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브랜드, 한국시장 단독 '설 패션' 출시 눈길
브랜드 가치·이미지 확장하는 현지화 전략 일종
전통과 브랜드 해석 접목해 명절 소비심리 어필
누가 '설빔'을 한물간 패션 유물이라고 했나. 잊혔던 설빔이 개성을 입고 유행의 중심에 섰다. 유서 깊은 명품 브랜드가 한국의 최대 명절 설날을 기념하는 제품으로 한글 로고를 선명하게 새긴 티셔츠를 선보이는가 하면 한국문화와 무관한 유럽 패션 브랜드가 설빔을 겨냥한 생활 한복까지 선보인다. 반응은 뜨겁다. 글로벌 브랜드가 만들지만 다른 나라에선 살 수 없는, 오직 한국에서만 판매하는 '한정판 설빔'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GUCCI) 공식 홈페이지에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로고를 한글로 표현한 옷이 등장했다. 티셔츠, 스웨트 셔츠, 외투 등 다양한 의류의 공통점은 모두 '구찌'라고 적은 한글 로고를 중앙에 넣었다는 점이다. 티셔츠 가격은 89만 원, 스웨트 셔츠의 가격은 169만~320만 원 선이다. 320만 원짜리 셔츠는 구찌의 상징인 'GG' 모노그램 위에 'GOOD LUCK(행운을 빈다)'이라는 주황색 영어 문구와 '구찌'라는 녹색 한글 문구를 함께 새겼다. 구찌는 이 제품들을 '코리안 익스클루시브(Korean exclusive·한국 독점)' 품목으로 분류했다.
구찌가 명절을 기점으로 독점 컬렉션을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승마 헤리티지에서 영감을 얻은 핸드백과 한국 전통 문양인 '색동'에서 영감받은 티셔츠를 판매해 인기를 끌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카테고리를 더욱 확장했다. 눈에 띄는 한글 로고 제품 외에도 푸른색을 활용한 모노그램을 더한 핸드백 등 다양한 액세서리를 포함시켰다.
스페인 패션 브랜드인 자라(ZARA)는 단독으로 어린이를 위한 설빔을 판매한다. 생후 6개월부터 만 5세를 겨냥한 '한복 컬렉션'은 전통 한복과 결을 달리한 모던한 실루엣이 특징이다. 마고자를 재해석한 셔츠, 플라워 프린트와 레이스의 한복 치마, 조거 핏의 누빔 바지를 만들었다. 외투와 가디건에선 두루마기가 연상되고 목도리에선 한국의 전통 방한모인 조바위의 모습이 비친다. 뜨개와 누빔 소재 등을 활용해 보온성과 실용성도 높였다. 활동량이 많은 아이들이 명절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일부 품목은 일찌감치 품절됐다.
자라 관계자는 "전통 의상인 한복을 브랜드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컬렉션"이라며 "지난해 첫 출시에 대한 호응이 워낙 좋아서 올해 확장된 제품군을 선보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해외 브랜드 설빔 바람, 왜
한국적 감성을 담은 설 컬렉션은 비정규 시즌에 소규모로 제품을 출시하는 '캡슐 컬렉션'의 일종이다. 음력설은 서양에서 챙기지 않기 때문에 글로벌 브랜드의 경우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 동양 문화권을 통합해 캡슐 컬렉션을 선보이는 게 보통이다. 최근 몇년 사이 구찌나 자라처럼 한국만을 겨냥해 보다 적극적인 명절 컬렉션 출시에 나서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102년 구찌 역사에서 한글이 로고로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콧대 높은 해외 브랜드가 한국 고유의 설 명절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 세계에서 패션 시장이 가장 빠르게 커지고 있는 한국에서 설은 브랜드 현지화 작업을 하기에 상징적인 시점이기 때문이다. 특히 설 시즌은 졸업, 입학 등과 겹치며 한국에서 중요한 쇼핑 대목으로 통한다. 설과 맞닿는 친근한 디자인으로 파격과 흥미를 끌어 판매 특수를 누리는 동시에 브랜드의 가치와 이미지를 확장시키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소현 경희대 의류디자인학과 겸임교수는 "명품 브랜드가 가진 기존 관념을 깨고 새로움을 보여주면서 지역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시도"라며 "한글 로고 옷처럼 소비자들과 친근해지기 위한 해외 브랜드 로컬화 전략이 활발하게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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