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시장 활성화 프로젝트 '대박']
백종원·예산군 협업 5개 점포 신설
문 연 지 보름 만에 3만명 다녀가
주변 국밥거리까지 손님들로 북적
"이런 날 올 줄이야" 상인들도 놀라
지역소멸 걱정 덜어… 정부도 주목
“시장통에 사람들이 이렇게 몰린 건 거의 30년 만이쥬?”
“재료가 동나는 바람에 4시간 만에 문을 다시 닫았어유.”
“멀리 있는 며느리가 도우러 온다는디… 참 별일이유.”
충남 예산시장 상인들
요리연구가 백종원씨의 ‘특별한 레시피’가 충남 예산 전통시장에 마법을 부렸다. 점포 100개 규모의 예산시장에 고작 5개의 점포를 새로 넣고, 기존 점포 6곳에는 훈수 한번 뒀을 뿐인데, 보름 동안 3만 명이 찾았다. 청년 이탈과 출산율 저하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을 되살리기 위해 예산군과 진행한 협업 프로젝트에 전국이 응답한 것이다. 백씨와 예산군이 붙인 작은 불씨 하나에 후끈 달아오른 예산전통시장을 24일 다시 찾아봤다.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백씨의 먹거리 가게들이 문을 연 지 보름이 지난 시점이다.
30년 전 활기 되찾은 시장
파장 분위기가 짙은 해질녘.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시장통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설 연휴라서 문을 연 점포는 두 손으로 꼽을 정도였지만, 줄 없는 식당이 없었다. 사람들은 골목 이곳저곳을 누비며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온기의 중심은 장옥 마당으로 불리는 공터. 기존의 지붕에 더해 바람막이를 한, 500㎡가량의 공간에 스테인리스 원형 테이블이 깔린 곳이다. 근처 고깃집이나 식당, 카페에서 구입한 음식을 먹거나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다. 테이블 정리 전담 직원 8명은 시장 상인회가 고용했다.
이상식(49) 상인회 사무국장은 “원래 30개 정도만 놓으려고 했는데 테이블을 50개로 늘렸다”며 “이것도 턱없이 부족해 연휴가 끝나는 대로 20개가 더 들어오기로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4인용 테이블 70개로도 감당이 안 될 수도 있다. 손님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새로 문을 연 백씨의 상점들은 연일 완판 행진 중이고, 기존 점포들도 재료를 평소보다 많이 준비했지만 조기 소진으로 일찍 문을 닫을 정도였다. 시장을 찾았다가 그냥 되돌아간 손님도 제법 된다. 상인회가 이동통신사 기지국의 도움으로 어림한 최근 보름간 방문객은 3만 명. 이 사무국장은 “이 정도 규모는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며 “이젠 사람들이 겁이 날 정도”라며 웃었다.
상인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상인들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포장마차형 호떡집을 하는 이강중(59)씨는 “손님 30명 이상을 줄 세워 놓고 호떡을 구워냈다. 내 평생 이럴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전했다. 시장통에서 카페를 하는 신광진씨도 늘어난 손님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 카페는 원두를 연신 볶아대는 탓에 한겨울인데도 환풍구를 추가로 내야 할 판이다.
시장통 바깥에서 치킨집을 하는 강호일(70)씨는 “단골한테 닭을 팔지 못할 정도로 손님이 많다. 서울은 기본이고 대구 전주 군산 파주 부산 세종 등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리니 멀리 나가 있는 며느리가 와서 일을 돕겠다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시장 바깥 상황이 이 정도면, 장옥 마당과 시장 안쪽의 백씨 가게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날 식육점과 양조장은 이미 재고 소진으로 영업이 끝난 상태였다. 5곳의 주인은 백씨가 선발한 청년들이다. 예산과 연고가 없는 사람도 있다. 열정과 능력을 보고 뽑았다는 후문이다.
50년째 마당을 마주하고 잡화점을 하고 있는 진영상회 김모(76)씨는 지난 보름간의 시장 풍경을 늘어놓으며 “30년 전에나 가끔 보던 풍경”이라며 “옛날 장터 분위기가 난다”고 흐뭇해했다. 예산시장은 과거 홍성과 보령은 물론 천안에서도 사람들이 장을 보러 오던 곳이다. 가정에서 백일, 돌, 결혼, 회갑, 장례 등 각종 행사를 직접 치르던 시절, 모든 용품을 시장에서 조달할 때 전성기를 누리다 시나브로 쪼그라들었다. 백씨가 팔을 걷어붙이기 전 예산시장 공실률은 35%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서로 들어오려고 아우성이다.
예산시장의 진짜 변화는 아직
썰렁하기 이를 데 없던 시장이 사람들로 북적이면서 주변 국밥거리로도 온기가 옮겨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백씨와 예산군 입장에선 더 큰 소득을 얻었다. 2년 이상 이어진 구도심 활성화 사업에 반신반의하던 시장 상인들을 끌어안은 것이다. 장옥 마당 인근에서 잡화점을 하면서도 백씨의 폐점포 매입과 리모델링 공사에 반대하던 김지준(77)씨는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며 “이 분위기가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상인들 바람대로 예산시장은 변신을 거듭하며 사람들을 끌어모을 태세다. 이 사무국장은 “장옥 마당 일대를 야시장으로 꾸미는 것도 논의하고 있다”며 “곧 DJ 박스가 들어서면 예산시장에 더 많은 젊은이들이 찾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간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주민들과 중소벤처기업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등 유관기관도 손을 내밀고 나선 상황이다. 향후 계획이 속도감 있게 추진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역 20여 대학과의 협업도 추진되고 있다. 일반 마트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을 취급하는 점포의 품목 전환 작업, 예산시장이 아니면 살 수 없는 특산물을 활용한 매장, 몸빼 바지와 고무신을 체험할 수 있는 매장 입점 추진이 대표적인 예다. 백씨가 이끄는 더본코리아 관계자는 “기존 점포 지원을 통해 먹거리는 어느 정도 확보가 됐다”며 “볼거리와 즐길 거리, 살거리를 채워 예산을 소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동인구 증가가 생활인구 증가로 이어져 정착인구까지 늘릴 것이란 얘기다.
예산의 인구는 1992년 11만7,000명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1년 7만6,801명으로 바닥을 찍은 뒤 지난해 7만7,385명을 기록, 30년 만에 처음 인구가 늘었다. 최재구 예산군수는 “이번 프로젝트로 예산 인구가 늘어날지 관련부처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예산의 변화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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