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째 공항 출국대기실에서 생활
패소한 러시아인은 2중 국적자

14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법 앞에서 공익법센터 어필 이종찬(오른쪽) 변호사가 강제징집을 피해 한국에 온 러이사인 청년들의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 강제징집을 피해 한국으로 건너온 러시아인 3명 중 2명이 난민 인정심사를 받게 됐다. 이들은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뒤 난민심사를 신청했으나, 출입국 관리당국이 거부해 수개월 동안 공항 안에서 생활했다.
인천지법 행정1부(부장 이은신)는 14일 30대 A씨 등 러시아인 남성 2명이 법무부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을 상대로 제기한 난민 인정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징집 거부가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고, 이로 인해 박해 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 '난민 인정 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처분은 위법하고, 심사를 통한 구체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판결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키르기스스탄 이중국적자인 B씨에 대해선 "제2국적국이자 거주국인 키르기스스탄에 보호를 요청하거나, 보호 요청이 거부된 적 없다"며 " '난민 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처분은 적법하다"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A씨 등은 지난해 9월과 10월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해 난민 신청을 했다. 하지만 출입국 관리당국은 "단순 병역 기피는 난민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난민 심사에 회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러시아 변방 도시나 중앙아시아 태생의 러시아 국적 남성들로 전쟁동원령이 내려진 러시아를 탈출해 인천공항에 입국했다. A씨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인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지지 시위에 참여했다가 폭행을 당하고, 구금·벌금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다. 그는 지난해 9월 징집 소환장을 받은 뒤 카자흐스탄을 거쳐 10월에 한국에 들어왔다.
A씨 소송을 대리한 공익법센터 어필에 따르면, A씨 등은 5개월째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대기실에서 생활하고 있다. 점심 한 끼만 기내식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나머지 식사는 빵과 음료수로 버티고 있다. 위탁수하물로 부친 짐을 찾지 못해 입국 당시 입고 온 옷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들 3명보다 한 달 늦게 입국해 인천공항에서 머물고 있는 러시아인 2명도 출입국 관리당국을 상대로 같은 소송을 제기해 이달 말 변론 기일이 예정돼 있다.
A씨 소송 대리인 이종찬 변호사는 "승소한 러시아 사람이 절차를 거쳐 입국하면 거처를 마련하고 난민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돕겠다"며 "패소한 러시아인은 항소한다고 해도 몇 개월을 또 공항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대응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난민 인정 심사가 거부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 체류 중인 러시아인 청년들. 공익법센터 어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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