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강요 등 새터 구습들 코로나로 철퇴
"비대면 익숙한 新세대, 술자리가 어색해"
게임·체육대회 대체… "끈끈한 관계 회복"
“술 마시고 단체 장기자랑이요? 아유, 그건 옛날 얘기죠.”
오는 17일 ‘새내기배움터(새터)’를 앞둔 건국대 건축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김모(24)씨의 말이다. 새터는 과거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으로 불린 환영행사다.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새내기들에게 학교 정보를 제공하고 선ㆍ후배 간 친목도 쌓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하지만 음주 강요와 얼차려로 얼룩지기 일쑤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사고가 끊이지 않은 탓에 새터에는 부정적 인식이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감염병 장기화로 4년간 자취를 감췄던 새터가 올해 부활했다. 각 대학은 거리두기 해제에 맞춰 대학의 첫 관문을 일제히 개방하고 있다. 변화상은 뚜렷하다. 새터의 구습으로 치부돼온 3가지, △음주 △장기자랑 △운동권 강요 문화가 사라지거나 선택사항이 된 것이다.
"강요는 옛말"… 선·후배 교류 회복 안간힘
연세대 생활과학대는 올해 새터에서 ‘논(non)알코올존’을 운영한다. 비음주자를 위한 배려다. 고려대 사범대는 과별로 한 명씩 ‘안전 주체’를 임명했다. 이지민(20) 고려대 사범대 학생회장은 13일 “안전 주체들은 새터 기간 내내 금주하면서 술 강요 등 돌발사고에 대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새터 악습은 서서히 설 자리를 잃었다. 2010년대 들어 선배들의 가혹행위와 음주 강요 등 인권침해 사례가 여러 차례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서 자정 움직임이 일었다. 술을 먹지 않는 신입생들에게 야광팔찌를 제공해 구분한 것도 몇 년 전 생긴 풍습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변화를 가속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서울의 한 대학 학생회 관계자는 “코로나 대학세대는 비대면 생활에 익숙한 터라 술자리 자체를 낯설어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민중가요나 마임(민중가요에 맞춰 추는 율동) 등 운동권에서 파생된 활동도 더 이상 새터의 전유물이 아니다. 서울대 인문대 새터에서는 2019년까지 마임 교육과 인권 연극 시청, 토론이 필수였지만 올해부터 중단했다. 김철진(21) 인문대 새터기획단장은 “운동권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는 선배도 없고, 요즘 학생들이 그때 대학문화에 공감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 역시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40년 전통의 ‘임을 위한 행진곡’ 교육을 없애기로 했다.
대신 대학들은 비대면이 길어지면서 만남이 끊겼던 재학생과 신입생의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조별게임이나 체육대회 등 친목 활동을 중심으로 새터 일정을 짜고 있다. 중앙ㆍ단과대 차원에서 기획한 동아리들의 공연 관람도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다.
코로나 너무 길었나? 낮은 참여율 숙제
다만 열기는 예전만 못하다. 새터를 포기하고 해외여행을 택하는 신입생도 적지 않다고 한다. 대면 수업과 외부활동을 경험하지 못한 2, 3학년 코로나 세대의 참여율부터 저조하다. 이들은 “제대로 된 선ㆍ후배 관계를 느껴본 적 없어 새터에도 별로 흥미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각 대학은 신입생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새터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박주영(23) 서강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새터 숙소에 볼링장, 놀이공원 같은 부대시설도 갖췄다고 홍보하는 등 다양한 유인책을 쓰고 있다”고 소개했다.
신입생들의 반응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인덕대 신입생 강모(19)씨는 “고교생활 역시 절반은 비대면으로 보내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하고, 새 친구를 사귈 생각에 설레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려대 문과대 재학생 윤모(20)씨는 “2학년이지만 처음 대면 새터에 간다”며 “환영행사를 계기로 끈끈한 선ㆍ후배 관계가 회복됐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