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공작원-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신호 교환
정보협력국, 北공작원 해외 동선 정보 포착해
첩보 수집한 당국, 접선 장소 추적해 채증
“표적, 중국에서 베트남 하노이로 이동할 예정.”
2016년 이후 북한 공작원 리광진과 민주노총 간부가 해외에서 접선할 당시 정보당국이 추적하던 과정의 일부다. 당국은 우방국가인 '정보 협력국'과 공조해 우리 정보망으로 온전히 알아낼 수 없는 리광진의 해외 동선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리광진과 통신을 주고받은 것으로 파악된 민주노총 간부도 하노이행 항공편을 예약한 사실을 확인했다. 예상 접선장소와 공항 등에 대기하고 있던 요원들은 그렇게 리광진과 민주노총 간부가 만나는 장면을 촬영했다. 국가정보원이 간첩단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입증을 자신하는 이유다.
2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당국은 북한 문화교류국 산하 대남공작원 리광진이 이끄는 공작조 4명의 해외 동선을 정보 협력국과 구축한 정보망을 통해 감지했다. 통상 정보당국은 북한 공작원들의 해외 동선을 추적할 때 국내에 비해 큰 어려움을 겪는다. 통신장비를 꺼두거나, 국경을 넘나들 경우 연속적으로 감청을 하기 어려워 사각지대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역이용해 북한은 2010년 이후 공작원을 국내로 보내는 ‘직접 침투’ 대신 국내 포섭세력을 설득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접선하는 ‘우회 침투’를 택해 당국의 감시를 피해왔다.
정보당국은 △협력국과 해외 정보망을 구축하고 △리광진과 주고받은 ‘확인 정보’(서로 만나기 위해 처음으로 사용하는 인식 신호)를 확보하고 △리광진의 항공 일정과 예약 호텔 등을 파악했다. 이후 북한 공작팀과 민주노총 간부들의 유력 접선 장소에서 대기했다. 이런 방식으로 민주노총 조직국장 A씨가 2016년 8월 중국 베이징에서 리광진과 접촉하고 한 달 뒤 베트남 하노이에서 공작원 전지선과 접선하기 전후의 장면을 모두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A씨가 들고 다니던 ‘보스턴백’(여행가방)이 귀국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았다. 반면 리광진이 베이징에서 북한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공작금이 오갔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을 처음 포착한 것이다. 당국은 A씨가 베트남으로 출국한 2016년 9월 북한 공작원의 검은색 가방을 건네받아 국내로 들여와 환전하는 과정 또한 채증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7년 9월 A씨가 캄보디아 프놈펜, 2018년 9월 중국 광저우, 2019년 8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각각 리광진·김일진 등과 접촉했을 때도 당국은 통신 정보 파악과 미행을 통해 접선 장소를 알아냈다. 요원들은 2017년 9월 민주노총 조직국장과 보건의료 노조실장, 평화쉼터 대표가 하루 간격으로 리광진의 공작팀과 접선하기 전 공항에서의 모습과 접선 후 몇 시간 동안 현장에서 나오지 않는 장면들도 촬영할 수 있었다.
장석광 전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는 “해외 정보 역량은 북한 공작원들을 추적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간첩 사건은 음지에서 초기 색출하는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국민들 입장에서 피해를 크게 못 느끼는 경우가 많지만, 한 번 정보망이 뚫리면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촘촘한 해외정보망을 갖추지 못한 경찰이 대공수사권을 넘겨받는 건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도 “경찰은 우회 침투 간첩을 탐지할 수 있을 만한 정보망을 갖추지 못한 상태”라며 “국정원의 정보를 제공받는다고 해도 신속한 수사와 추적이 어려워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필요한 범위에서 국정원이 수집한 해외정보를 경찰에 제공하면 될 일”이라며 “정보권과 수사권을 동시에 갖고 있는 국정원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한 법을 되돌려야 할 만큼 수사에 큰 구멍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국정원이 맡아 온 대공수사권은 법 개정에 따라 내년부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로 이관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