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고위 공무원·기업인 겨냥 '대대적 단속'
우크라이나서 열리는 EU 정상회담 의식한 듯
우크라는 EU 조기 가입 원하나... EU는 '미온적'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전·현직 공무원과 기업인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반(反)부패 수사에 나서는 등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유럽연합(EU) 가입, 무기 지원을 논의할 EU 정상회의가 우크라이나에서 열린다고 하자, 대외적으로 부패 청산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EU는 우크라이나의 부패 대응을 EU 가입의 중요 조건으로 강조하고 있는 상태다.
대규모 개각 이어 고위 공무원 기업인 자택 수사
1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수사당국은 △아르센 아바코우 전 내무장관 △키이우 조세당국 책임자 △기업가 이호르 콜로모이스키 등을 겨냥해 자택 수색을 진행했다. 올렉시 수카체프 국가수사국(SBI) 국장은 "고위 공직자 부패 사건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부패 세력에 대한 지속적인 단속을 시사했다. 바실 말리우크 우크라이나 보안국(SBU) 국장도 "우리는 (부패 단속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전쟁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피해를 주는 모든 범죄자는 결국 수갑을 차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바코우 전 장관은 지난달 내무부 장·차관 등 14명이 사망한 헬리콥터 추락 사건과 관련해 수사를 받고 있다. 사고 헬리콥터는 그가 내무장관으로 재직하던 때(2014~2021년) 구매 계약이 맺어졌다. 당국은 뇌물 수수 등을 의심하고 있으나, 아바코우 전 장관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날 자택 수색을 당한 키이우 조세당국 책임자 집에서는 미화 15만8,000달러(약 2억 원) 등 거액의 돈다발이 나왔다. SBI는 "조세당국 책임자가 집값이 100만 달러에 달하는 키이우 아파트 3채를 보유하는 등 그의 급여(약 8,000달러)에 걸맞지 않은 호화로운 생활을 해 왔다"고 설명했다. 기업인 콜로모이스키는 자신이 지분을 보유한 2개 석유 기업에서 벌어진 9억3,000만 유로(약 1조2,500억 원) 규모의 횡령 사건에 연루돼 있는 데다, 탈세 혐의도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국방부 차관, 검찰 부총장, 대통령실 차장 등 정부 고위인사 10여 명을 교체하는 개각도 최근 단행했다. 이들 인사 역시 부패 관련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U 조기 가입 의식...EU는 '부정적'
사실 우크라이나의 부패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31년 전 독립할 때부터 공무원·정치인 부패가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국제투명성기구(TI)는 2021년 우크라이나의 '부패인식지수'가 세계 180개국 가운데 120위라고 밝혔다. 사실상 유럽 최하위권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부패 문제가 심각하다고 해도, 이번 단속은 다소 의외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규모 개각이나 전·현직 공무원 및 기업인을 겨냥한 자택 수색은 전시 상황을 감안할 때 좀처럼 이뤄지기 쉽지 않은 조치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크라이나의 이번 부패 수사는 3일(현지시간) 현지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를 의식한 조치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EU는 이번 회담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EU 가입과 무기 지원 방안 등을 논의하는데,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가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조건으로 '법치와 정의,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하고 있어서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6월 EU 가입을 신청해 가입 후보국 지위를 부여받은 상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영상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새로운 개혁을 준비하고 있다"며 부정부패 척결 의지를 EU에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우크라이나의 부패 근절 노력이 EU 가입의 결정적 변수가 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는 EU 가입 프로세스를 무시하고 우크라이나에만 특혜를 줄 수 없다는 인식이 EU 회원국들 사이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영국 BBC방송은 EU 일부 회원국들이 회담을 앞두고 '2년 내 EU 가입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우크라이나에 분명히 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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