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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파견제도 선진화' 정책 내겠다는데...뭐가 문제길래

입력
2023.02.11 04: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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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제정 파견법...잇따른 '불법파견' 논란
경영계 "산업 생태계 위협, 파견 업종 확대해야"
노동계 "질 낮은 비정규직만 양산할 것...반대"

지난달 9일 오후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법 앞에서 전국금속노조 한국GM 비정규직지회가 카허 카젬 전 한국GM 사장의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9일 오후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법 앞에서 전국금속노조 한국GM 비정규직지회가 카허 카젬 전 한국GM 사장의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98년 제정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근본적 변화 없이 지속돼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는 반면, 파견 업무의 적법성 여부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다툼은 확대 재생산되고 있음. 외국 사례와 연계해 제도개선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판단."

지난해 12월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

"적법한 파견과 불법 도급 사이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해 사법 리스크가 나왔는데, 파견제도 선진화하겠다."

지난달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언론 인터뷰

법제화 이후 25년간 첨예한 노사 갈등으로 숱한 논란을 낳은 파견제도에 정부가 본격적으로 손을 대겠다고 선언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이중구조 개선 연구회를 통해 올 상반기 안에 개혁안을 만들 계획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만큼 시급하다"는 판단 아래 노사 양측을 배제한 '전문가 안'을 앞세우는 것이다.

수십년 이어진 줄다리기...연이은 '불법파견' 판결

협력업체 노동자 1,700여 명을 불법 파견한 혐의로 기소된 카허 카젬 전 한국GM 대표이사 사장이 지난달 9일 오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인천지법을 떠나고 있다. 뉴시스

협력업체 노동자 1,700여 명을 불법 파견한 혐의로 기소된 카허 카젬 전 한국GM 대표이사 사장이 지난달 9일 오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인천지법을 떠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파견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데는 2010년 시작돼 최근 대폭 증가한 법원의 판결 영향이 크다. 지난해에만 현대제철과 포스코, 현대차·기아 등이 불법파견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했고, 지난달 카허 카젬 전 한국GM 사장에게는 근로자 1,700여 명 불법파견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판결에 따른 경영 불안정성이 커지자 2021년 방한한 스티브 키퍼 GM 수석부사장은 "한국의 고용 유연성 확대 등이 전제되지 않으면 추가 투자는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 생긴 파견제도는 사용자가 파견업체와 계약을 맺고 파견업체에 소속된 근로자를 '빌려오는' 형식이다. 파견직으로 2년 이상 일하면 사용자가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직접고용을 해야 한다. 법 시행 당시 조리사, 간병인 등 26개 업종으로 제한됐던 파견 대상 업종은 2007년 이후 32개로 늘었다. 파견제도를 활용할 수 없는 업종은 협력업체와 도급 계약을 맺어야 하는데, 이 경우 사용자가 협력업체 근로자에게 직접 지휘·명령을 할 수 없다. 앞서 불법파견 사례들 모두 겉으로는 도급계약의 형식을 빌렸지만 실제로는 직접 지시가 있었다는 법원의 판단이 주효했다.

경영계에서는 꾸준히 파견 대상 확대를 주장해오고 있다. 파견법이 너무 경직돼 글로벌 기업들과 달리 생산 및 투자를 늘리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해 8월 이정식 고용부 장관을 만나 "법원이 파견법을 잣대로 사내 도급을 불법파견으로 판결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수많은 원·하청 관계로 이뤄진 산업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며 "32개 업종으로 제한된 파견근로 허용 제한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파견법 개정 시도 지난한 역사...이번엔 성공할까

금속노조 현대·기아자동차비정규직회 관계자들이 지난해 10월 2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열린 ‘드디어 잡힌, 6년 걸린 현대·기아자동차 불법파견 대법 선고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기아차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271명,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159명이 낸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노동자들 승소를 확정했다. 뉴스1

금속노조 현대·기아자동차비정규직회 관계자들이 지난해 10월 2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열린 ‘드디어 잡힌, 6년 걸린 현대·기아자동차 불법파견 대법 선고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기아차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271명,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159명이 낸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노동자들 승소를 확정했다. 뉴스1

고용부는 지난달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파견제도 선진화'를 언급하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구현 △파견·도급 기준 법제화 △파견 대상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변화된 노동시장 여건에 맞게 파견제도를 합리적으로 개편하는 것"이라며 "기존 파견제도가 효과적인 인력수급 제도로서 한계를 보이고 있어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파견 대상 확대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정부는 2004년 파견 금지 업종만 명시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개정안을 냈다가 노동계의 반발에 부딪혔고, 2007년에도 비슷한 방식의 개정을 검토했지만 법제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2016년에도 고령자와 전문직을 대상으로 파견 허용업무를 확대하자는 안이 제시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부는 노동개혁에 시동을 건 지금이 파견법 개정의 적기라고 보고 있다. 김덕호 경사노위 상임위원은 9일 이중구조 개선 위원회 발족식에서 "그간 파견 제도에 대해서는 아예 말을 못 꺼내는 분위기였는데, 더 이상 노동개혁을 미룰 수 없기 때문에 전문가집단 논의를 먼저 하겠다는 것"이라며 "이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노동계든 경영계든 참여할 통로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나라는 대부분 파견 업종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풀어놨다"고 강조했다.

다만 실패의 역사에서 보듯 파견법 개정 시도는 노동계 반발이라는 거대한 산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노동계는 이미 각종 불법 행태와 노동권 침해가 판을 치는 상황이라 파견 업종 확대가 질 낮은 비정규직 일자리만 양산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2년 단위로 노동자를 '쓰고 버리는' 행태가 더욱 만연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정부가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 노동개혁을 하겠다고 하는데, 파견 업종 확대는 이중구조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방향이라 찬성할 수 없다"며 "불법파견을 합법화하게 되면 취약한 노동자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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