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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 마구 태워 발전한 한국, '동생 국가'의 피해 책임져라"

입력
2023.01.25 04:30
수정
2023.01.25 18:49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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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소멸국을 가다 ① 키리바시 
펠레니세 알로파 '키리칸' 설립자 인터뷰

지난 11일 오후, 키리바시 타라와 섬 베티오에서 만난 펠레니세 알로파 키리바시기후행동네트워크(KiriCAN) 설립자. 베티오(키리바시)=장수현 기자


편집자주

기후전쟁의 최전선에 태평양 섬나라들이 있습니다. 해발 고도가 1~3m에 불과한 작은 섬나라들은 지구 온난화로 생존을 위협받습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해변 침식과 해수 범람이 삶의 터전을 빼앗은 지 오래입니다.

태평양 섬나라 14개국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배출량의 1%가 안 됩니다. 책임 없는 이들이 가장 먼저,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부정의이자 불공정입니다. 태평양 섬나라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에 당신의 책임은 없을까요? 한국일보는 키리바시와 피지를 찾아 기후재난의 실상을 확인하고 우리의 역할을 고민해 봤습니다.


우리가 선진국의 뒤처리까지 해줘야 하나요? 우리에겐 지구 온난화의 책임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도 선진국의 잘못을 우리가 뒤집어써야 하나요? 10여 년 전에 국제사회에 해답을 내놓으라고 했지만 아직도 묵묵부답이군요. 다들 너무 이기적이에요.


이달 11일(현지시간) 키리바시 타라와 섬 베티오에서 만난 펠레니세 알로파(61)의 말이다. 그는 키리바시 최초 비정부기구(NGO) 연합체인 키리바시기후행동네트워크(KiriCAN·키리칸) 설립자다.

알로파가 말한 '불공정한 기후 피해' 문제가 공론화한 건 오래전이지만, 최근 들어서야 선진국들이 응답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이집트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개발도상국의 기후재난 피해를 배상하는 '손실과 피해' 기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실질적 보상까진 갈 길이 멀다.

기후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건 알로파에게 당연한 일이다. 키리바시에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후변화의 파괴적인 결과가 체감되기 때문이다. "2011년쯤 타라와 섬 북쪽 아바이앙 섬의 테본디비케 커뮤니티(행정구역 '동'에 해당)의 해수 범람이 심각하다고 해서 찾아간 적이 있어요.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겨 있더군요. 그곳에선 농사를 짓는 건 꿈도 못 꾸고, 마실 물도 못 구해요. 키리바시엔 그런 마을이 너무 많아요. 기후재난으로 매일 고통받는 피해자들은 더 많아요. 국제사회가 각성하고 도와줘야만 해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알로파가 2011년 기후변화의 치명적 위험성을 실감한 이후 키리칸을 설립했다. 파푸아뉴기니에서 대학 강사로 일하던 그는 2006년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 "갑자기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어요. 해변은 깎여 나갔고, 밀물 땐 집 안으로 물이 들어왔죠. 언제라도 집을 집어삼킬 것 같은 파도 소리를 밤마다 들으며 결심했어요. 당장 뭐라도 해야겠구나."

키리칸에는 NGO 20여 개가 소속돼 있다. 바닷물을 막는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는 맹그로브 나무를 해변에 심는 일부터 쓰레기 처리,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 교육까지 도맡아서 한다. 혁신이 필요한 키리바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키리칸이 활약한다.

배워야 아는 '기후변화'의 정체

키리바시기후행동네트워크(KiriCAN 키리칸) 단원들의 단체 사진. 키리칸 페이스북 캡처

알로파에게 키리바시의 가장 시급한 과제를 물었다. "물과 쓰레기 문제 해결"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밀물이 점점 깊게 들어와서 지하수 오염이 심각해요. 깨끗한 물을 확보하는 게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계이기도 하고요. 쓰레기는 이미 너무 많이 쌓여서 기후재난으로 죽기 전에 쓰레기에 질식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그보다 급한 게 있다고 알로파는 말을 이었다. '기후변화와 기후재난이 무엇인지'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12년 전 그가 기후 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 키리바시어에는 기후변화를 뜻하는 단어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해수 범람 피해가 커진다고 토로하면서도 그게 기후재난의 결과인지는 몰랐다. 그가 기후 관련 강의를 할 때마다 청중들은 그제서야 눈을 떴다는 듯 큰소리로 외친다고 한다. "나와 내 가족들이 겪는 게 바로 기후재난이구나! 모두 기후변화 때문이구나!"

알로파는 "기후위기를 깨달았다면 당장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해변에 나가 쓰레기 한 개를 줍는 것도 좋다"고 했다. 키리바시를 살리기 위해 무엇이든 해보겠다고 그는 매 순간 다짐한다. 타네티 마마우 키리바시 대통령이 추진하는 대규모 간척 사업을 그가 지지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알로파는 태평양 섬나라 사람들을 '무기력한 피해자'로 묘사하는 걸 거부한다. "우린 그냥 가라앉지 않을 겁니다.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과 맞서서 싸우고 있고, 앞으로도 싸울 거예요."

"키리바시는 총성 없는 전쟁 중"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건 두 가지, 돈과 기술이라고 알로파는 말했다. 문제는 키리바시엔 둘 다 없다는 것이다. 그가 전 세계에서 열리는 기후 관련 국제회의를 다니며 지원을 호소하는 이유다. 지난해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회원국이 소집하는 비공식회담인 아리아 포뮬러 회담에도 참석했다. "저는 안보리에서 말했어요. 유엔은 국제사회의 전쟁을 막을 책임을 지닌 기구이다. 기후변화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키리바시는 전투 중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우리를 도와야 한다고요."

알로파는 한국의 무분별한 온실가스 배출 실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화석연료를 태워서 성취한 경제 성장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도 태평양 섬나라들이 처한 위기에 대한 무거운 책임이 있다"고 했다. 화석연료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고, 온난화는 해수면을 상승시키는 동시에 사이클론 등 자연재해의 파괴력을 끌어올린다. 키리바시처럼 해발고도가 낮고 경제력과 재난 대응력이 부족한 태평양 섬나라들부터 위기에 노출된다.

알로파는 배상과 지원이 중요하지만 돈이 전부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못 박았다. 기후 피해 지원금 몇 푼을 내고 할 일을 다한 것처럼 굴지 말라는 뜻이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와 있어요. '화석연료 쓰지 않기'입니다. 화석연료를 펑펑 써서 '지구촌의 부자 형님'이 된 한국이 '동생 국가'들을 신경 쓸 때가 되지 않았나요?"

베티오(키리바시)=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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