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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셀프' 책 추천은 금지!

입력
2023.02.01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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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도서관마다 추천도서 코너가 있다. 그런데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추천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다. 우리 동네에 있는 아리랑도서관에 가서 찾아보니 내 책은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한 권밖에 없길래 다른 두 권도 가져다 놓으라고 추천을 할까 하다가 귀찮아서 말았는데 만약 했다가는 무안을 당할 뻔했다. 어떤 분이 '자기가 쓴 책을 직접 동네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하는 건 안 된다는 걸 알았다'라고 페이스북에 썼기 때문이다. 도서관 직원의 책상 앞에 서서 "편성준씨의 책을 편성준씨 본인이 신청하는 건 곤란합니다. 내규로 금지되어 있거든요"라는 말을 듣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이건 마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무라키미 하루키'라고 쓰여 있는 티셔츠를 입고 길을 걷다가 독자들에게 목격되는 것만큼이나 쑥스러운 일이다.('무라카미 T-내가 사랑한 티셔츠'라는 책에 진짜 이 이야기가 나온다) 하루키는 수많은 티셔츠를 소유하고 있지만 자신의 이름이 커다랗게 쓰여 있는 티셔츠만은 차마 입지 못하겠다고 썼다.

예전에 알던 카피라이터 중에 미키마우스 티셔츠를 다량 보유하고 있는 사람도 보았지만 어쨌든 티셔츠를 모으는 것은 약간 '쓸데없는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루키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하와이에 가서 샀던 티셔츠에 쓰인 토니 타키타니라는 이름을 보고 상상력을 발휘해 같은 제목의 단편소설을 썼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토니 타키타니'는 정말 좋은 소설이었고 나중에 마야자와 리에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하루키는 이 소설을 쓸 때 든 돈이 티셔츠값 1달러뿐이었다고 자랑을 했다.

나는 이런 사실을 모두 도서관에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도서관에 내 책이 있든 없든 나는 틈만 나면 도서관으로 달려간다. 도서관만큼 조용하면서도 흥겨운 장소는 없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진명의 에세이집 '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를 들춰 보면 그가 젊은 시절 도서관 문이 열릴 때부터 늦은 밤까지 매일 열람실에 앉아 책을 읽던 얘기가 나온다. 같은 도서관에서 고시공부를 하던 친구들은 하루 종일 문학이나 사회과학, 철학책 등을 닥치는 대로 읽고 있는 김진명을 신기하게 바라보았고, 김진명은 수천 년 인류가 쌓아 온 역사와 사상의 결과물을 외면한 채 좁은 고시 공부에만 매달리는 그들을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누가 맞고 틀렸을까. 물론 둘 다 성공이었다. 김진명은 펴내놓는 족족 슈퍼 베스트셀러가 되는 유명 소설가가 되었고 고시공부를 하던 사람들도 대부분 판검사가 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도서관에서 무궁무진한 호기심으로 책을 찾아 읽고 글을 쓰던 사람과 법조문을 달달 외워 시험을 치고 고시를 패스한 사람의 인생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최근 서울시에서 구 단위로 운영되는 '작은도서관'을 없애겠다고 해서 좀 시끄러웠다. 2015년부터 한해 7억~8억 원씩 지원되던 돈을 2022년 말에 돌연 '전액 삭감'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다행히 비난 여론이 일자 1월 20일에 '지원 취소를 재검토하고 작은도서관을 계속 지원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보도가 있었으니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고맙게도 이제 아리랑도서관 서가엔 내 책 세 권이 모두 꽂혀 있다. 어떤 독자분이 추천도서 신청을 해주신 덕분이다. 이 지면을 빌어 작가가 직접 자신의 책을 추천하다 망신당하는 일을 막아 주신 그분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편성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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