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이란이 각각 상대국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윤석열 대통령 발언이 사상 초유의 사태로 번졌다. 온갖 트집을 잡아 독설을 쏟아내는 이란을 상대로 정부는 적극 반박하며 파장을 주시하고 있다.
이란 외무부는 18일(현지시간) 윤강현 주이란대사를 불렀다. 레자 나자피 법무·국제기구 담당 차관은 "양국관계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압박하는가 하면, 윤 대통령의 핵 관련 발언을 거론하며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핵개발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 제재를 받는 이란이 적반하장으로 쏘아댄 것이다.
주한이란대사 초치해 1시간 면담
이에 외교부는 19일 조현동 1차관이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이란대사를 불러 1시간가량 면담하며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맞받았다. 임수석 대변인은 “UAE에서 임무 수행 중인 우리 장병들에 대한 격려 차원이었다”고 윤 대통령 발언의 배경을 설명했다면서 “이란 정부의 NPT 관련 문제제기는 전혀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앞서 11일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북한의 도발 수위가 높아질 경우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에 대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강화해 나가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란 측은 대이란 제재로 동결된 석유수출대금(70억 달러·8조3,800억 원)도 문제 삼았다. 나자피 차관은 윤 대사에게 “분쟁 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양국 관계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대사 초치는 외교관계의 공식적 항의 창구다. 2021년 1월 한국케미호가 이란혁명수비대에 나포될 당시, 외교부 아프리카중동국장이 주한이란대사를 초치했는데, 이번에는 차관으로 급을 높였다. 당시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동결자금 해결 어렵고 호르무즈 선박 안전 우려
정부는 딱히 묘안이 없어 보인다. 석유대금 70억 달러는 미국이 제재를 풀지 않는 한 이란에 지불할 도리가 없다. 정부는 이란에서 석유를 수입하면서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 중앙은행 명의의 원화 계좌로 대금을 지급해왔다. 미국의 조치로 이란의 달러 계좌가 막힌 탓이다. 그러나 2018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협정(JCPOA)을 탈퇴하면서 ‘우회 결제 통로’로 쓰던 원화 결제계좌마저 쓰지 못하게 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동결자금 문제는 우리 정부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라 국제사회의 대이란 제재와 맞물려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란과 관계가 악화하면서 원유 수입량의 80%가 오가는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우리 선박 안전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이에 외교부는 유관부처와 대책을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격하게 달려드는 이란의 파상 공세가 국내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히잡 시위 강경 대응’으로 궁지에 몰린 이란이 의도적으로 외부 갈등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히잡 미착용 의문사’에 우려를 표명하며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에서 이란을 제명하는 결의안에 찬성했다. 이에 대한 보복조치 성격까지 더해져 한국에 맞서는 이란의 강경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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