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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의 ‘상생임금’을 묻는다

입력
2023.02.10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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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격차 해소 목표 내세운 정부
대기업 직무·성과급제 도입 중점
하청 임금 올릴 방법은 무엇인가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상생임금위원회 발족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상생임금위원회 발족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기자 생활 동안 유독 관심이 많이 갔던 분야가 ‘임금격차’였다. 임금격차에는 계층의 형성, 교육의 무기화, 그리고 존재에 대한 슬픔과 모욕까지 담겨 있다. 예전에 독일에 비해 심각한 한국 직종 간 임금 차이를 분석한 기사를 쓰고는, 고임금으로 표현한 직군의 독자들에게서 비난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와 ‘상생임금’을 과제로 제시했을 때, 무척 반가웠다. 하지만 반가움은 잠시뿐, 고용노동부가 발족한 상생임금위원회의 계획을 보면 답답함이 크다. 대기업에 흔한 연공호봉제를 직무급제, 성과급제로 바꾸는 게 주요 방향이다.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싶다. 성과급제 등의 부작용은 차치하고, 이런 체계 도입으로 정규직의 평균 임금을 낮췄다고 치자. 그래서 대기업이 인건비를 아꼈다고 치자. 그 아낀 인건비가 자연스레 하청업체의 직원들에게 흘러갈 것이라 믿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호의로 작동하는 제도는 없다. 이건 진보보다 보수 쪽이 더 잘 알 것이다. 그 아낀 인건비는 사주가 챙기거나, 주주들에게 배당되거나, 사내유보금으로 쌓아 두거나, 간혹 하청업체에 주더라도 사장이 더 챙길 것이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가. 2021년 퓨리서치센터의 선진 17개국 설문조사 결과,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으로 한국만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돈)’가 1위였다.

한국에서 ‘상생임금’은 권고와 자율로는 도달할 수 없다. 제도의 빈틈은 수없이 많고, 그렇게 허용된 탐욕과 착취는 돈이 하청 노동자에게 흐르는 걸 틀어막는다. 일례로 경쟁입찰 때 도급비를 깎는 ‘낙찰률’은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에까지 적용된다. 파견·용역업체는 원청이 책정해서 내려보낸 노동자의 인건비를 다 주지 않고 떼어간다. 이런 문제는 인건비엔 낙찰률 적용을 제외하는 법, 간접고용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중간착취방지법이 마련돼야 막을 수 있다. 제도적 강제가 필요한 부분은 무궁무진하다. 일감 중개 플랫폼들의 수수료가 30~40%에 이르러도 규제가 되지 않고,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용역 근로자 처우개선 배점은 지극히 낮다.

즉, 원청에서 하청 노동자들에게까지 돈이 흐르는 연결 고리들을 모두 강제하고 서슬 퍼렇게 지켜야 ‘상생임금’은 가능하다.

그런데도 정부의 방식은 낭만적이며, 그래서 비관적이다. 상생임금위는 원·하청 노사가 협력해 연대임금과 같은 상생방안을 찾도록 한다는 계획이란다. ‘연대임금’은 과거 스웨덴에서 전국단위 노조가 경영자단체와 협상하며 상위 근로자의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하위층의 임금을 끌어올린 유명한 사례에서 나왔다. 이런 ‘아름다움’이 한국에서 가능하다고 믿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 비정규직의 ‘적은 임금’을 ‘공정’이라고 생각하는 게 한국 사회이다. 정부 차원에서 ‘연대임금’을 권고하더라도, 성과는 생색 내기 수준일 것이다.

특히 정부가 ‘상생임금’의 방식으로 직무·성과급제 도입에 중점을 둔다면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중소·하청 노동자의 임금 올리기에는 사실 관심이 없으며,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을 낮춰서 기업 이익을 올리겠다는 의도 말이다. 어디까지나 기우이길 바란다. 해외 임금차별 방지 정책 등도 분석하겠다니 더 지켜볼 필요도 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느리다 해도 늘 제자리는 아니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원재료 가격 변동을 납품대금에 반영하도록 하는 ‘납품대금연동제’가 통과돼 10월 시행된다. 중소기업계의 이 숙원 사업은 국회의 문턱을 넘기까지 무려 14년이 걸렸다. 여기엔 비관과 낙관이 함께 존재하지만, 그래도 결국 이루어졌다는 데서 낙관에 무게를 두고 싶다.

이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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