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첫 바로크 음반 '헨델 프로젝트' 발매
4일 독일 베를린서 화상 기자간담회 개최
"콩쿠르 출전에 반대하는 의견에 반대… 기회 얻는 가장 쉬운 경로"
"한 도시에 1000~2000명 청중만 있어도 감사하며 연주할 것"
피아니스트 조성진(29)에게 지난해 2월은 생애 최고로 피아노 연습을 많이 한 시기다. 그간 정규 앨범 5장을 포함해 도이치그라모폰(DG) 레이블의 음반 7장을 통해 고전·낭만주의 음악을 주로 선보였던 그가 처음으로 바로크 음악을 담은 여섯 번째 정규 앨범을 준비하면서다. 마침 계획돼 있던 연주 투어 일정이 취소되면서 한 달간 집에서 매일 7~8시간씩 피아노를 쳤다. 그렇게 나온 음반이 3일 DG를 통해 발매된 '헨델 프로젝트'다.
독일 베를린에서 4일 앨범 발매 기념 온라인 화상 기자간담회를 연 조성진은 "바로크는 이해하고 자신감이 붙기까지 다른 음악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음악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헨델, 바흐, 베토벤 등 평소 시간이 없어 못 했던 곡을 많이 쳐 보는 시간을 가졌다"며 "그때 헨델의 음악이 많이 와닿았다"고 레퍼토리 선정 배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바로크 음악을 많이 접해 보지 않아 바흐보다 헨델이 조금 더 접하기 쉬울 것 같았지만 공부하면서 헨델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다"며 "그래도 새로운 것, 바쁜 일상을 좋아해 새 레퍼토리 도전 과정에 희열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앨범엔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 1권 중 조성진이 가장 아끼는 세 곡인 2번 HWV427, 8번 HWV433, 마지막 악장 '흥겨운 대장간'으로 유명한 5번 HWV430이 담겼다. 모음곡 2권에서는 7번 HWV440 중 세 번째 악장 사라방드 B플랫장조와 빌헬름 켐프가 편곡한 1번 HWV434 중 미뉴에트 G단조가 수록됐다.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과 더불어 브람스가 헨델의 모음곡 3번 B플랫장조 HWV434의 아리아를 바탕으로 쓴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도 음반에 함께 담았다. 조성진은 "바흐는 지적이고 복잡하다면 헨델은 가슴을 울리며 선율적인 면이 있다"며 "어렸을 때 치던 화려한 곡을 공부할 때와는 또 다른 배움이 있어 한국 피아노 전공생들도 헨델을 더 많이 연주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성진은 이번 앨범으로 5일 하노버를 시작으로 독일 주요 도시와 런던, 밀라노, 빈 등에서 연주 투어를 갖는다. 헨델이 프로그램에 포함된 한국 리사이틀은 7월에 열린다.
최근 대중음악 못지않게 커진 클래식 음악계의 팬덤 문화는 조성진의 2015년 한국인 최초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이 시발점이었다. 매 공연마다 '피케팅(피 튀기듯 치열한 티케팅)' 열기가 뜨겁지만 정작 그의 인생관은 성공보다 행복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는 "좋은 음악인이 좋은 커리어가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음악인과 커리어는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며 "요즘 들어 명망 있는 지휘자나 연주자보다 마음이 맞는 이들과 함께하는 연주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폭발적인 팬덤의 지속성에 대해서도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한 도시에 제 연주를 찾아주는 사람이 1,000~2,000명만 있어도 감사할 것 같다고 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이에요."
조성진은 1년 전부터 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콩쿠르와 K클래식의 부상과 관련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그는 "콩쿠르 자체는 싫어하지만 콩쿠르에 나가는 걸 반대하는 의견에는 반대하는 편"이라고 했다. "한국 연주자들은 왜 콩쿠르에 그렇게 많이 나가냐고 외국 기자들이 늘 묻는데 콩쿠르는 기회가 열리는 가장 쉬운, 또는 유일한 경로일 수 있거든요. 유럽 음악가보다 뛰어난 한국 음악인이 많다고 옛날부터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K클래식이) 주목받는 거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다른 음악가들처럼 팬데믹 초기 불안한 마음이 컸던 조성진은 2021년 가을부터 다시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어려선 상상도 못했던 연주 여행이 거듭되는 삶을 살면서 감동을 받거나 뜻하지 않게 신세를 져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되는 경험도 종종 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러시아 연주자 대타로 뉴욕 카네기홀에서 빈필하모닉과 협연을 마친 후 지휘자 야닉 네제 세갱과 포옹한 순간의 감동, 여행가방 분실로 미국 버클리에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알리소 비에호에선 빌린 양복을 입고, 보스턴에선 피아니스트 신창용의 연주복을 빌려 입고 무대에 오른 일화 등을 소개했다.
조성진은 일상도, 머릿속도 음악으로 꽉 차 있다. 새로운 악보를 사서 곡을 배울 때 가장 행복을 느끼고, 음악은 클래식 음악만 듣기에도 시간이 부족해 다른 장르는 잘 듣지 않는다.
"피아노 레퍼토리는 너무 많아서 선택의 고민은 없고 다 해 보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한 게 고민이라면 고민이에요. 최대한 연주하고 연습하는 그런 생활이 좋아서 하루가 30시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럼 연습도, 휴식도 많이 하고 시차 적응도 빨리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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