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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승에게서 나온 네 조각가 …"일본에서 배우지 않은 첫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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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승에게서 나온 네 조각가…"일본에서 배우지 않은 첫 세대"

입력
2023.02.13 19: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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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 조각의 선구자 김종영에게 가르침을 받고 서울대 강단에 섰던 최의순(왼쪽), 최종태 조각가가 7일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민호 기자

추상 조각의 선구자 김종영에게 가르침을 받고 서울대 강단에 섰던 최의순(왼쪽), 최종태 조각가가 7일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민호 기자

한국전쟁으로 전국이 폐허가 됐던 시기에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해 우성 김종영(1915~1982)에게 교육을 받았던 네 작가가 있다. 김종영미술관에서 이달 3일부터 다음 달 26일까지 열리는 ‘분화(分化)’ 전시는 추상 조각 선구자에게 교육을 받은 네 작가가 각기 어떻게 자신의 세계관을 만들어나갔는지 조망한다.

이번 전시에는 송영수(1930~1970) 최종태(91) 최의순(89) 최만린(1935~2020)의 조각 19점과 드로잉 38점을 전시한다. 이들은 1950년부터 1954년 사이에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해 나란히 조각가의 길을 걷고 졸업 후에는 모두 모교에서 교수로서 후학들을 가르쳤다. 최의순은 이 시기를 “흙을 퍼와서 드럼통에 넣고 흙탕물에서 흙을 꺼내 말리던 시절”로 기억한다. 요즘처럼 흙을 사서 쓰는 ‘좋은 시절’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같은 스승에게 지도를 받았지만 이들은 저마다 다른 길을 걸었다. 넷 중에 가장 먼저 조각에 입문한 최만린은 서구 인체 조각의 영향에서 벗어나 한국적 감성에 뿌리를 둔 작업을 해 나갔다.

철조 조각의 선구자인 송영수는 일찍부터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수용했다. 혹자는 미국, 서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조각 전통이 단절됐던 한국에서 그 나름의 연구를 거듭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그는 생전 한 인터뷰에서 '미술의 민족론'에 대해서 “외피적인 동양적인 성격을 상상한다던가, 표면적인 향토성을 음미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동양적 정신 상황 자체를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 최의순은 온전히 석고만을 이용해서 조각을 만들기 시작했다. 석고가 마르기 전에 붙여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한 번에 작품을 완성하는 서예를 닮았다. 최의순은 해외 작품들을 보고 영향을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자신의 작품 세계가 있는데 왜 남의 것을 거기다가 넣겠느냐”라면서 “(뻐꾸기가 몰래 낳은 알을 품는) 자고새가 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최종태는 평생 인체만을 조각한 것으로 유명하다. 성모상과 관음상 등은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평생 사람을 만들면서도 인간 자체를 그대로 본뜬 조각을 만들지 않았다. 인체 자체보다는 그 구조를 표현해 내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최종태는 이번 전시에 대해서 “우리는 일본 사람들로부터 배우지 않은 세대다. 해방되고 미술대학을 우리 손으로 만들고 거기에 입학해서 한 교실에서 공부한 1세대”라면서 “그런데 작품이 각각 다르다. 비슷하면 경쟁이 되는데 달라서 서로 싸우지 않았다. 이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라면서 웃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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