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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보드 타는 인류의 종말... "눈도, 슬로프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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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보드 타는 인류의 종말... "눈도, 슬로프도 사라진다"

입력
2023.01.28 04:30
수정
2023.01.28 08:09
2면
0 0

눈 안 쌓이고 산불 빈번...스키·보드 '존속 위기'
화석연료·물 수천 톤 사용...인공눈, 악순환 유발
"근본적 해결책 찾아라"... 친환경 스키장 등장

지난해 말, 프랑스 르 셈노즈 스키 리조트 슬로프 정상의 모습. 눈이 다 녹아 그 밑의 흙과 죽은 풀이 드러나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해 말, 프랑스 르 셈노즈 스키 리조트 슬로프 정상의 모습. 눈이 다 녹아 그 밑의 흙과 죽은 풀이 드러나 있다. AFP 연합뉴스

스키와 스노보드가 겨울 스포츠의 대명사이던 시절이 끝날지도 모른다.

지구온난화로 겨울엔 눈이 녹고, 여름엔 산불로 스키·스노보드 코스가 사라진다. 대안은 인공 눈이지만, 스키어와 스노보더는 슬로프를 활강하며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제설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사용되고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탓이다. '기후변화 → 눈 실종 → 인공 제설 → 기후변화 촉진'의 악순환이다.


◇ 내린 눈 녹고 자연 적설량도 감소...'눈의 실종'

올해 유럽엔 '더운 겨울'이 닥쳤다. 일부 지역에선 낮 기온이 섭씨 20도를 넘나들어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겼다. 스키 슬로프가 눈 대신 초록 풀로 뒤덮이면서 유럽 겨울 스포츠의 메카인 알프스 스키장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기온이 오르면 스키장은 이중 타격을 받는다. 스키장 인근 빙하가 녹아 쌓인 눈의 녹는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내리는 눈의 양도 감소한다. 대기가 따뜻하면 구름에서 떨어지는 얼음 결정이 녹아 눈 대신 비로 내리기 때문이다. 스위스 눈사태연구소는 "알프스의 눈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녹고 강설량이 현재 추세로 줄어든다면, 2100년엔 알프스에서 볼 수 있는 눈의 최대 70%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온이 상대적으로 높은 해발고도 1,600m 아래의 저지대 스키장은 이미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스키장에 쌓인 눈 높이가 10년마다 3, 4cm꼴로 줄어드는 중이다. 스위스의 스키장들은 여름에도 눈과 빙하가 녹지 않도록 설산을 보호용 담요로 덮어 두지만, 미봉책이다.

기온 상승으로 인한 알프스 눈의 양 변화. 그래픽=강준구 기자

기온 상승으로 인한 알프스 눈의 양 변화. 그래픽=강준구 기자


◇뜻밖의 복병 된 상습 산불에 ‘산림 실종’

미국 스키장들은 폭염으로 인한 산불로 골머리를 앓는다. 나무가 불타고 산악 지형이 훼손되면서 스키 코스가 통째로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다.

2021년 8월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약 3500㎢(서울의 11배) 면적의 산과 들이 불타면서 '시에라 앳 타호' 등 대형 스키 리조트를 집어삼켰다. 스키장 시설과 코스가 전소돼 올해까지 정상 운영이 불가능하다. 존 라이스 총지배인은 “시커멓게 불에 탄 나무를 뽑아내고 다시 심어야 하는데, 아직 수천 그루가 남았다"고 말했다.

미국 서부 스키장들은 추위가 아닌 더위에 대비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헤븐리 마운틴 리조트’는 민간 소방 인력을 대거 고용했다. 2020년 대형 산불을 두 번 연달아 겪은 콜로라도주 덴버의 '윈터 파크 리조트'는 병충해로 말라버려 불이 붙기 쉬운 나무들을 선제적으로 벌목해 환경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트웨인에서 대형 산불 '딕시'가 맹렬한 기세로 숲을 태우고 있다. 트웨인=AFP 연합뉴스

지난해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트웨인에서 대형 산불 '딕시'가 맹렬한 기세로 숲을 태우고 있다. 트웨인=AFP 연합뉴스



③ ‘설산’ 유지하려는 인공 제설, ‘기후 악순환’

제설기에서 인공 눈이 살포되는 모습. 뉴스1

제설기에서 인공 눈이 살포되는 모습. 뉴스1

자연 적설량이 급감하자 재정 여유가 있는 스키장들은 인공 눈으로 슬로프를 채우고 있다. 그러나 인공 눈은 기후변화의 또 다른 원인이다. 인근 계곡과 강의 물을 바닥내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1㎥ 부피의 인공 눈을 만드는 데는 물 400리터가 사용된다. 스위스 바젤 대학의 지난해 연구에 따르면, 해발고도 2,000m에 있는 스키장을 100일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인공 눈에 약 3억 리터의 물이 쓰인다. 올림픽 규격 수영장 120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다. 눈이 감소하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점점 더 많은 물이 필요하다. 같은 연구는 "인공 제설 때문에 알프스 지역의 물 소비량이 앞으로 100년간 9배 가까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설기 작동에 화석연료가 쓰이는 것도 문제라고 BBC는 짚었다. 벨기에 루방 가톨릭대의 마리 카비테 기후 연구원은 “대부분의 제설 기계는 전기 에너지를 쓰거나 화석 연료를 태워 작동한다”며 “기후변화 때문에 잃은 눈을 되찾겠다면서 탄소를 더 생산하는 인간의 아이러니”라고 꼬집었다. 프랑스 스키장 연합회(DSF)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스키장은 연간 1.6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데, 제설차 등 제설 기계가 배출량의 약 58%를 차지한다.

◇"근본적 해결책 찾자"... '기후 운동'하는 스키 업계

미국 콜로라도에 위치한 '블루버드 백컨트리'는 스키장 전기 수요의 99%를 태양열로 공급한다. 홈페이지 캡처

미국 콜로라도에 위치한 '블루버드 백컨트리'는 스키장 전기 수요의 99%를 태양열로 공급한다. 홈페이지 캡처

기후 위기로 스키·스노보드 산업이 존속 위기에 처하자 스키장들은 ‘친환경 대책’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미국 몬태나주 ‘빅 스카이 리조트’는 2030년까지 넷제로(실질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를 목표로 친환경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기 생산을 위해 리조트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고, 물 사용량을 줄였다. 스키 코스 조성에서 산림 벌채도 최소화하기로 했다. 스위스 ‘체르마트 리조트’와 프랑스 ‘레 두 알프’ 등의 스키장은 디젤 제설 장비를 수소로 작동하는 친환경 장비로 교체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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