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에서 시한부 연기
매 작품마다 단·짠물 뽑으며 연기해
한석규와 '케미' 위해 많은 대화 나누기도
대장암 말기의 아내 다정(김서형)이 이혼까지 생각했던 남편 창욱(한석규)에게 자신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한다. 남편은 서툰 솜씨로 언제까지 음식을 삼킬 수 있을지 모르는 아내를 위해 소중한 한 끼, 한 끼를 차린다. “(다정이) 음식에 애착을 보이는 건 기억 때문일 것”이라는 의사의 말처럼, 매 끼니는 시간이 별로 없는 가족에겐 삶을 돌아보며 등졌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자리다. 예컨대, 아들과 함께 간 바다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하던 다정은 남편의 돔베국수를 먹자 식탁을 탁 치며 말한다. “곽지 해수욕장! 이걸 먹으니까 딱 생각이 나냐.”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에서 다정 역을 맡은 배우 김서형은 16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 장면을 이렇게 회상했다. “다정이가 먼저 창욱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돔베국수 먹기 전까지 좀 냉랭했을 거예요. (따로 지내왔으니) 어색한 거죠. 그 장면은 남편에 대한 마음이 기승전결로 치자면 ‘승’이 막 시작된 때였어요.”
김서형은 드라마에서 시한부 역을 맡았지만 좀처럼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다. "일부러 자제한 건 아니지만 다정이가 남편을 집으로 들였을 때부터 마음의 출발점은 담백했던 것 같아요. 다정이도, 창욱이도, 아들도 결국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요." 그런 그는 수목장 장지를 방문해서야 비로소 눈물을 쏟아낸다. "슬프지만, 오히려 행복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해요. 가는 사람의 시간이 얼마 없는데 그 시간조차 감사했어요. 주변을 정리한다기보다는 나를 정리하는 시간 같아요."
다정은 김서형에게 아버지를 떠오르게 했다. 십여 년 전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도 정리할 3, 4개월여의 시간이 있었다. "'아빠는 어떤 이름으로, 어떤 인생을 산 것 같아?' 하고 묻고 싶었는데 결국 못 했네요." 이 드라마의 의미도 또렷하게 다가왔다. "남은 사람들이 시한부를 위해 우는 드라마가 아니라 곁에서 본 사람들도 '나도 저 길(죽음)을 가겠구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는 다정을 연기하는 김서형을 보며 '스카이캐슬'이나 '아내의 유혹' 속 역할과는 다른 '순한 맛'에 놀랄지 모른다. 너무 악역만 부각돼 '순한 맛도 할 수 있는 배우'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는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이 작품을 선택하진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제가 한 악역도 늘 순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겉모습이 악하게 보여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삶이었으니까요."
시한부 삶 속에서도 심지가 굳은 모습을 보이는 다정은 "매 작품 몸에 단물, 짠물까지 뽑아버리고 작품을 마치곤 결국 몸져누워 버리는 편"이라는 김서형과 닮아 보였다. 자신의 연기 인생을 초에 빗댈 때는 살짝 눈물까지 내비쳤다. "매번 작품을 할 때마다 초를 켜서 끝까지 다 태우는 모습을 봐야 하는지라 힘들 때가 있어요. 유독 일하는 순간에는 자존감이든, 자존심이든 다 한꺼번에 올렸다가 (작품이 끝나면) 다 끝까지 태워버리는 것 외엔 전 특별한 게 없어요."
"한석규와의 '케미'가 절실해야 했다"는 그는 현장에서 극중 다정과 창욱의 이야기 대신 '인간 한석규'와 '인간 김서형'으로서 대화를 더 많이 나눴다고 했다. 한석규는 김서형에게 "나처럼 늦게 시작해 늦게 꽃을 피워내고 있는 만큼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어야 한다"는 조언을 건넸다고 한다. "선배님과도 '건강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이 작품을 하면서 문득 '아빠를 보낼 때 생각한 걸 잊고 살았구나' 싶었어요. 하루하루 배우로서 죽을 듯이 책임감으로 사는데, 그다음 날 연기할 때 또 설레요. 그런 삶을 살면 결국 다정이처럼 잘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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