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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잘 가는 게 꿈" 칠곡할매시인 박금분씨 영면

입력
2023.02.07 12:30
수정
2023.02.07 13:55
24면
0 0

지난 4일 영면 6일 발인
87세에 한글 깨쳐 화제
시집 통째로 외우고 영화도 출연

고 박금분(왼쪽)씨와 그의 시 '가는 꿈'. 경북 칠곡군 제공

고 박금분(왼쪽)씨와 그의 시 '가는 꿈'. 경북 칠곡군 제공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갈 때 돼서 곱게 잘 가는 게 꿈이다."

최고령 할머니 시인으로 알려진 경북 칠곡의 박금분씨가 영면했다. 향년 94세. 7일 칠곡군에 따르면 지난 6일 박씨에 대한 발인식이 엄수됐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 경북 김천시 아포읍에서 1남4녀의 막내로 태어난 박씨는 평생 한글을 배우지 못했다. 가난과 여자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박씨는 87세가 되던 지난 2015년 칠곡군이 운영하는 배움학교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박씨는 한글을 배운 지 3년 만인 지난 2018년 시화집 '내 친구 이름은 배말남 얼구리(얼굴이) 애뻐요(예뻐요)'을 냈다. 먼저 세상을 등진 남편을 그리워하는 '영감'이라는 시도 선보였다. 박씨는 러시아의 시인 알렉산드로 푸시킨의 시집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통째로 외우기도 했다. 며느리 최임선(72)씨는 "공부를 시작하신 뒤에는 글씨 연습을 한 종이가 온 집에 휘날릴 정도로 열정적이었다"면서 "한글을 깨친 뒤에는 노랫말을 적어드리니 읽으면서 외웠다"고 박씨를 회고했다.

배움에 대한 박씨의 열정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과도 맞닿아 있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남편마저 먼저 세상을 뜨는 등 박씨는 유독 이른 이별을 경험해야 했다. 2019년 개봉한 김재환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에서는 박씨가 먼저 떠난 가족을 그리워하는 심정이 담겨 있다.

박씨는 폐지를 모아 판 돈으로 다른 할머니들의 잔치에 보태기도 했다. 평소 호탕한 성격으로 소주와 요구르트를 절반 비율로 섞은 '소요'를 즐겼고, 배움학교에서는 반장을 맡았다.

말년의 열정적인 박씨의 삶은 치매 등 노환에 발목이 잡혔다. 그는 몇 달 전 고관절 골절 등으로 칠곡의 한 요양원에서 와병하던 중 지난 4일 오전 9시 30분 숨을 거뒀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어제와 오늘이 다른 노인들이 봄꽃처럼 세상을 등진다"며 박씨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칠곡= 류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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