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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군이 한국대사관에 테러? 유튜버 '국뽕 장사'의 해악

입력
2023.01.19 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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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한국-베트남 관계 최대의 적, '가짜뉴스'
'국뽕 유튜버 영상' 4건 팩트체크해 보니
날조 사건 거짓 인용에 허위 번역도 난무

편집자주

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한국의 유튜버 '월드 댓글'이 지난해 7월 제작해 유포한 '[속보] 베트남, 결국 한국대사관 공격 시작,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에 연막탄까지 뿌리며 결국 선 넘은 베트남'이라는 제목의 영상. 유튜브 캡처

한국의 유튜버 '월드 댓글'이 지난해 7월 제작해 유포한 '[속보] 베트남, 결국 한국대사관 공격 시작,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에 연막탄까지 뿌리며 결국 선 넘은 베트남'이라는 제목의 영상. 유튜브 캡처

'[속보] 베트남군, 결국 한국대사관 공격 시작,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에 연막탄까지 뿌리며 결국 선 넘었다!'

지난해 7월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과 기업인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같은 동영상이 순식간에 퍼졌다. 물론 근거 없는 허위 내용이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영상을 만들죠?" 교민들은 분노했다.

베트남에서 생산라인을 운영하는 한국 기업 주재원들은 당시 상황 파악을 하느라 하루를 몽땅 날렸다. 명백한 가짜뉴스였지만, 한국 본사에 동영상이 전파돼 상황 보고를 해야 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한국과 베트남 관계에 재를 뿌리는 가짜뉴스 동영상이 2020년부터 기승을 부리고 있다. 베트남에 진출한 일부 기업들은 온라인 가짜뉴스를 접할 때마다 "철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매번 소모적 팩트체크를 해야 하는 현지 주재원들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난해 7월 한국의 유튜버 '월드 댓글'이 "베트남군이 미국과 한국대사관을 상대로 공격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며 제시한 현장 사진. 유튜브 캡처

지난해 7월 한국의 유튜버 '월드 댓글'이 "베트남군이 미국과 한국대사관을 상대로 공격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며 제시한 현장 사진. 유튜브 캡처

가짜 동영상을 제작하고 유포하는 한국 유튜버들은 무슨 근거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한국일보는 조회수가 높은 베트남 관련 영상 4건의 사실 관계를 따져 봤다.

우선 유튜버 '월드 댓글'이 제작한 '베트남군의 한국대사관 공격' 관련 영상(조회수 19만 회). "베트남 군인 500명이 최근 베트남 주재 한국 및 미국대사관에 연막탄을 뿌리는 등 공격 작전을 감행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베트남의 최우방국인 한국의 대사관을 베트남군이 유린했다는 취지다.

영상 내용이 사실이었다면, 한국·미국과 베트남 사이엔 전쟁에 준하는 극한 대치가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대사관은 치외법권이자 본국의 영토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트남은 평온하다. 날조된 가짜 동영상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유튜버 '월드 댓글'이 올린 가짜뉴스에 등장한 베트남 군인의 모습. 유튜브 캡처

지난해 7월 유튜버 '월드 댓글'이 올린 가짜뉴스에 등장한 베트남 군인의 모습. 유튜브 캡처

'월드 댓글'은 베트남 방송국이 관련 뉴스를 보도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베트남 국영방송(VTV)을 포함, 63개 성의 지방 방송국 보도 목록 어디에도 관련 뉴스는 없다.

영상에 사용된 사진들도 주장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대사관 공격을 주장할 때 쓴 사진은 '2030년 정예현대군 건설을 위한 노력'이라는 베트남군 홍보기사에 나온 열병식 사진이다. "베트남의 사회 불안이 극도에 달했다"고 주장할 때 사용한 사진은 2021년 코로나19 확산 당시 호찌민에서 서민들에게 쌀을 무료로 배급하는 베트남 군인의 모습이었다.

지난해 7월 유튜버 '월드 댓글'이 만든 가짜뉴스에 등장한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인근 주민의 인터뷰 영상. 유튜브 캡처

지난해 7월 유튜버 '월드 댓글'이 만든 가짜뉴스에 등장한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인근 주민의 인터뷰 영상. 유튜브 캡처

'월드 댓글'은 "베트남 한국대사관 인근 주민들이 군인들에게 약탈당했다"는 주장까지 덧붙인다. 영상에서 허위 증언을 하는 주민의 뒤쪽으로 높은 산과 맹지가 보인다. 하지만 하노이 신정부청사 예정 부지에 들어선 한국대사관 주변엔 산이 없다. 고층 빌딩만 빽빽하다.

"베트남 말 모르니까…" 노골적 가짜뉴스

지난해 9월 유튜버 '월드 인 코리아'가 만든 가짜뉴스에 영상 내용과 아무 관련 없는 베트남 국영방송(VTV) 화면이 도용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지난해 9월 유튜버 '월드 인 코리아'가 만든 가짜뉴스에 영상 내용과 아무 관련 없는 베트남 국영방송(VTV) 화면이 도용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이른바 '국뽕' 장사를 하는 베트남 관련 유튜브 영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 세상을 떠돌고 있다. 다루는 분야는 조금씩 다르지만, 여론을 호도하는 방식은 비슷하다. 베트남어를 모르는 한국인을 속이는 '거짓 인용'과 '허위 번역'을 앞세운다.

'베트남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순간, 한국 베트남 협상 내용 공개, 말도 안 된다는 베트남 국민들'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보자. 유튜버 '월드 인 코리아'가 지난해 9월 올린 영상은 18일 현재 39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영상엔 "베트남 정부가 현지에서 철수하는 한국 기업들에 최저임금 10년 동결, 토지 부지 영구 제공 등의 굴욕적인 대응책을 발표해 베트남인들을 분노하게 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인민의 평등과 복지'를 중시하는 베트남 정부는 매년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있으며, 관련 특혜를 받은 한국 기업은 한 곳도 없다. 외국인과 외국법인의 토지 영구 제공도 불가능하다. 베트남 법은 모든 외국인과 법인을 대상으로 50년 토지 임대만 허용할 뿐, 소유와 매입은 시도조차 못 하게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유튜버 '월드 인 코리아'가 만든 영상에 등장한 베트남어로 된 현지 반응. 유튜브 캡처

지난해 9월 유튜버 '월드 인 코리아'가 만든 영상에 등장한 베트남어로 된 현지 반응. 유튜브 캡처

영상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게 하기 위한 장치도 엉성하다. '월드 인 코리아'는 VTV 뉴스에 관련 보도가 나왔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그러나 영상에 제시된 화면은 VTV가 아닌 유선방송국 VTC의 영상이며, 보도 내용도 단순 현지 사건사고 뉴스였다.

허위 번역 시도도 무수하다. 영상 중간에 "모든 잘못은 한국이 먼저 시작했는데"라고 소개된 베트남어 댓글의 실제 내용은 "젊은이들이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아무 관련 없는 문장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8월 유튜버 '생생튜브'가 베트남 군사전문가의 강연 현장이라고 제시한 사진. 유튜브 캡처

지난해 8월 유튜버 '생생튜브'가 베트남 군사전문가의 강연 현장이라고 제시한 사진. 유튜브 캡처

지난해 8월 유튜버 '생생튜브'가 올린 '하루 만에 전멸이라고!? 이젠 한국과 전쟁해도 해볼 만하지 않겠냐던 베트남인들을 충격에 빠뜨린 군 전문가 강연'이라는 영상의 수법도 다르지 않다. 영상엔 "베트남 군사 전문가가 최근 자만에 빠진 베트남인에게 '한국군이 전력을 다하면 하루 만에 베트남군을 전멸시킬 수 있다'고 말해 비난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그러나 영상에 등장하는 사진은 2017년 열린 '베트남 군대 교육·규율 관리 회의' 현장 사진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다. 군사 전문가 발언도 베트남 매체, 학술논문 등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지난해 4월 유튜버 '국토전략TV'가 제작해 유포한 '[속보]베트남, 급속히 붕괴 중, 돌이키기 어려운 강 건넜다' 영상 내 한국 기업 관련 주장. 유튜브 캡처

지난해 4월 유튜버 '국토전략TV'가 제작해 유포한 '[속보]베트남, 급속히 붕괴 중, 돌이키기 어려운 강 건넜다' 영상 내 한국 기업 관련 주장. 유튜브 캡처

지난해 4월 공개 이후 103만 조회수를 찍은 '[속보]베트남, 급속히 붕괴 중, 돌이키기 어려운 강 건넜다' 영상 또한 마찬가지다. 영상을 만든 유튜버 '국토전략TV'는 "친러시아 외교 정책을 펼치는 베트남이 강대국들의 제재로 후진국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베트남 진출 한국 대기업이 베트남을 손절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역시 사실 관계가 틀렸다. 베트남의 친러시아 정책은 군사 교류를 강화하는 단발 행사에 불과했다. 강대국들은 베트남을 제재하긴커녕 현지 진출에 몰두하고 있으며, 지난 3년 동안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도 9,000곳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돈벌이 때문… "'공익적 유튜브 플랫폼' 만들어야"

세계 최대 동영상 공유 플랫폼인 유튜브 앱 화면. AP 연합뉴스

세계 최대 동영상 공유 플랫폼인 유튜브 앱 화면. AP 연합뉴스

한국발 베트남 관련 유튜브 가짜뉴스는 매달 20개 안팎으로 생산·유포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짜뉴스를 제작한 유튜버들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영상을 올린 뒤 제목만 조금씩 바꿔 다시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상당한 수입을 거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 조회수가 10만을 넘고 최대 100만 이상이 찍히기도 하는 만큼, 포기하기 힘든 돈벌이다.

이에 한국과 베트남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유튜버를 고소하면 한국 법원에서 처벌이 가능하지만, 피해자인 베트남 정부가 일일이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먼저 나서기도 부담이다. 한국은 헌법에 기반한 표현의 자유가 상당 수준으로 보장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남은 건 베트남 정부가 문제의 한국 유튜버를 베트남법으로 처벌하는 방법뿐이다. 그러나 이 역시 의도치 않게 양국 갈등으로 커질 수 있다는 맹점이 있다. 베트남 정부 관계자는 "강화된 베트남의 사이버보안법을 확대 적용하면 우리를 모욕하는 한국 유튜버들을 자체적으로 처벌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양국 우호 관계를 깨지 않기 위해 일단 상황을 더 지켜볼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국 교민사회는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양국이 힘을 합칠 것을 주문했다.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가짜를 덮는 진짜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며 "양국 대표 언론과 정부 기관이 함께 '공익적 유튜브 영상 플랫폼'을 만들어 '국뽕 유튜버'들이 설 자리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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