영광중, 영주여고, 영광여고 등이 반경 1㎞ 내에 위치해 있다. 얼핏 학생들을 위한 참고서 위주로 명맥을 유지하는 지방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스쿨서점에 구비된 책 중에서 참고서 비중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이 밖에 단행본과 아동도서 각 20%, 일반 수험서와 취미 서적 각 10%, 잡지 등 기타 20% 구비 원칙을 고수한다. 이 때문에 학생보다 직장인과 주부 등 일반인들 고객이 많다. 송태근(57) 스쿨서점 대표는 "서점이 없는 봉화군 지역 노인들 중에서는 주기적으로 약초와 건강, 자연치유나 인문 관련 서적을 구입한다"며 "인기있는 책만 대량으로 구비하기보다 다양한 종류의 책을 보유하고 있는 게 매출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스쿨서점은 2006년 작고한 김휘룡씨가 1954년 1월 20일 문을 열었다. 전쟁 직후였지만, 당시에도 영주의 교육열은 뜨거웠다. 서점이 3, 4곳 더 있었지만, 대부분 형편이 어려워 헌책을 주로 취급했다. 그중에서도 스쿨서점은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고, 신간 위주로 판매를 했다. 1989년부터 부친으로부터 서점을 물려받아 운영했던 시태(78)씨는 "창업 당시 몇 군데를 전전하다 나름 사업안목이 좋았던 선친께서 시내 한복판에 터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스쿨서점은 승승장구했다. 한때 경북 안동과 의성, 봉화는 물론 충북 제천까지 지점을 냈다. 시태씨가 서점 운영에 참여한 1972년쯤 지금 자리에 새 건물도 짓고, 에어컨을 설치해 고객들이 편하게 책을 읽고 고를 수 있도록 했다. 시태씨는 "영주 출신으로 지금은 작고하신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도 서점 단골이었다"고 말했다.

빅데이터 활용해 책 진열도

스쿨서점 2층 창가에 경상북도로부터 받은 노포기업 증명 기념패.

스쿨서점 2층 창가에 경상북도로부터 받은 노포기업 증명 기념패.

2000년 이후 중소 서점 경영 상황이 악화되면서 시태씨도 서점 존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때 다른 서점을 운영하던 송 대표의 열정이 눈에 들어왔다. 시태씨의 제안에 송 대표는 고민을 거듭했다. 권리금 없이 보유하고 있던 책만 분할 조건으로 인수를 결정했다. 2010년 1월부터 송 대표가 서점을 이어 받아 부인 안은숙(53)씨와 14년째 운영하고 있다. 송 대표는 월별 도서판매 빅데이터를 활용해 도서를 진열한다. 신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는 참고서, 가정의 달인 5월에는 아동 도서 등을 전면에 내세우는 식이다.

1층 '종이약국'처럼 서점을 찾는 손님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코너를 만든 것도 송 대표의 아이디어다. ‘선비의 고장’ 영주를 널리 알리기 위해 지역 선비의 도서를 수집∙전시∙판매하는 코너도 새로 만들 예정이다. 사진으로 보는 영주의 역사와 북 큐레이션, 향토작가 도서 전시판매 등도 준비 중이다.

송 대표의 노력 덕분에 2014년과 2015년 두 번 연속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후원하는 지역서점문화활동지원사업체로 선정됐다. 2014년엔 도서문화진흥에 기여한 공으로 경북지사 감사장도 받았다. 2018년부터는 문체부 후원으로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문화활동 사업체로 선정돼 영주시민들이 함께하는 독서문화활동을 펼치고 있다.

2021년에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하는 백년가게로 선정됐다. 송 대표는 "어린 시절 서점을 찾았던 고객이 어른이 돼 자식의 손을 잡고 다시 찾고,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수십 년 만에 고향을 찾았다가 서점 간판을 보고 들르곤 한다”며 “제 손을 꼭 잡고 '추억 어린 장소가 그대로 있으니 정말 반갑다'고 환하게 웃을 때 서점을 인수하길 잘했구나 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단골 손님들의 방문이 큰 힘이라는 송 대표는 100년 서점이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인터넷 등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서점이 없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감성을 키우는 독서문화를 활성화해, 100년 서점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경북 영주 스쿨서점 위치. 그래픽=강준구 기자

경북 영주 스쿨서점 위치. 그래픽=강준구 기자




영주= 글ㆍ사진 이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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