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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록 눈의 색깔 변화와 나노 구조물

입력
2023.01.19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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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현
고재현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교수

편집자주

분광학과 광기술 분야를 연구하는 고재현 교수가 일상생활의 다양한 현상과 과학계의 최신 발견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알기 쉽게 조망합니다.

북극권에 서식하는 순록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북극권에 서식하는 순록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북극권에 서식하는 순록은 보통 크리스마스에 산타의 썰매를 끄는 이미지로 기억된다. 하지만 순록에 숨겨져 있는 신비로운 모습을 알게 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달라질지 모른다. 그 신비는 바로 계절에 따라 놀랄 정도로 달라지는 눈의 색깔에 있다. 여름철 탁한 오렌지색을 띠는 순록의 눈은 겨울이 되면 짙은 푸른색으로 바뀐다. 두 달이 넘도록 해가 뜨지 않는 극야(極夜) 현상이 지배하는 동토의 땅을 살아가는 순록의 눈 속에선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극야의 북극권에 태양은 없지만 그렇다고 빛이 전혀 없는 세상은 아니다. 지평선 밑에 숨어 있는 태양이 보내는 빛이 비스듬히 올라와 지구의 대기를 통과하며 산란된 빛이 희미하게 세상을 비춘다. 특히 대기권의 오존층을 통과하는 빛의 경로가 길어지고 오존에 의해 적색과 노란색 빛이 흡수되면서 태양빛은 푸른색으로 바뀐다. 이 빛의 일부가 대지로 내려오기에 극야의 북극은 희미한 푸른색 빛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탈바꿈한다. 밝은 여름과 비교해 순록이 적응해야 하는 빛의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다.

동물의 눈 속을 보면 빛을 감지하는 시각 세포들이 분포하는 망막이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동공을 통해 들어온 빛 중 망막에서 감지되지 못한 빛은 눈을 둘러싼 막에 흡수되곤 한다. 하지만 어두운 환경을 사는 일부 동물들은 망막을 그냥 지나치는 빛조차도 이용하도록 진화해 왔다. 일부 야행성 동물이나 순록은 망막을 그대로 통과한 빛을 반사해 다시 망막에 의해 감지될 기회를 주는 거울과 같은 구조, 즉 '휘판'이 망막 뒤에 버티고 있다. 고양이의 눈이 밤에 빛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https://doi.org/10.1098/rspb.2022.1002

https://doi.org/10.1098/rspb.2022.1002

최근 발표된 연구는 순록 눈의 색깔을 바꾸는 비밀이 휘판 내부의 나노 구조물에 있음을 밝혔다. 휘판에는 물이 주성분인 액체 속에 콜라겐이 미세한 섬유 형태로 길게 정렬해 있다. 빛이 휘판에 들어와 콜라겐 섬유를 만나면 일부가 반사되기 마련이다. 흥미로운 현상은 정렬해 있는 각 콜라겐 섬유에서 반사된 빛들이 만나면서 벌어진다. 빛은 물 위에서 출렁거리는 파도처럼 파동의 성질을 갖는다. 진행하는 두 파도가 만날 때 솟구친 마루와 마루가 겹쳐지면 수면이 더 높아지는 것처럼 휘판 속 섬유들로부터 반사된 빛도 특정 색깔에서 더 강하게 반사한다. 이 반사광의 색깔을 결정하는 것은 콜라겐 섬유와 섬유 사이의 간격이다.

여름에 섬유 가닥 사이의 간격은 노란색 빛을 반사하는 최적의 값을 갖지만 이는 푸른빛이 지배하는 극야의 환경에선 불리하다. 어두운 창고에 들어간 사람이 눈동자를 최대한 확대해 희미한 빛을 감지하는 것처럼 순록도 극야의 시기엔 동공을 최대한 벌린다. 이 확장이 주는 압력으로 휘판 속 액체가 줄어들고 콜라겐 섬유는 다닥다닥 붙어서 정렬한다. 줄어든 간격의 섬유 가닥들은 무지개색 빛 중 파란색을 집중적으로 반사한다. 극야를 지배하는 푸른색을 효과적으로 반사하는 눈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눈의 색이 계절에 따라 바뀌는 건 순록의 생존에 중요하다. 사람과 다르게 순록은 빛보다 에너지가 센 자외선도 지각할 수 있다. 순록의 먹이인 이끼나 천적인 늑대의 털은 자외선을 잘 흡수한다. 따라서 자외선을 반사하는 설국의 환경에서 푸른빛과 자외선을 효율적으로 보는 눈으로 무장한 순록은 이끼나 늑대를 더 잘 식별하며 생존에 유리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 혹독한 북극의 환경에서 눈 속의 나노 구조물을 유연하게 조절하는 능력을 키워 온 순록은 눈의 색이 계절에 따라 바뀌는 유일한 동물이 되었다. 많은 과학자가 자연 속 미세 구조물들이 만드는 신비한 현상에 매료되어 그 원인을 밝히고 응용하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바야흐로 생체모방 공학 분야가 유망한 기술 분야로 떠오르는 중이다.

고재현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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