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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와 훈장 사이

입력
2023.01.16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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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비리 연루 사실을 털어놓은 프로배구 OK금융그룹의 조재성. 한국배구연맹 제공


사회부 기자도 아닌데 경찰청으로 출근하던 시절이 있었다. 2004년 9월의 일이다. 프로야구판을 뒤흔든 병역 비리 게이트에 연루된 선수 명단이 매일 업데이트됐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출두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실형을 살았다.

어제까지 경기장에서 만나 친분을 나눴던 선수들의 낯선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중 한 명을 만나기 위해 구치소로 면회를 갔다. 오랜 2군 생활 끝에 주전으로 막 자리 잡았던 이 투수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다. 야구인생 처음으로 찾아온 기회를 놓치기 싫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고.

최악의 병역 스캔들이 스포츠계에 또 고개를 내밀었다. 수면 위로 끌어낸 장본인 프로배구의 조재성(OK금융그룹)도 그때 그 선수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며 어디선가 가슴 졸이고 있을 누군가도 그럴 것이다. 그들의 절박함까지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20대에 전성기를 맞고 30대에 은퇴하는 운동 선수들에게 군 복무는 치명적인 공백이다. 과연 기량을 유지할 수 있을지, 2년 후에도 내 자리는 있을지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불투명한 미래를 고뇌할 때 ‘검은 유혹’은 다가온다.

병역법이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 음주운전, 폭력, 성범죄는 시간이 지나면 잊힐지 모르지만 병역 비리는 예외다. 평등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도무지 용서가 안 된다.

입대를 피해 해외를 전전했던 축구선수 석현준은 지금까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지만 불구속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석연치 않은 아시안게임 승선으로 병역 혜택을 받은 야구선수 오지환(LG)은 이후 훌륭한 성적으로 자신을 향한 시선을 바꿔 놓았지만 주홍글씨를 완전히 벗겨냈다고 보기 어렵다.

3월이면 야구월드컵이라 불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린다. 2006년 초대 대회에서 4강에 오른 한국은 여론의 힘을 얻어 한시적으로 병역특례 혜택을 줬다. 얼마 안 가 타 종목과의 형평성이 도마 위에 올라 폐지됐다. 운동 선수들이 합법적으로 군 복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길은 올림픽 동메달 이상과 아시안게임 금메달뿐이다.

야구는 올림픽에서마저 퇴출됐다. 설상가상 아시안게임도 올해 항저우 대회부턴 그 방향성을 새로 설정해 금메달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대체 복무가 현실적인 방안인데 경찰 야구단의 해체로 국군체육부대 경쟁률이 크게 올라가 그 길도 좁아졌다.

KT 투수 박시영은 최전방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근무한 이력의 소유자다. KIA의 주전 내야수 박찬호는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 출신으로 청와대 외곽 경비를 섰고, 롯데 정훈은 육군 9사단에서 81mm 박격포병으로 복무했다.

2년 동안 야구공을 완전히 내려놓고도 돌아와 성공한 선수들이다. 현역 입대가 곧 경력 단절은 옛날 말이다. 예비역 병장 선수들은 현역 군 생활이 오히려 정신적, 육체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병역을 둘러싼 논란은 그 짐을 누구나 공평하게 짊어져야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스티브 유가 영원히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론조사까지 거쳤지만 BTS도 군대에 보내고야 마는 게 우리네 정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지는 못해도 긍정의 사고로 맞서는 게 이 땅의 '남자 선수'로 살아가는 단순하고도 현명한 길이다.

성환희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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