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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남성의 분노가 여성의 성취 때문?... '백래시'는 정치가 키웠다"

입력
2023.02.09 13:00
수정
2023.02.0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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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백래시 정치' 출간한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인터뷰

편집자주

책, 소설, 영화, 드라마, 가요, 연극, 미술 등 문화 속에서 드러나는 젠더 이슈를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봅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가 신간 '백래시 정치'를 출간했다. 책은 백래시의 개념과 역사, 이론, 전략 등을 풍성하게 담았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으로 대표되는 '안티페미니즘 백래시'가 어떻게 정치세력을 구축해 왔는지 짚었다. 신 교수가 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가 신간 '백래시 정치'를 출간했다. 책은 백래시의 개념과 역사, 이론, 전략 등을 풍성하게 담았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으로 대표되는 '안티페미니즘 백래시'가 어떻게 정치세력을 구축해 왔는지 짚었다. 신 교수가 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여성운동이 멈추지 않는 한, 백래시(backlash)는 영원히 존재할 겁니다."

'백래시'. '민주주의 성장이나 진보적 물결에 대한 반동'을 총칭한다. 1991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가 동명의 저서를 출간하며 저널리즘에서 유래한 표현이지만, 최근 학술대회나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용어다. 세계적으로 우익 포퓰리즘이 득세하면서, 2019년 미국에서는 관련 심포지엄이 열릴 정도로 백래시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 보편 현상이 됐다.

한국에서 백래시는 주로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집단적 공격을 일컫는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를 '안티페미니즘 백래시(이하 백래시)'로 규정한다. '여성가족부 폐지' '여경 무용론' '남성 역차별론' 등이 대표적이다. 청년 세대가 성별로 갈라져 서로 반목하는 사이, 백래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며 지지층을 결집시킨 정치인은 몰래 웃는다. 신간 '백래시 정치(동녘 발행)'에서 백래시의 개념과 양상, 대응 방법까지 체계적으로 톺은 신 교수를 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신 교수는 책에서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는 사회경제적 변화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집단이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에 분노를 투사하고 희생양으로 삼는 사회적 현상"이라 정의한다. 김영원 인턴기자

신 교수는 책에서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는 사회경제적 변화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집단이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에 분노를 투사하고 희생양으로 삼는 사회적 현상"이라 정의한다. 김영원 인턴기자

-책에 따르면 '백래시'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미국, 일본, 독일뿐 아니라 동유럽 국가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헝가리에서는 2010년 우익 포퓰리즘 정부가 집권하면서 정부 정책에서 여성정책이 삭제되거나 사회노동부 내 성평등국이 규모가 축소돼 인구정책 부서에 통합됐다. 2023년 한국의 '여가부 폐지' 논란과 판박이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하고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확대됐다. 정치적으로도 혐오 선동 정치가 뿌리를 내리면서 권위주의 정부가 들어섰다. 특히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동유럽 국가에서 백래시가 더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했다. 헝가리, 폴란드, 크로아티아가 대표적인 예다."

-미국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혐오 정치인 '트럼피즘'으로 백래시가 정점에 이르렀다.

"무한 경쟁에 놓이고 각자도생을 강요받는 신자유주의 통치 아래 누군가는 도태될 수밖에 없고 밀려난 이들의 분노는 크다. 백래시는 여성들이 일정한 성취를 이뤘다는 지각에 의해 촉발된다. 힐러리 클린턴 같은 유례없이 성공한 일부 엘리트 여성을 보고 백인 노동자 계급은 '역차별받는 피해자'라고 인식하는 것이 대표적 예다. 거기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여성 혐오와 인종 혐오, 외국인 혐오가 뒤섞인 차별과 증오 정치를 활용하면서 우파 포퓰리즘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일각에서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정치를 '트럼피즘'에 비유하기도 한다.

"트럼프와 이준석은 공통적으로 어떤 이들의 분노나 좌절을 활용해 지지집단으로 포섭한다. 그들의 정치는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 과거의 정치와 구분되는 지점이다. 절망을 끌어내서 더 소외된 이를 공격하며, 세력화하는 것이 증오 정치의 전략이다."

-한국의 '백래시 정치' 시작 국면을 언제로 보는가.

"한국 사회에서 백래시가 체계화되기 시작한 것은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7월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부터다. 박원순 시장이 권력형 성범죄 혐의를 받고 스스로 세상을 떠난 뒤 치러졌고 조국 사태, 부동산 정책 실패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당시 보궐선거는 누가 봐도 오세훈 후보가 당선될 국면이었다. 그런데 언론이 선거결과를 '이대남과 안티페미니즘의 승리'로 규정하면서 이후 '이대남'이라는 이름은 청년 남성을 불러 모으고 청년 세대를 성별로 대립시키는 갈등의 구호가 됐다. 또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로 당선되고 대선 경선 과정에서 국민의힘 후보들이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이전까지 일부 커뮤니티나 소수 남성 정치인의 행동으로 인식되던 백래시가 '공적 담론'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한국 사회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백래시의 특징이 있다면.

"첫째, 확산의 계기가 정치권의 동원에 있다. 군복무가산점제도가 위헌 판결을 받은 1999년부터 2021년 8월 초까지 '여성할당제 폐지' '여가부 폐지' '남성 역차별' '군복무가산점제'를 키워드로 빅카인즈에서 검색하면, 새 정부가 수립되는 시기나 정치적으로 중요한 선거가 진행될 때 기사 총량이 크게 증가한다.

둘째, 선제적이다. 여성운동의 성취가 일정 수준 달성된 상황에서 이를 없애려는 시도인 '교정적 백래시'와 달리 '선제적 백래시'는 여성운동의 성과가 가시화되기 전에 미리 제압하려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 지표를 보아도 성평등에 가까이 가지도 못한 나라다."

신 교수는 "20대 남성의 분노에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원인이 여성들이 더 우월한 지위를 얻었기 때문은 아니"라고 말한다. 노동시장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것으로, 외부자로 존재하다가 일시적인 경쟁자가 된 집단에 분노를 투사하는 것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 교수(오른쪽)가 본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신 교수는 "20대 남성의 분노에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원인이 여성들이 더 우월한 지위를 얻었기 때문은 아니"라고 말한다. 노동시장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것으로, 외부자로 존재하다가 일시적인 경쟁자가 된 집단에 분노를 투사하는 것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 교수(오른쪽)가 본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하지만 첫 취업까지 소요 기간이나 고용 형태 등 청년 세대의 주요 지표가 나빠진 것은 사실이다. 고용률의 경우 2000년 20대 남성은 66.2%였으나 2021년에는 55.1%로 11.1%포인트가 떨어진다. 20대 여성은 같은 기간 54.9%에서 59.6%로 증가한다.

"과거에 비해 청년 남성의 위치가 불리해진 것은 사실이다. 경쟁이나 공적 영역 진출 자체가 어려웠던 여성들이 노동시장 안으로 진입하면서다. 아버지 세대가 가졌던 가부장적 특권도 사라졌다. 그러나 이것을 여성의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안티페미니스트는 이 분노를 여성 등 약자 집단에 투사한다. 전형적인 '약자 때리기'다.

20대만 놓고 보면 성별 격차가 줄어들거나 여성 고용률이 더 높은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특정 시기에 한정된 해석이다. 30대에 이르면 완전한 역전이 일어난다. 30대 남성 고용률은 90%를 조금 밑도는 수준이지만 여성 고용률은 간신히 60%를 넘어선 수준이며 이 추세는 20여 년간 큰 변화가 없다. 무엇보다 격차가 너무 커 정책적 개입 없이는 개선이 되기 어려운 수준이다."

-실제 청년 세대가 처한 현실과 동떨어진 20대 남성의 분노 근원을 무엇으로 보는가.

"핵심은 노동과 섹스다. 인간은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고 친밀한 관계에서 성적 욕구를 해소해야 하는데 두 가지 모두 얻기 어려운 것이 돼 버렸다. 한마디로 '평범한 가장의 꿈'이 실현되지 않는 거다. 가정을 이룰 경제적 조건을 갖추기도 쉽지 않고 여성들은 독립된 길을 가겠다며 연애를 거부하니 '모든 게 페미니즘 때문'이라며 화가 나는 거다.

물론 청년 여성에게도 같은 욕구가 있다. 과거 전통적 가족 모델은 돌봄과 가사노동, 출산 등 여성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지웠다. 외벌이로 대표되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작동하지 않다보니 이제 여성들은 그에 더해 밖에 나가 돈까지 벌어와야 한다. 지금 청년 여성들이 보여주는 '연애·결혼·출산 거부'는 '더 이상 기존 가족 모델 내 역할을 감당할 수가 없다'는 신호다."

-그럼에도 청년 세대를 성별로 반목하게 둘 수 없지 않나.

"해법은 하나다. 여성과 남성이 젠더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추구해 가면 된다. 남성도 과거 남성 생계 부양자 역할을 포기해야 한다. 돈 많이 벌어서 평범한 가장이 된다는 서사는 이제는 불가능하다. 남자라는 이유로 자신을 구속하는 꽉 낀 옷을 벗어 버리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젊은이를 지원하는 것이 사회가 할 일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남녀가 싸우는 것은 그것대로 둬야 한다. 어떤 이념이든 개인의 생각은 다양하다. 더 중요한 건 정치인들이 권력 획득을 위해 백래시를 부추겨서는 안 된다는 거다. 여성과 남성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국가가 시스템을 개편하는 것이 사회 존속과 출산율 제고의 해법인데 지금 정부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속적으로 여가부 폐지를 천명하고 있다.

"현 정부에서 '여가부 폐지'는 선거 때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젠더 카드'가 아니라, 청년 남성들의 마음을 붙잡기 위한 전략이자 여성운동을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강행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반작용을 가리키는 정책 용어 중에 '백슬라이딩'이란 것이 있다. 백래시가 민주주의 성취에 대한 포괄적 반격이라면 백슬라이딩은 현행 민주주의 제도 중 일부를 무력화하거나 제거하는 국가 주도의 움직임을 가리킨다. 윤석열 정부의 여가부 폐지 전략은 백슬라이딩의 주효 수단이다."

-정부가 왜 계속 백래시를 활용한다고 보는가.

"여성 의제를 정파적으로 바라봐서다. 단순하게 접근해봐도, 부인과 딸의 고용이 좋아지고 차별을 덜 받게 되면 남성 가족 구성원에게도 좋은 것 아닌가. 정치적으로 보수와 진보를 나눌 일이 아니다.

최근 여가부가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하는 비동의간음죄 신설을 검토한다고 했다가 법무부가 선을 긋자 없던 일로 했다. 그런데 해당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나경원 전 의원이 대표발의해 당시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보수 정당 여성 의원들이 다수 이름을 올리기도 한 내용이다. 성평등에 여야가 어디있나."

신경아 지음ㆍ동녘 발행ㆍ272쪽ㆍ1만6,000원

신경아 지음ㆍ동녘 발행ㆍ272쪽ㆍ1만6,000원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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