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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 중심에서 벗어나 '국민의 재판'으로 향하는 국민참여재판

입력
2023.02.08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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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규
오용규변호사

편집자주

판결은 재판받는 사람에게만 효력이 있지만, 대법원 판결은 모든 법원이 따르는 규범이 된다. 규범화한 판결은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판결과 우리 삶의 관계를 얘기해본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무죄추정주의에 더 충실한 국민참여재판 사례들
배심원 만족도에도 불구, 외면받는 국민참여재판
코로나 방역 종료에 맞춰 도입 이유 다시 살펴야

최근 법정 드라마가 많이 나온다. 그리고 그 수준도 높다. 실제 법정의 모습과는 동떨어져 있던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다소 각색하는 것을 제외하면 실제 법정과 비슷한 점이 많다.

'천원짜리 변호사'라는 드라마 첫 회에 국민참여재판이 등장한다. 절도 전과 4범이 화장실에서 비틀거리는 취객을 부축하다 소매치기로 의심받아 법정에 서게 되었다. 피고인은 자백하는데 변호사가 나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였다. 변호사는 법정에서 유죄의 직접 증거가 전혀 없음에도 피고인이 절도 전과 4범이라는 이유만으로 유죄로 의심받고 있다고 역설한다. 실제 소매치기를 하였다면 피고인의 실력으로는 취객에게 걸리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장면을 법정에서 연출하며 무죄 판결을 받는다.

필자도 법정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모두 유죄 평결이 나오리라 예상했던 사안에서 배심원들이 만장일치 무죄 평결을 하였다. 그 피고인도 역시 절도 전과가 많았다. 절도 사건이 계속 발생하자 현장에서 잠복하고 있던 피해자가 피고인이 물건 근처로 다가가자 의심하고 바로 잡아버렸던 사건이었다. 피고인이 같은 종류의 절도 전과가 많았고 당시 훔치려고 다가갔을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이었지만 배심원들은 피고인이 훔치기 위해 물건에 손을 댔다는 어떠한 직접 증거도 없다는 이유로 무죄 평결을 하였다. 놀라운 결과였다. 다시 생각해보니 배심원들의 결론이 맞았다. 훔치려고 다가간 것이 분명해 보여서 막상 훔치는 행위를 하였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유죄라고 섣불리 판단했으나 무죄였던 것이다. 법조인보다 국민이 무죄추정주의라는 형사법상 대원칙에 더 충실했던 것이다.

그래픽=신동준기자

그래픽=신동준기자

배심재판의 시작은 영국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전에는 보통법 법정에서의 모든 사건에서 배심재판을 해야 했으나 배심재판의 비율은 계속 낮아져 현재는 거의 배심재판을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연방 헌법상 배심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며 1심 재판은 기본적으로 배심재판을 예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높은 비용과 효율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고 배심재판의 비율은 갈수록 줄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8년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된 이후 그 활용도가 높지 않다(1년에 몇 백 건 수준에 불과하다). 피고인만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할 수 있는데다 국민참여재판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부족하고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인에게 국민참여재판의 기회가 반드시 부여되어야 하고 배심원의 평결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국민참여재판의 가장 큰 성과는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의 만족감이 크다는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사람의 사법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하여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이 국민의 사법 신뢰를 높일 수 있는 국민참여재판이 여러 이유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형사사건은 대부분 유죄로 판단된다. 유죄 가능성이 큰 사건이 기소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판사는 유죄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사건을 보기 쉽고 무죄추정주의는 현실에서는 공허한 메아리로만 여겨지기 쉽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법적 이해도, 참여도 수준은 굉장히 높다. 배심재판도 오류에 빠질 수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법관도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법관의 재판과 국민의 재판이 적절히 서로 견제하고 보완하는 것이 국민참여재판의 도입 이유일 것이다. 코로나 방역이 끝나가는 이 시점에 그 도입 이유를 다시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오용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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