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수어 이름

입력
2023.02.03 04:30
25면
0 0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필자는 업무 특성상 농인을 만날 기회가 많은 편이다. 처음 수어 업무를 맡고 초보적인 수어를 배운 뒤 농인을 만나 'ㅊ' 'ㅚ' 'ㅎ' 'ㅖ' 'ㅇ' 'ㅜ' 'ㅓ' 'ㄴ' 느리고도 길게 지문자로 이름을 소개했다. 상대 농인은 대뜸 '수어 이름(얼굴 이름)'이 뭐냐는 질문을 했다. 서툰 수어를 하느라 진땀을 뺀 뒤라 또 무슨 답을 해야 하는지 무척 당황스러웠다. 나중에 들은 설명으로는 농인에게는 한국어 이름 외에 수어 이름이 있고 이는 농문화의 고유한 특징이라는 것이었다.

수어 이름은 농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알릴 뿐만 아니라 지문자 대신 더 빠르고 쉽게 대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개는 신체적 특징, 특히 얼굴의 특징을 중심으로 '보조개', '안경'과 같은 수어 이름이 만들어진다. 한국어 이름에서 힌트를 얻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은혜', '빛나', '보배' 같은 이름은 그에 해당하는 수어를 쓰는 것이다. 그 외에도 취미, 직업 등에 따라 '돌고래', '미용사' 등의 수어 이름을 만든다. 이때 성별을 구별해야 하는데 남자를 나타내는 엄지손가락, 여자를 나타내는 새끼손가락을 수어 이름에 함께 포함한다.

농부모 가정에서 태어난 경우 부모가 수어 이름을 짓지만 청인 부모 밑에서 자란 농인은 농학교 등 농사회에서 만난 농인에게서 수어 이름을 받는다. 농사회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청인들에게도 가까운 농인이 수어 이름을 지어준다. 즉, 수어 이름이 있다는 것은 농사회의 일원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필자에게도 '보조개가 두 개인 여자'라는 수어 이름이 있다. 처음 수어 이름을 받았을 때의 기쁨이 문득 떠오른다.

최혜원 국립국어원 최혜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