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공간은 교육이다' 출간한 김경인 브이아이랜드 대표
집 좁아도 자투리 공간에 꾸밀 수 있는 '1평 공부방' 제안
"엄마, 학교는 왜 이렇게 다 교도소 같죠?"
중학교 2학년 아들이 무심코 내뱉은 말에서 '교도소'라는 단어가 마음에 콕 박혔다. 학부모로 참관 수업을 갔다가 본 교실 풍경은, 수십 년 전 자신이 학교를 다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말 그렇네!' 대학에서 조경을 전공하고, 일본에서 경관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엄마는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았다.
"일(一)자 복도 끝에 선생님이 서서 수많은 학생을 한눈에 관리하기 위한 구조죠. 학생을 '감시'하고 '통제'할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네모반듯하고 천편일률적인 공간에서 어떻게 아이들의 상상력이 자라겠어요."
그 길로 엄마는 삭막한 학교 공간을 바꾸는 공간 디자이너로 분해, 이 분야 국내 권위자로 거듭났다. 2008년 사단법인 '문화로 행복한 학교 만들기' 이사장을 지낸 이래로 학교 공간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프로젝트에 다수 몸담은 김경인(57) 브이아이랜드 대표 이야기다. 최근 '공간은 교육이다'라는 책을 낸 그를 16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화장실에서 학교폭력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가 뭘까요. 어둡고 지저분해서 아이들이 잘 드나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명을 밝게 해 그에 걸맞은 공간 디자인을 다시 하는 것만으로도 학교폭력이 획기적으로 줄어요."
김 대표는 '좋은 공간은 그 자체가 교과서이자 교육'이라 믿는다. 그는 2014년 서울시 '꾸미고 꿈꾸는 학교 화장실' 사업과 2019~2020년 서울 강동구 '우리가 꿈꾸고 만드는 행복학교'의 총괄 디렉터를 맡는 등 주로 학교 환경을 바꾸는 데 주력해 왔다. 그가 마련한 매뉴얼로 서울 시내 1,300여 개 학교 화장실 환경이 달라졌다.
책은 한 아이를 둘러싼 공간을 4가지로 구분해, 디자인과 기능 개선을 구체적으로 살핀다. △주거공간(집) △교육공간(학교) △문화공간(박물관, 미술관 등) △도시공간(지속가능한 도시 환경)이 바로 그것이다.
사소한 소품이 색다른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흔히 학교 도서관이라 하면 빼곡한 책꽂이와 딱딱한 열람실 구조를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김 대표는 도서관 곳곳에 '빈백(형체가 고정적이지 않은 푹신한 의자)'을 여러 개 뒀다. 내 집처럼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에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도서관, 문화 쉼터 등 청소년들이 돈을 내지 않고도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져야, 이곳저곳 배회하는 청소년들이 줄죠."
뭐니 뭐니 해도 아이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곳은 바로 집이다. 김 대표는 오늘날 집은 단순히 쉬거나 자는 곳이 아니라 공부, 휴식, 놀이, 식사가 가능한 멀티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주 부유한 가정이 아니고서야 집의 공간과 방의 개수는 유한한데, 이 모든 공간을 아이에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김 대표는 '거실 공부'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네 아이를 모두 도쿄대에 보낸 일본의 사토 료코씨가 주창한 개념인데, 최근 SBS 다큐멘터리에도 소개되며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TV를 등지고 거실 벽을 바라보게 책상을 배치한다. 침실과 공부 공간이 분리돼 온전히 쉴 수 있고, 부모도 주방에서 집안일을 하거나 거실에서 함께 공부하며 수시로 자녀와 소통할 수 있다.
집이 좁거나 가족이 많아 아이에게 공부방을 마련해 주기 어려운 부모를 위한 따뜻한 조언도 건넨다. 그는 별도의 공간 없이 만들 수 있는 '1평(3.3㎡) 공부방'을 제안한다. 침실, 거실, 부엌의 코너, 베란다 등 안 쓰는 자투리 공간을 이동식 파티션으로 막고 책상과 책장 하나를 두자. 그것조차 쉽지 않으면 식사나 가족 모임 이외에는 쓰임이 없는 식탁의 짐을 치우고 아이의 책상을 겸해 사용해도 괜찮다.
"집의 크기 같은 경제적 조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가 꿈꿀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을 마련해 주려는 부모의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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