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서 검토 과제로
강간죄 구성요건 '폭행·협박'→'동의'
메타버스 성폭력 처벌 조항 신설
성범죄 피해자 과거 성이력 증거 채택 금지
정부가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바꾸는 '비동의 강간죄' 신설을 검토한다. 또 메타버스 내 아바타를 활용한 성적 괴롭힘처럼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성폭력을 처벌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여성가족부는 26일 양성평등위원회를 개최해 이 같은 내용의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현행 형법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강간죄로 처벌하려면 가해자의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 하는 건데, 법조계에선 이 폭행, 협박이 '피해자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돼 왔다. 결과적으로 공포에 질린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으면 강간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는 강간 피해자가 신고를 꺼리게 만드는 대표적인 장벽으로 꼽혔다.
강간죄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바꾸면 이런 허점을 막을 수 있다. 이 때문에 2018년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구성요건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고 영국, 독일, 스웨덴 등이 비동의 강간죄를 신설했다. 국내에선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2018년 1심에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은 뒤 입법 논의에 불이 붙었지만 끝내 국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정부는 2020년 여성폭력방지정책 기본계획에서도 '비동의 강간죄 신설 필요성 검토'를 정책 과제로 꼽았으나, 정권이 바뀐 후 발표된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 같은 내용이 담겼다는 점에서 법 개정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가부 관계자는 "법무부와 같이 논의해서 만들어진 과제"라고 설명했다. 다만 법무부는 이날 기본계획 발표 이후 "(비동의 강간죄에 대해) 반대 취지의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며 "개정 계획이 없다"며 거리를 뒀다.
그 외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법률 정비 과제가 기본계획에 담겼다. 정부는 메타버스에서 '사람을 성적 대상화하여 괴롭히는 표현을 한 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성폭력처벌법을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또, 사건과 무관한 성폭력 피해자의 과거 성(性)이력을 증거로 채택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을 성폭력처벌법에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피해자의 '행실'을 무죄 증거로 삼는 것을 막고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대부분의 주에서 피해자의 과거 성관계에 대한 내용이 증거로 제시되지 못하게 하는 '강간피해자보호법'을 시행 중이다.
변수는 '거대야당'이 아니라 여당이다. 비동의 강간죄에 대한 대표적 반대 논거는 무고와 과잉처벌의 피해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2030남성 표심에 예민한 여당에서는 지난 대선 기간 이런 점을 들어서 비동의 강간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분출됐었다.
이 밖에 기본계획에는 △기업이 채용, 근로, 퇴직단계에서 성비 현황을 외부에 알리도록 한 '성별근로공시제' △육아휴직 기간을 1년에서 1년 6개월로 확대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양성평등위원회에 '권고' 기능 추가 등의 과제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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