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코트를 쪼개는 듯한 호쾌한 스파이크 공격은 배구의 꽃이다. 실제로 경기 후 가장 눈에 띄는 수치도 특정 선수가 몇 득점을 올렸는가, 혹은 공격 성공률이 몇 %인가다. 하지만 숨 막히는 수비 역시 팬들의 박수와 환호를 유도하는 것은 물론, 경기 몰입도를 급상승시키는 요소다. 공이 코트에 떨어지지 않는 한 배구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9일 한국배구연맹(KOVO)에 따르면 올 시즌 여자부 세트당 평균 디그는 20.63개로 최근 네 시즌 중 가장 많다. 끈끈한 수비력을 선보이며 손에 땀을 쥐는 볼거리를 많이 제공했다는 뜻이다.
여자부 세트당 평균 디그 자료=KOVO
2019~20 | 2020~21 | 2021~22 | 2022~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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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당 디그 | 20.56개 | 20.33개 | 20.36개 | 20.63개 |
지난 1일 광주에서 열린 페퍼저축은행과 기업은행의 경기에선 대기록이 작성됐다. 페퍼저축은행이 세트스코어 1-3(25-22 20-25 22-25 18-25)으로 패했지만 페퍼 리베로 오지영은 네 세트 동안 디그만 무려 53개를 걷어 올리며 '질식 수비'의 진수를 선보였다. 이날 오지영은 리시브도 8개(실패 1개)나 세터 머리 위로 정확하게 올리며 수비 60개를 기록했다. 한 경기 디그 53개는 여자부 역대 공동 2위에 해당하는 대기록인데 특히 네 세트 동안 올린 것이어서 더욱 놀랍다. 이 부문 역대 1위 기록을 보유한 김해란(흥국생명ㆍ다섯 세트 54디그)보다 더 자주 공을 걷어 올린 셈이다.
‘미리 보는 챔프전’으로 눈길을 끌었던 지난 7일 흥국생명-현대건설의 경기에서도 명품 수비가 여러 차례 나왔다. 흥국생명 김연경과 옐레나의 화끈한 공격력, 세터 이원정의 깜짝 블로킹 득점이 눈길을 끌었지만 팀 승리의 숨은 공신은 역시 리베로 김해란이었다. 김해란은 당시 세 세트 동안 무려 40개의 수비(리시브 정확 12개, 디그 28개)를 기록하는 등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1ㆍ2위 간 대결을 수준 높은 명경기로 만들었다.
팀 성적이 좋지 않아 눈에 띄진 않지만 기업은행의 끈끈한 수비망도 주목할 만하다. 기업은행은 팀 디그에서 세트당 23.01개를 기록,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부문 2위 흥국생명(세트당 21.44개)과도 세트당 1개 이상으로 차이가 상당하다. 리베로 신연경이 부상으로 일부 경기를 소화하지 못하고도 수비 2위로 고군분투 중이다. 여기에 아웃사이드히터 표승주와 외국인 선수 산타나는 전문 수비수도 아닌데, 수비 6, 7위에 나란히 올라 있다. 특히 표승주는 지난해 12월 2일 흥국생명과 경기에서 서브 폭탄을 견뎌내며 네 세트 동안 수비 46개(리시브 정확 24개+디그 22개)를 기록했다.
또 현대건설이 시즌 초반 ‘절대 1강’으로 질주할 수 있었던 것도 디그 1위 김연견을 중심으로 한 탄탄한 수비력이 원동력이었다. 리시브 1ㆍ2위(임명옥·문정원)를 보유 구단 도로공사도 현대건설-흥국생명의 양강 구도에 균열을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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