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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장 ‘한 말씀’에 내려간 대출금리

입력
2023.01.30 18:00
수정
2023.01.30 18:23
26면
0 0
장인철
장인철수석논설위원

당국 압박에 대출금리 잇단 인하 시늉
은행 66조 원 ‘이자장사’ 동안 뭐했나
국책은행에 적정 금리 선도 맡겨보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월 1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월 1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현 정부가 내세우는 경제이념은 자유시장경제다. 시장 취약점을 보강한다며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고 나서 봤자, 긍정적 효과보다는 경제 활력과 성장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적극적 시장개입에 나섰던 ‘소득주도성장’이 참담하게 실패한 데 따른 반작용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 경제정책이 과도한 정부 개입의 부작용을 줄이고 자유시장경제의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잘 나아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자칫 구호와 실질이 겉돌며, 자유시장경제도 정부 개입도 아닌, 그저 고질화한 정책 편의적 ‘관치’만 판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어 하는 소리다. 금융 부문이 특히 그렇다.

최근 NH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이어, 차기 우리금융지주 회장 후보로 재무관료 출신 인사가 또 거론되자 ‘관치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는 굳이 말해도 관치의 변두리일 뿐 문제적 관치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정작 자유시장경제도 정부 개입도 아닌, 구시대적 관치의 습속은 금융사 CEO 인사 논란 같은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온존하고 있다고 본다. 지난 1년여 동안 기준금리 인상보다 더 빨리, 더 높이 대출금리를 높이며 이자장사로 큰 재미를 봤던 은행들이 최근 금감원장의 ‘한 말씀’에 즉각 대출금리 인하에 나선 행태야말로 관치의 고질을 새삼 드러낸 전형적 풍경이라 할 만하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지난 13일 “은행권은 대출금리를 내릴 수 있는 재량이 있다”며 대출금리 인하를 직설적으로 압박한 건 은행 빚을 안고 있는 서민들에겐 설 선물이라 할 만했다. 이 원장의 압박에 은행들은 즉각 대출금리 인하계획을 경쟁하듯 밝히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작 국민들로선 일부 대출에 한해, 소수점 한두 자리에 불과한 은행들의 ‘선심성’ 인하가 결코 유쾌할 수는 없었다.

사실 금융소비자로서는 여론이 들끓어야 당국이 눈치를 주고, 그제야 은행들이 금리인하 시늉이라도 하는, 이런 식은 거대한 야바위판을 보는 듯한 불쾌감을 준다. 이 원장은 지난해 6월 취임 직후부터 누차 은행들의 지나친 ‘이자장사’에 대해 경고해왔다. 하지만 그때뿐, 4대 금융지주가 지난해 ‘이자장사’로만 전년 대비 30% 이상 급증한 약 66조 원의 이익을 거두는 동안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실효적 견제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당국이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방관하며 내세우는 명분은 ‘가격(금리)에 대한 직접적 개입은 시장원리에 위배된다’는 ‘신성한’ 언명이다. 하지만 은행 소매금리가, 담합까지는 아니어도, 업계 간 컨센서스에 따르는 제한경쟁 상황이라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자유경쟁을 전제로 한 ‘시장원리’ 주장은 근본적으로 타당치 않다. 이런 ‘눈 가리고 아웅’하는 구조 속에서 당국과 관료는 은행의 ‘부당이익’을 은근히 방관하고, 은행은 때때로 관치를 비난하면서도 정작 관료에 충성하는 ‘금정유착’이 고질화하게 된 것이다.

금융 부문만이라도 이런 식의 시장경제도 아니고 정부 개입도 아닌, 고질적 관치를 개혁하는 지름길은 시스템이다. 굳이 관치라는 비판을 감수하며 은행 금리 산정ㆍ운영실태 지속적 모니터링, 은행 예대금리차 비교공시 같은 변죽을 울릴 이유가 없다. 지름길은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부터 먼저 ‘지나치지 않은 대출금리’를 적용해 일종의 시장조성자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도 가격 개입이라느니, 주주 이익 침해니 하는 소리 하지 말기 바란다. 일단 시작하면 주식 거래자들은 그걸 감안해 거래할 것이고, 가격 개입 문제는 시장에서 시장조성자로서 경쟁가격을 이끄는 역할인데 무슨 시비가 있겠는가. 바꿀 생각이라면 제대로 바꾸기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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