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감성의 작곡가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년… "협주곡 4번은 숨겨진 보석"

입력
2023.02.06 04:30
20면
0 0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1936년 전후로 찍힌 것으로 추정되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스

1936년 전후로 찍힌 것으로 추정되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은 영화음악 같아서 듣기 좋아요." 한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극장을 나서면서 했던 말이다. 결코 쉽게 연주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감미로운 멜로디와 긴 호흡 안에 담긴 마이너적 감수성, 러시아 대지를 연상시키는 웅장한 스케일, 기교적으로도 빼어나 음악적 재미를 갖춘 덕분에 '영화음악처럼' 감미롭게 들린다. 서사와 극적인 효과도 좋은데, 덕분에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인 영화나 드라마에도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자주 등장한다. 안 그래도 사랑받고 있지만 최근에는 뛰어난 한국 피아니스트들이 중요한 무대 때마다 무시무시한 연주를 보여줘 라흐마니노프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린 상태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는 러시아 낭만주의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다. 19세기 최고의 비르투오소(Virtuoso) 피아니스트로 리스트가 있었다면 그 명성을 20세기에 다시 일으킨 인물은 라흐마니노프다. 올해는 라흐마니노프의 탄생 150주년이자, 서거 80주기를 맞는 해인 만큼 곳곳에서 라흐마니노프의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2018년 발매된 다닐 트리포노프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 4번 연주 앨범의 커버

2018년 발매된 다닐 트리포노프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 4번 연주 앨범의 커버

현역 최고의 젊은 피아니스트로 사랑받고 있는 다닐 트리포노프가 지난 2018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앨범을 발매한 적이 있다. 작곡가가 말년에 가장 사랑하고 생전에 함께 연주했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번호가 붙은 협주곡 4곡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까지 녹음해 라흐마니노프의 모든 협주곡을 4년에 걸쳐 완성한 것이다. 이 앨범은 이듬해 'BBC뮤직 매거진' 어워드에서 '최고의 협주곡 앨범'에 선정됐다. 앨범 발매 전 트리포노프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 역시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현악 앙상블과 피아노곡, 교향곡을 쓰는 작곡가로서 동향의 음악가 라흐마니노프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듣자마자 사람의 감정선을 끌어올리는 음악입니다. 감정 표현이 가장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연주자들에게는 매번 어렵고 복잡한 곡이죠. 작품을 만날 때마다 깊어지고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것들이 많은데, 이것이야말로 라흐마니노프의 매력일 것입니다. 음악가에게도 재미있는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평소 음악을 잘 모르던 일반인도 뜨거운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거든요."

협주곡 2번은 도입부부터 '스토리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특히 많은 곡이다. 연주회 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무대에 서는데 다양한 스토리를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번 도전이 된다는 것이다.

"협주곡 3번은 연주자에게 매우 부담스러운 작품입니다. 그의 협주곡 중 가장 형이상학적이고 영적인(spiritual) 작품이죠. 감정적 요소가 많지만 그것을 모두 내적으로 깊이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고민하고 표현하지 않으면 연주하면서도 완전히 지쳐버릴 수 있거든요. 기술적으로도 늘 어려운 작품이지만 감정의 온도 조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연주 중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어요." 영화 '샤인'에서도 연주자의 과몰입 상태를 봤기 때문에 많은 이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연주자가 느끼는 어려움과 복잡함은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할까. 라흐마니노프 연주 전 트리포노프의 습관이 흥미로웠다. "작품마다 연주를 위한 어떤 신체적인 접근 방식이 있는데 좋은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혹은 특정한 사운드를 만드는 데 수영은 큰 도움이 됩니다. 수영은 무대 위에서 오래 버텨낼 수 있는 힘도 키울 수 있지만 물속에서 물의 저항을 이겨내는 동작을 하는 동안 어떤 형태로든 소리에 영향을 미치거든요. 기본적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좋겠지만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호흡으로 감정을 다스리고 유연성, 특히 어깨의 유연성을 만드는 데도 수영이 큰 도움이 됩니다."

올해는 협주곡 4번도 자주 들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협주곡 4번은 재즈의 리듬을 포함해 라흐마니노프가 살았던 시대와 지역, 그로 인해 영향받은 수많은 영감을 담아내 전작들과 성격이 많이 다르다. 전체 구조부터 음악적 디테일까지, 수많은 실험과 오랜 시간의 수정을 거쳐 작품에 접목한 요소들이 성숙해질 때까지 고민한 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트리포노프는 4번을 가리켜 '숨겨진 보석'이라고 했다. 어떤 작품은 연주하자마자 유명해지고 인기를 얻는 곡이 있지만 어떤 작품은 사랑받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이 작품 역시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랑받게 되기를 기다린다.


객원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