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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아저씨의 오두막집'과 '안티-톰(Anti-Tom) 문학'

입력
2023.02.11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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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잘못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당신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이한 작가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로서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남녀가 함께 고민해 볼 지점, 직장과 학교의 성평등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당신이 이 큰 전쟁을 일으킨 책을 쓴 바로 그 작은 여인이군요."

1862년 겨울, 링컨 대통령은 백악관을 방문한 해리엇 비처 스토를 맞이하며 말한다. 여기서 '큰 전쟁'은 미국의 남북전쟁, '전쟁을 일으킨 책'이란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Uncle Tom's Cabin)'을 가리킨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링컨이 진짜 이 말을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이 문장은 스토의 소설이 미국사에 끼친 영향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1852년 출간된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은 노예제의 비참함을 고발하고 당시 남부 노예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렸다. 노예 해방에 대한 지지 여론을 조성하여 남북전쟁에서 북부의 승리에 기여했다. 링컨 역시 이 작품을 읽으며 노예제 폐지를 다짐했다고 한다.

작가는 남부를 여행하다가 흑인 노예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고 소설을 구상했다. 직접적 계기는 도망간 노예는 물론, 도와준 이들까지 처벌하는 '도망노예 단속법'이 의회를 통과한 사실이었다. 1850년 3월, 스토는 노예제도 폐지운동 기관지인 '내셔널 에라(The National Era)'의 편집장에게 소설 연재를 제안한다. "여성이나 아이도 자유를 위해 말해야 할 때입니다. 인간이라면 말할 의무가 있습니다."

연재 중에도 뜨거웠던 반응은 출간 후에는 불타올랐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은 미국 소설 역사상 첫 밀리언셀러가 된다. 영국에서 출판된 해에 130만 부가 팔리는 등 해외에서도 날개 돋친 듯 팔린다. 9년 후 남북전쟁이 발발할 즈음에는 16개 언어로 번역된다. 연극으로도 각색되어 책을 안 읽은 사람들도 톰 아저씨에 대해 알게 된다. 이제 노예제도에 대한 논쟁은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에 대한 논쟁이 되어 버린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초판 표지(왼쪽)와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의 초상화. 초상화는 미국 내셔널 포트레잇 갤러리 소장. 위키피디아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초판 표지(왼쪽)와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의 초상화. 초상화는 미국 내셔널 포트레잇 갤러리 소장. 위키피디아

1861년 발발한 남북전쟁을 미국사에서는 내전(Civil War)이라고 부른다. 세계사를 보면 근대 국민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 내전을 겪은 나라들이 많다. 특이하게도 미국은 노예제 존속 여부를 놓고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사실 전쟁의 가장 큰 원인은 노예제가 아니었다. 근본 원인은 노예를 부려야만 하는 남부와 노예제가 필요 없는 북부 간의 경제적·문화적·정치적 갈등이었다. 남부인들은 노예제도가 남부의 경제 기반인 것은 물론, 남부의 전통이라고 생각했기에 북부의 노예해방주의자들에게 극렬히 반응했다. 대부분의 남부인들은 흑인 노예들이 백인 주인의 보호 아래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은 부모와 아이가 떨어져 팔리고 매 맞으며 장시간 노동하는 등 남부에서 흑인 노예들이 겪는 비참한 현실을 생생히 묘사했다. 몰인정한 백인 노예주와 감독관은 양심적 신앙인인 톰 아저씨와 대비되어 더욱 악인으로 보였다. 남부인들은 자존심이 상했다. 연재 당시에도 반발하던 남부의 노예제 지지자들은 책이 간행되자 그동안 북부에서 발행된 다른 반노예제 인쇄물보다 이 소설에 더 분노했다. 그들은 스토의 소설을 남부인의 명예에 대한 공격으로 여겼다.

소설에 대한 반박이, 아니 반격이 시작되었다. 혹독한 서평이 연달아 발표되었다. 이 소설은 남부의 현실을 왜곡하고 편견으로 가득 찼기에 문학성이 떨어지며, 작가 스토는 남부에 살았던 경험이 없기에 설정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주장이 주 내용이었다. 소설을 태워버리고 소설을 갖고 있는 흑인을 처벌하기도 했다. 작가에게 협박 편지도 보냈다. 심지어 흑인 노예의 귀를 잘라 같이 보내기도 했다. 요즘 식으로 보면, 스토는 악플 공격과 별점 테러를 당한 셈이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비꼬고 반박하는 소설도 등장했다. 3년 동안 14권이나 출간되어, 미국 문학사에 '안티 톰(Anti-Tom) 문학'이란 장르까지 있을 정도였다. '필리스 아줌마의 오두막집(Aunt Phillis’s Cabin)', '주디 아줌마의 돼지우리(Aunt Judy’s Pig Pen)', '버지니아 오두막집의 로빈 아저씨 그리고 보스턴에 오두막집을 갖지 못한 톰 아저씨(Uncle Robin, in His Cabin in Virginia, and Tom Without One in Boston)' 등등. '안티 톰' 소설은 흑인 노예들이 자유를 얻는 것보다 주인의 보살핌 아래 있는 편이 더 낫다며 노예제도를 옹호했다. 북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남부의 농장을 평화로운 낙원으로 묘사했다. 작가는 거의 남부의 백인이었다.

'안티 톰' 소설의 하나인 '필리스 아줌마의 오두막집' 표지. 위키피디아

'안티 톰' 소설의 하나인 '필리스 아줌마의 오두막집' 표지. 위키피디아

한편 남부의 연극 제작자들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의 주제를 왜곡해서 각색한 후 무대에 올렸다. 뉴올리언스에서 공연된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남부에 있었다면'에서 톰 아저씨는 캐나다로 탈출했으나 추위에 떨며 후회하고 남부의 농장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제작자들은 원작의 인기를 이용하여 돈은 벌면서, 노예해방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스토가 누군가. '큰 전쟁을 일으킨 작은 여인' 아닌가. 작가는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스토는 꿋꿋하게 자신을 공격하는 쪽의 글을 읽고 분석한다. 자신이 설정한 소설 속 상황이 정확하다는 것을 뒷받침할 자료를 모은다. 1853년, 스토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의 핵심(A Key to Uncle Tom's Cabin)'을 출판한다. 실제 존재한 사건과 인물의 예를 들어 비판에 꼼꼼히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책은 1년 안에 10만 부가 팔렸다.

작가로서 스토는 성공했다. 미국은 물론 영국에까지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홍보하는 행사 여행을 다니며 노예해방 캠페인을 펼쳤다. 이렇게 영향력 있는 유명 인사가 되었지만, 그는 청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연설할 수 없었다. 여성은 남성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금지됐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남편 캘빈이나 스토의 남자형제가 연설문을 대신 낭독했다. 궁금하다. 스토는 이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는 아이들을 모두 재운 후 밤새워 소설을 집필했다고 하는데.

현재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부정적으로 여긴다. 주인공인 톰 아저씨가 너무 순종적이고 남성성이 거세된 모습으로 소설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프리카계 남성을 부를 때 '엉클 톰(Uncle Tom)'이라고 하면 인종차별적 멸칭이다. 이는 백인들이 톰 아저씨 연극을 민스트럴쇼(minstrel show)와 결합한 '톰 쇼(Tom Show)'로 만들면서 톰 아저씨 캐릭터를 원작보다 더욱 열등한 인물로 등장시켜 웃음거리로 소비한 탓이다. 하지만, 작가가 원작에서 톰 아저씨를 수동적 남성으로 묘사한 것은 사실이다. 반면 일라이저 등 조연인 흑인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노예 상태에서 탈출을 꾀하고 실행, 성공한다. 이런 성별 고정관념이 바뀐 인물 설정은 당시로서는 드물다. 작가의 페미니스트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19세기 민스트럴쇼의 홍보물. 민스트럴쇼는 얼굴을 검게 칠한(블랙 페이스) 백인이 흑인을 희화화해서 춤추고 노래하며 연기하는 인종차별적 쇼를 말한다. ‘짐 크로 쇼’가 대표적이다. 위키피디아

19세기 민스트럴쇼의 홍보물. 민스트럴쇼는 얼굴을 검게 칠한(블랙 페이스) 백인이 흑인을 희화화해서 춤추고 노래하며 연기하는 인종차별적 쇼를 말한다. ‘짐 크로 쇼’가 대표적이다. 위키피디아

또 궁금하다. 원래 페미니스트적 성향을 가진 스토가, 공격에 반박하기 위해 '안티 톰' 소설들을 읽으면서 무엇을 더 깨달았을까. 주로 남부의 대농장이 배경인 '안티 톰' 소설은 백인 남성 노예주가 순수한 백인 아내와 어린애 같은 흑인 노예들을 보호하는 가부장제 유사 확대 가족의 생활을 다룬다. 그렇다면 백인 남성의 지배와 감독하에 있으며, 그 상태를 벗어나면 불행해진다고 이야기로 세뇌당하는 것은 흑인들만이 아니지 않은가. 같은 백인이라지만, 여성도 마찬가지인데.

스토는 흑인 노예 해방운동에 이어 여성 참정권 운동에 뛰어든다. 기혼 여성의 권리를 위한 캠페인도 벌인다. 1869년, 스토는 말한다. "결혼한 여성의 위치는 여러 면에서 흑인 노예와 비슷합니다."

스토는 남부인들을 공격하기 위해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남부의 노예제 지지자들은 소설을 남부 사회와 전통에 대한 공격이자 남부인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여러 방법으로 작가를 괴롭혔다. 이때, 스토의 이야기에 맞서기 위해 '안티 톰' 소설을 지어내는 현상은 매우 흥미롭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에 분노한 남성들이, 남성이 주인공인 'OO년생 OOO'라는 이야기를 지어내던 것과 같아서다. 그만큼 이야기가 인간의 사고방식과 행동, 판단과 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는 힘이 세다. 바로 이 점이, 자주 들어서 익숙한 이야기들을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이유다. '이 이야기는 누구의 입장에서 누구의 이익을 위해 썼는가?' 하고.

인종차별 문제나 성차별 문제 등 어떤 문제를 쓰고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 상황을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목적은 상황의 개선과 해결이다. 물론 낯선 이야기를 접하면 처음에는 불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다른 이야기는 당신을 공격하지 않는다. 다른 이야기는 더 나은 다른 장소로 우리 모두를 데려다 준다. 노예제의 문제점을 밝히고 노예 제도에 반대하는 입장을 소설로 써서 노예해방 아니 인간해방에 기여한 스토의 이야기처럼. "여성이나 아이도 자유를 위해 말해야 할 때입니다. 인간이라면 말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번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편은 마지막 회에 쓰려고 아껴둔 이야기였다. 그동안 댓글과 메일로 적극적인 의견을 주신 애독자님들의 다정한 응원에 감사드린다.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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