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부여 고구려 백제를 읽으면서 감회에 젖다

입력
2023.02.05 19:00
25면
0 0
박성진
박성진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고전에는 독자를 매혹시키는 끝 없는 발견과 감상이 담겨 있다. 삼국지 고구려전(왼쪽), 왕희지가 쓴 종요의 천자문.

고전에는 독자를 매혹시키는 끝 없는 발견과 감상이 담겨 있다. 삼국지 고구려전(왼쪽), 왕희지가 쓴 종요의 천자문.


중국 역사서 속 고구려·부여 사람의 다양한 모습
백제의 문화 전파 기록을 외면하는 일본 학자들
끝없는 발견과 감상으로 매혹당하는 고전의 가치

"부여인들은 굳세고 용감하면서도 신중하고 성실하며 노략질을 하지 않는다. 은나라 역법으로 정월이 되어 하늘에 제사를 올릴 때는 온 나라 사람들이 큰 모임을 가지고 며칠 동안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데 그것을 영고(迎鼓)라고 부른다. 길에 나서면 낮이든 밤이든 늙든 어리든 가릴 것 없이 어김없이 노래를 부르기에 종일 노래가 그치지 않는다."

진수(陳壽)의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기록이다. 부여는 고조선에서 나와 고구려, 백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 정체성에 큰 영향을 준 나라이다. '동이전'은 비교적 간략하므로 중국과 확연히 다른 부분 위주로 써 놓았을 것이다. 중국인은 어디서나 노래하던 부여 사람들이 신기했다. 그럼 고구려는 어떨까.

"고구려는 좋은 땅이 없어 아무리 애를 써서 농사를 지어도 입과 배를 채우기에 넉넉하지 못하다. 먹는 것은 아끼지만 궁전 조성하는 것을 좋아해서 사는 집 좌우로 큰 건물을 세우고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그 나라 사람들은 기질이 거칠고 급한 데다 노략질하기를 좋아한다. 고구려 백성들은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여 마을마다 저녁나절만 되면 남녀가 무리를 지어 모여 서로 노래하기를 즐긴다. 그 나라 사람들은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술을 잘 빚는다. 걸음걸이가 뛰는 것 같다. 시월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나라에서 큰 모임을 갖는데 이를 동맹(東盟)이라고 한다."

"노략질을 잘한다"는 중국을 자주 공격했다는 뜻이다. 중국과 가깝던 부여와 달리, 늘 쳐들어오던 고구려에 감정이 좋지 못한 심리가 느껴진다.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가무를 즐기고 '빨리 걷는다'는 표현이다. 이방인이 본 고구려는 늘 어깨춤에 노래를 흥얼거리며 빨리 걷던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구당서(舊唐書) 고려전'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사람들이 배우기를 좋아하여 가난한 마을이나 미천한 집안까지도 서로 힘써 배우므로, 길거리마다 큼지막하게 공부하는 집을 짓는데 경당(扃堂)이라고 부른다.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들을 이곳에 보내어 글을 읽고 활쏘기를 익히게 한다."

고구려 사람들은 출세 여부와 관계없이 책 읽기를 좋아했다. 입신양명을 위한 독서가 아니었기에 잘살든 못살든 높든 낮든 즐길 수가 있었다. 외세와 맞서기 위해 활과 함께하는 상무 정신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기록으로 찾은 본래의 우리는 낙천적이고 흥이 넘쳤으며 삶을 사랑했다. 좌절과 비탄에 빠진 한(恨)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한편, 일본 고대사는 백제가 주인공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왕인(王仁) 박사가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고사기(古事記)'에는 왕인이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허구라 주장하는 일부 일본 학자도 있다.

근거는 '천자문'을 만든 주흥사(周興嗣, 502~549)가 4세기 말~5세기 초에 활동한 왕인보다 거의 100년 뒤 사람이라는 점이다. 기실, 처음으로 '천자문'을 만든 사람은 종요(鍾繇, 151~230)로 현행 '천자문'과는 그 내용이 다른데 왕희지(307~365)가 쓴 탁본이 아직도 전해진다. 즉 '고사기'와 '일본서기'는 종요의 '천자문'을 왕인이 전수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백제의 흔적을 지우려 자기들 역사까지 부정하니 딱하다. 이렇듯 고전은 끝이 없는 발견과 감상을 불러일으키며 우리를 매혹한다.

바람에 온기가 느껴지니 엄혹한 겨울이 가고 새봄이 오는가 보다. 조용히 왕인 박사의 '난파진가(難波津歌)'를 읊조려 본다. "난파진에는/피는구나 이 꽃이/겨울잠 자고/지금은 봄이라고/피는구나 이 꽃이" 여기서 난파는 지금의 오사카를 말한다. 가본 적도 없건만 친근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지금까지 '중독 고전' 칼럼을 성원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박성진 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