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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과거에 갇혔다” 도쿄 10년 거주 BBC 기자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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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과거에 갇혔다” 도쿄 10년 거주 BBC 기자의 회고

입력
2023.01.24 09:00
수정
2023.01.24 19:1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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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쇠한 일본, 성장이 멈춘 원인 지적
비효율적 관료주의, 지배층 변화 없어
외국인에 적대적

BBC뉴스 일본 계정이 BBC 도쿄특파원인 루퍼트 윙필드-헤이즈 기자가 10년 동안의 일본 생활을 회고하면서 쓴 기사의 일본어 번역본을 트위터에 소개했다. 조회수가 100만을 넘고 1만5,000명 이상이 공감을 표시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BBC뉴스 재팬 트위터 캡처

BBC뉴스 일본 계정이 BBC 도쿄특파원인 루퍼트 윙필드-헤이즈 기자가 10년 동안의 일본 생활을 회고하면서 쓴 기사의 일본어 번역본을 트위터에 소개했다. 조회수가 100만을 넘고 1만5,000명 이상이 공감을 표시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BBC뉴스 재팬 트위터 캡처


“일본은 미래였다. 그러나 과거에 갇혔다(Japan was the future, but it's stuck in the past).”

10년 동안 일본 도쿄특파원으로 일하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영국 BBC 기자가 자신의 경험을 회고하며 쓴 기사의 제목이다. 21일 영어로 첫 게재된 이 기사의 일본어 번역본을 다음날 BBC 일본 트위터 계정이 소개하자, 하루 만에 1만5,000명이 공감 버튼을 누르고 조회수가 200만 건을 넘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트윗에 직접 달린 댓글만 1,000건이 넘고, 이 기사를 인용하며 감상을 적은 트윗은 더 많다. “아시아에 대한 서구인의 우월의식이 드러난다”는 비판과 “국내 미디어와 달리 확실하게 지적한다”며 공감하는 의견까지 반응은 다양하다.

기사의 저자는 BBC의 도쿄특파원인 루퍼트 윙필드-헤이즈 기자다. 그는 10년 전부터 도쿄에 파견돼 특파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일본에 왔던 것은 30년 전인 1993년이며, 이후 일본인 여성과 결혼해 세 자녀를 두었다. 외국인이지만 일본에 대한 경험은 결코 적지 않은 셈이다.


비효율적인 관료주의와 세금 낭비

그는 한때 미국이나 유럽이 지금 중국을 대하듯 일본의 경제 성장을 두려워했지만, 일본은 세계의 기대와 달리 고령화와 인구 감소를 겪으며 성장의 길이 막혔다고 진단했다. 1980년대 일본인은 미국인보다 부유했지만 지금은 영국인보다도 수입이 적어졌다. 일본에서 주택의 가치란 일단 사면 가격이 점점 떨어지는 자동차와 같다고도 했다. 아직도 세계 3위 경제대국이고 기대수명이 가장 길며, 범죄도 적고 정치적 갈등도 거의 없는 나라가 늪에 빠진 이유로 기자는 관료주의의 비효율성과 지배층이 바뀌지 않는 점, 외국인에 대한 편견 등을 들었다.

예를 들어 일본인들은 맨홀 뚜껑을 예쁘게 디자인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전국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면서 불필요한 곳에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운전면허를 갱신하려면 아무도 집중하지 않는 교통 안전에 대한 강의를 2시간 동안 들어야 하는데, 이는 “은퇴한 교통경찰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이라며 비효율과 세금 낭비의 예로 들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패전 후 전범으로 체포됐지만 추후 일본 총리를 지냈다. 일본 총리관저 역대 총리 페이지 캡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패전 후 전범으로 체포됐지만 추후 일본 총리를 지냈다. 일본 총리관저 역대 총리 페이지 캡처


지배 세력 오랫동안 변하지 않아... 지방 노년층이 기반

지배 세력이나 가문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것도 나라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혔다. 일례로 지난해 숨진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전범으로 체포됐으나 교수형을 면했고 나중에 총리가 됐으며, 그가 창당에 기여한 자민당은 지금까지도 일본을 지배해 왔다. 그는 “메이지 유신과 2차대전 패전 후에도 살아남은 이 압도적인 남성 지배층은 민족주의와 ‘일본은 특별하다’는 확신으로 무장했으며, 일본이 전쟁에서 침략자가 아니라 희생자였다고 믿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잃어버린 30년’ 동안 국민 생활을 향상시키지 못했는데도 자민당이 계속 집권하는 것은 ‘콘크리트 지지층’인 지방 거주 노년층의 영향이 크다고 주장했다. 노년층에 권력이 있고 저출생 현상으로 젊은이의 수는 적기 때문에 정치사회적 변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외국인에 대한 편견 강해... 인구 소멸 마을조차 '외국인 유입'엔 거부감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강하고 이민에 극도로 소극적인 것도 일본이 ‘과거에 붙잡힌’ 이유로 지목됐다. 코로나19 확산 때 일본처럼 외국인 입국을 철저하게 막은 국가도 드물다. 기자는 “일본은 강제로 문호를 개방한 지 15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외부 세계를 두려워한다”며 일본 지바현의 한 마을에서 직접 겪은 체험을 소개했다.

겨우 60명이 사는 이 마을은 도쿄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도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한 노인은 “우리가 떠나면 누가 우리의 묘를 돌볼 것이냐”고 한탄했다. 그러나 외국인인 기자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살고 싶다. 내가 가족과 함께 오면 어떻겠느냐”고 말하자 당황하며 “당신이 우리 삶의 방식을 배워야 할 텐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마을이 소멸의 길을 걷고 있는데도 ‘외지인들의 마을 침공’을 더 나쁘게 본 것”이라고 지적했다.


BBC의 도쿄특파원인 루퍼트 윙필드-헤이즈. BBC 홈페이지

BBC의 도쿄특파원인 루퍼트 윙필드-헤이즈. BBC 홈페이지


"답답하지만 일본 특유의 아늑함과 편안함에 익숙해져"

이 기자의 세 자녀들을 포함해 외국인과 일본인이 결혼한 다문화 가정의 자녀는 피가 절반씩 섞였다는 뜻의 ‘하프’로 불린다.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를 포함해 일본에서 이런 표현은 유명인에게도 흔히 쓰이고 종종 “더 아름답고 재능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처럼 묘사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차별적 용어라고 기사는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여러 가지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10년간 일본의 음식과 아늑한 환경, 친절한 사람들에 익숙해지고 편안함을 느끼게 됐다며 떠나면 “일본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회고했다. 또 “이성적으로는 일본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때문에 일본만의 특별한 장점이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한편으론 마음이 아프다”며 일본에 대해 느끼는 양가감정을 표현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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