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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쉼표를 찍을 필요가 있다

입력
2023.01.1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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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6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6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사람을 만나는 게 가끔은 피곤하다. 표정이 눈에 밟힐 때, 말투가 귀에 거슬릴 때 주로 그렇다.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할까? 저 표정 뒤에 숨긴 진심은 뭘까? 생각이 깊어질수록 머리는 복잡해지고, 종국엔 내 마음만 너덜너덜해진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말을 섞기가 난감할 때도 있다. ‘맞는 말을 뼈 때리게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다. 대체로 잘못을 지적한다면서, 고민의 해답을 준다면서, 때론 농담이라면서, 가시가 한가득 담긴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이다. 그와의 평소 관계를 다시 곱씹게 해주는 한편, 새삼 꽃도 흉기가 될 수 있단 사실을 실감하게 해주는 그런 이들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요즘 구설에 자주 오른다. 아침 출근길에, 또는 국회의 대정부질문 같은 공식석상을 통해 주로 야당과 관련해 발언을 하면, 그게 또 다른 말을 낳는 식이 대부분이다.

최근 국회에서 내놓은 말들도 그중 하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수사받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도 계신다”고 언급한 것이나, “국민들이 진짜 궁금해하시는 건 ‘깡패 배후’라고 생각한다”는 등의 발언들이다. 정말 목숨을 잃은 이들에 대한 배려는 없었고, 공당을 깡패 배후 세력으로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분명한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태국에서 체포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을 두고 “해외 도피한 중범죄자들이 언론사를 선택해 일방적 인터뷰를 한다”는 말 역시 굳이 해야 했는지 의문이다.

물론 한 장관은 “잘못된 말은 아니지 않은가”라며 되물을지 모른다. 문구 자체에서 틀린 말은 없으니 적절하게 대꾸할 자신은 없다. 나를 진정 난감하게 하는 누군가에게 하듯 “맞는 말이라도 그렇게 4가지 없게 하면 안 된다”고 맞붙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 구설이 있을 때마다 한 장관을 향한 마음은 꽤나 복잡해진다. 아마 진심으로 그를 응원하던 때가 있어서 그런 듯하다.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잘 알고, 논리와 정리가 살아 있는 말을 하던 검사 한동훈에 대한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검언유착 사건에 휘말려 한직을 떠돌 때도, 압수수색 현장에서 동료 검사와 몸싸움을 벌였을 때도 난 당연히 가해자를 비판하고자 노력했다.

요즘 '한 장관은 과연 정치인인가'라며 자문할 때가 잦다. 검찰의 적법한 소환 통보를 흥정거리로 치부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말과 그의 최근 발언이 뭐가 다른 건지에 대한 의문이다. 전 정부의 집권당을 향한 개인적인 구원(舊怨) 때문인 건 아닌지, 그렇다면 그게 현재 검찰과 국민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 건지, 인지도 상승이라는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위한 발판으로 구설을 이용하려는 건 아닌지, 그런 짐작에 마음은 더욱 찝찔해진다.

최근 검찰을 떠난 한 고위간부의 퇴임사가 떠올랐다. “저의 잘못된 사건 처리로 상처받은 분들의 가슴에도 평생 원한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과거의 검사 한동훈은 혹시 누군가의 피눈물을 흘리게 한 적은 없었을까? 조직 이익을 핑계로 무리하게 칼을 휘두른 적은 없었을까? 현 정권의 실세 장관에게도, 만약 정치인이 되려면, 과거를 한번 돌아보는 쉼표의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닌지, 문득 생각해본다.

남상욱 사회부 차장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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