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 두고 격론 오갔지만 회의록 부실
최임위보다 부실, 방통위는 속기록까지 공개
"투명하게 논의해야 사회적 합의된다" 지적
'생태 전환, 성평등, 자유민주주의 등 표현 관련 논의.' (4차 회의)
'교육과정 내용 중 생태전환 및 양성평등 등에 관하여 위원들 간 다양한 의견이 논의되었음.' (5차 회의)
지난달 6일과 9일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2022개정 교육과정에 대해 '무엇을 논의했는지'를 기록한 회의록 내용이다. 회의의 의제만 간략하게 언급돼 있을 뿐, 20명의 위원이 어떤 논리로 찬성과 반대 주장을 폈는지 전혀 기록돼 있지 않다. 국교위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교육과정을 심의·의결하고, 학제나 대입제도에 관한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세우는 중책을 맡고 있지만, 정작 논의 내용은 알 수 없는 '깜깜이' 위원회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교위는 17일까지 8차례 회의를 진행했고 회의록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는데, 1, 2장 분량의 회의록은 내용이 매우 부실하다. 회의 일시 및 장소, 출석 위원, 차기 회의 일시 등을 제외하면, 회의 내용에 관한 설명은 '한 줄 요약' 수준이다. 이번 교육과정은 지난 정부 때 연구를 시작해 정권이 바뀐 후 교육부의 의견 수렴과 국교의 심의를 거치며 '자유민주주의' 등 용어 사용을 두고 갈등이 컸는데, 국교위 회의록만 봐서는 어떤 논쟁이 오갔는지 알기 어렵다.
특히 국교위가 교육과정 심의본을 수정 의결한 6차 회의는 이런 갈등이 극에 달했는데, 회의록에는 상세한 내용이 없다.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유지하고 '성평등' 용어를 삭제하는 데 반대한 위원 3명이 회의 도중 퇴장했지만, 이유에 대한 설명 없이 "회의 참석인원 19인 중 16인 표결 참여, 찬성 12인·반대 3인·기권 1인으로 가결"이라고만 적었다.
위원들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적은 속기록이 있지만, 국교위는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일보가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국교위에 자료 공개를 요구했지만, 홈페이지에 올라온 것과 동일한 회의록만 공개했다. 게다가 국교위는 교육과정 심의를 대부분 비공개 안건으로 정했다. 이견을 좁히기 위해 일부 위원이 모여 논의한 소위원회 회의는 공식적 회의가 아니라는 이유로 회의록을 작성하지도 않았다.
논의 과정이 지나치게 불투명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지적이 국교위 내부에서도 나온다. 한 국교위 위원은 "국가안보에 관한 내용도 아니고, 국가인권위처럼 성폭력 등 민감한 인권 관련 사안을 논의하는 것도 아닌데, 교육에 대한 논의를 왜 비공개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국교위는 방송통신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의 사례에 따라 회의록 작성·공개에 관한 방침을 세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교위는 다른 위원회와 비슷한 수준의 회의록 공개조차 하지 않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경우, 국교위와 유사하게 '회의록을 작성·보존해야 한다'는 조항이 법에 규정돼 있는데 회의록은 물론 속기록까지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최저임금위원회 등은 관련 법에 회의록 작성·보존에 관한 조항이 없지만, 참여자의 주장 내용을 국교위보다 상세하게 회의록에 남겨 공개하고 있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위원회가 내부 논의만 하고 그칠 게 아니라, 각 위원이 한 발언이 모두 공개돼 시민들이 볼 때만이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며 "투명한 논의를 위해 속기록을 공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해 개최된 7번의 국교위 회의에서 위원이 모두 참여한 건 5차 회의뿐이었다. 홍원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이 5회, 남성희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이 3회, 조희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강은희 대구시교육감·천세영 충남대 교육학과 명예교수·이영달 시도지사협의회 사무총장·이승재 국회 교육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각각 2회 불참했다.
국교위는 이날 8차 회의를 열고 국가교육발전교육 수립을 자문할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특별위원회는 대입제도 개편, 지방대 활성화 등 5개 분야에 꾸려진다. 교육 의제에 대해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국민참여위원회는 500명 규모로 구성하고, 만 16세부터 참여를 허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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