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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 딸 38년 돌보다 살해한 엄마... 법원도 검찰도 선처했다 [사건플러스]

입력
2023.02.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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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뒤 뇌전증에 지적장애로 의사소통 못해
누워 있는 딸 대소변 처리하며 24시간 돌봐
대장암까지 걸린 딸 바라보며 우울증·절망감
"아픈 자식 돌보며 평생 보이지 않는 감옥생활
엄마를 다시 감옥에 보내지 말아 주세요"(가족)
"국가나 사회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오롯이
피고인에게만 범행 책임 돌리기 어려워"(판사)

편집자주

끝난 것 같지만 끝나지 않은 사건이 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사건의 이면과 뒷얘기를 '사건 플러스'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38년간 돌봐온 중증장애인 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60대 여성이 지난해 5월 2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38년간 돌봐온 중증장애인 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60대 여성이 지난해 5월 2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형법상 살인죄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에 처해진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살인죄는 기본 양형이 10~16년이다. 가중 요소가 있으면 더한 중형 선고도 가능하다. 참작할 만한 범행 동기가 있으면 감경되기도 하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딸을 살해한 60대 어머니 A(64)씨는 1심에서 실형조차 선고받지 않았다. 그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한 검찰도 이례적으로 항소를 포기하면서 형이 그대로 확정됐다. 살인죄를 선처한 법원과 항소를 포기한 검찰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A씨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길래, 냉혹한 법원과 검찰마저 그를 용서했을까.

장애 딸 암 진단에도 버텼는데..."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무너져"

1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A씨의 딸 B(사망 당시 38세)씨는 첫돌 무렵 병원에서 뇌에 일시적으로 산소 공급이 되지 않는 의료사고를 당해 난치성 뇌전증과 지적장애, 좌측편마비 등 장애를 앓게 됐다. 의사소통을 못하고 대소변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할 만큼 거동이 불편해 누군가 24시간 곁에서 돌봐야 했다. 그 누군가는 친모인 A씨였다.

A씨에게는 자신의 삶이 없었다. 항상 딸과 함께 있어야 했다. A씨의 남편은 지역을 돌며 일했기 때문에 주말에만 집에 왔다. 아들이자 B씨의 남동생은 결혼 후 분가했다. 장애 때문에 누워서 생활해야 하는 딸을 돌보는 일은 온전히 A씨 몫이었다.

힘들었지만 A씨에게 B씨는 예쁜 딸이었다. B씨의 남동생은 지난해 12월 8일 인천지법 형사14부(부장 류경진) 심리로 열린 A씨에 대한 살인 혐의 결심공판에서 "엄마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누나한테서 대소변 냄새가 날까 봐 매일 깨끗하게 닦아줬다"며 "다른 엄마들처럼 옷도 예쁘게 입혀줬다"고 말했다. A씨는 그렇게 무조건적인 모성애로 40년 가까이 딸을 돌봤다.

하지만 지난해 1월 28일 고비를 맞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B씨가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A씨는 포기하지 않고 딸의 곁을 지켰다. 딸에게 항암치료를 받게 하고 간병도 전담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보호자 한 명만 환자 옆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에, 교대해주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A씨는 개의치 않았다. 딸이 태어난 뒤 줄곧 그랬던 것처럼 홀로 B씨를 간호했다.

A씨를 무너뜨린 것은 암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딸의 모습이었다. 항암치료 과정에서 혈소판 감소 증세가 발생해 치료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B씨는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런 딸을 바라보던 A씨는 극도의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로 불안증세와 불면증에 시달렸다. A씨는 결국 딸이 대장암 진단을 받은 지 넉 달 만에 병원에서 심각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딸 살해하고 극단 선택 시도...법정서 "난 나쁜 엄마"

A씨는 결국 딸의 고통을 없애주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지난해 5월 23일 오후 4시 45분쯤 인천 연수구 자택에서 불면증 치료를 위해 처방받아 복용하던 수면제를 딸에게 먹인 뒤 살해했다. 이후 유서를 작성한 A씨는 수면제를 먹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지만, 6시간 뒤 집을 찾아온 아들에게 발견됐다.

살인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그는 "딸이 잠들었을 때 죽게 하는 게 가장 고통이 덜할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지난해 10월 재판에 넘겨진 A씨를 살펴본 의사는 "범행 당시 극도의 불안, 초조, 절망감, 우울 등의 정신적 문제와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해 대안적 사고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의사 결정 능력이 미약한 심신미약 상태에 놓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감정했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법대로 해야 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8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살인 혐의로 기소한 A씨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A씨는 최후진술을 통해 "버틸 힘이 없었고, 내가 죽으면 딸은 누가 돌볼까 걱정돼 여기서 끝내자는 생각이었다. 혼자 살아남아 정말 미안하다"고 오열했다. A씨의 아들도 증인으로 나와 "어머니는 누나가 암에 걸려도 무너지지 않았지만 항암치료가 중단되자 우울감을 호소했다. 누나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우발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A씨의 변호인은 "A씨는 딸의 뇌병변 장애 때문이 아니라, 말기 대장암 진단을 받고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우발적으로 범행했다"며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코로나19로 혼자 피해자를 돌보던 피고인은 범행 당시 '우울증으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전문의 소견까지 받을 정도로 극한에 몰린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A씨 가족은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를 통해 "어머니는 아픈 자식만을 바라보고 그 자식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시다 막다른 절벽에서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하셨다"며 "40년 가까운 세월 누나와 함께 보이지 않는 감옥 속에 갇혀 고통 속에 살아오신 어머니를 다시 감옥에 보내고 싶지 않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법원은 국가 역할 언급하며 선처...검찰도 항소 포기

인천지법 전경. 최주연 기자

인천지법 전경. 최주연 기자

법원은 지난달 19일 선고공판에서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중형 선고가 예상됐지만, 법원도 A씨의 헌신적이고 모진 삶을 외면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아무리 어머니라고 하더라도 딸의 생명을 처분하거나 결정할 권리는 없다. 피고인을 엄벌에 처함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범행 당시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했다는 A씨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러나 "A씨는 38년이 넘도록 피해자를 돌봤고, 통상적 자녀 양육에 비해 많은 희생과 노력도 뒤따랐을 것으로 보인다"며 "대장암 진단을 받고 힘겹게 항암치료를 받는 피해자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본 피고인 또한 상당한 고통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A씨는 피해자에게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큰 죄책감 속에서 삶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며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들은 국가나 사회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오롯이 책임을 지고 있고, 이번 사건도 피고인 탓으로만 돌리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도 이례적으로 항소를 포기했다. 결심공판에서 구형 이유를 따로 설명하지 않았던 인천지검은 지난달 27일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선처를 요청하는 경우 유사 사건에서 선처를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어 징역 12년을 구형했다"며 "피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제한적이었고, 만장일치로 항소를 반대한 검찰시민위원회 의결 내용을 종합해 항소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A씨의 가족은 한국일보에 "가족들은 어머니의 심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환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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