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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연속 당선' 40년 조합장까지… 이번에도 '깜깜이' 선거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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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연속 당선' 40년 조합장까지… 이번에도 '깜깜이' 선거 예고

입력
2023.01.16 15:00
수정
2023.01.16 23:2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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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D-50]
1300명 이상 농·축·수협, 산림조합장 선출
선거운동 제한 엄격… 현역에 압도적 유리
선거기간 13일 불과… 토론회·SNS도 불허
재선 이상 절반 넘어 "종신 조합장도 가능"
법 개정 공감하나 "총선 의식하나" 계류 중

지난해 11월 28일 대전선거관리위원회에서 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출마자들이 금품 근절과 불법 아웃 등의 구호를 외치며 깨끗한 선거를 다짐하고 있다. 대전=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28일 대전선거관리위원회에서 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출마자들이 금품 근절과 불법 아웃 등의 구호를 외치며 깨끗한 선거를 다짐하고 있다. 대전= 연합뉴스

서울의 한 지역 농협에는 ‘10선’ 조합장이 있다. 1982년부터 임기 4년 조합장 자리를 40년째 맡아오고 있다. 올해 83세로 전국 최고령 조합장인 그는 수년 전 아들과 친인척을 농협과 계열사 요직에 앉힌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그럼에도 3월 8일 예정된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11선’ 도전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2015년 제1회 조합장선거에서도 충남 태안의 한 농협에서 11선 당선자가 나와 화제가 됐다. 조합장선거는 2015년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관위)가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선거 관리를 위탁받아 전국동시선거로 치러지고 있다.

전국의 농협과 축협, 수협, 산림조합 수장을 뽑는 조합장선거가 50일 남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깜깜이 선거’ 오명 속에, 현역 조합장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선거운동 방식과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한 선거법 탓에 새 얼굴이 당선되기는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현직이 낙선하는 게 이상한 선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지만,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이번 선거도 법 개정 없이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현직에게 유리한 위탁선거법… ‘물갈이’ 막는다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하루 앞둔 2019년 3월 12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개표소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하루 앞둔 2019년 3월 12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개표소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16일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조합장선거에서는 농ㆍ축협(1,105명), 수협(90명), 산림조합(142명) 등 1,353개 지역 조합에서 조합장 1,337명을 선출한다. 선거인 수는 2019년 치러진 제2회 선거 기준으로 농협 180만 명, 수협 12만 명, 산림조합 29만 명 등 221만 명에 달한다.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 이어 ‘제4의 선거’라고 불리는 이유다.

조합장선거를 중앙선관위에 위탁해 치르는 이유는 때마다 되풀이됐던 ‘금품 선거’ 근절을 위해서다. 조합장선거에 대한 부정적 인식 탓에 공직선거보다 더 엄격한 선거법이 적용된다. 선거운동원이나 선거사무소 없이 후보자 혼자 선거운동을 해야 하지만, 공식선거운동 기간은 13일로 매우 짧다. 선거운동 방식도 △벽보 및 공보 △어깨띠ㆍ윗옷ㆍ소품 이용 △전화ㆍ문자메시지 △공공장소에서 명함 배부 등으로 제한돼 있다. 토론회도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선거운동도 불가능하다. 선거운동의 자유와 유권자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투표결과. 그래픽=김문중 기자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투표결과. 그래픽=김문중 기자

이처럼 후보자가 자신을 알릴 기회가 극히 제한되다 보니, 현직 조합장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인지도가 높은 데다 여러 행사를 통해 조합원을 만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업무상 취득한 조합원 연락처를 선거운동에 활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조합장 재선율은 절반이 넘는다. 제2회 선거 당시 농협 조합장에 당선된 1,105명 중 643명(58.2%)이 재선이었고, 3선 이상도 271명에 달했다. 수협에선 당선자 91명 중 47명(51.6%)이, 산립조합에선 142명 중 80명(56.3%)이 현직이었다.

중임 관련 규정도 신인들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 현행 농협법과 산림조합법 등에 따르면 자산 규모 2,500억 원 이상인 지역 조합은 전문경영인을 상임이사로 두고 조합장은 비상임으로 전환해 권한을 분산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상임 조합장의 경우 3선 이상 연임 제한 규정을 뒀으나 중임은 무제한 허용한다. 심지어 비상임 조합장은 수협(1회 연임) 외에는 연임 제한조차 없다. ‘10선’을 넘어 ‘종신’도 가능한 구조다. 충남 지역의 한 농협 조합원은 “평생 조합장 하다가 죽는 게 소원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 말하는 사람도 많다”고 귀띔했다.

법개정 요구 빗발치지만 국회서 표류하는 법안

2019년 3월 11일 경기 화성시 남양시장에서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와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 직원들이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투표 참여 캠페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9년 3월 11일 경기 화성시 남양시장에서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와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 직원들이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투표 참여 캠페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문가들은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중앙선관위도 2019년 4월 위탁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21대 국회에도 선거운동 확대 방안을 담은 개정안이 여러 개 올라와 있다.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임호선 이원택 김승남 의원과 국민의힘 류성걸 의원 등은 △후보자 외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 선거운동 참여 △모든 인터넷 홈페이지 및 SNS 활용 △조합원의 휴대폰 가상번호 제공 △후보자 초청 대담ㆍ토론회 개최 △장애인 후보자를 위한 활동보조인 동반 허용 등이 담긴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일부 법안에는 공직선거처럼 예비후보자제도를 도입해 예비후보자가 공개행사에서 정견 발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예비후보자제도는 현역과 신인 간 공정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예비후보로 등록하면 선거운동 기간 전이라도 제한적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제도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신문근 전문위원은 법안 검토보고서에서 “현직 조합장과 비조합장 사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선거운동의 자유를 증진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법안들은 아직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위성곤 의원안은 행안위에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로 넘어갔다가 다시 행안위로 돌아오는 등 1년간 표류하다 지난해 11월 법안소위에 상정됐으나 아직 논의조차 안 됐다. 위 의원실 관계자는 “조합장선거는 국민적 관심이 크지 않고 조합원만의 선거라서 매우 혼탁하다”며 “3월 8일 선거일 전까지 법안이 개정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용희 전국농민회총연맹 협동조합개혁위원장은 “매번 조합장선거 다음해에 총선이 치러진다”며 “국회의원들이 현직에게 유리한 선거법을 고쳤다가 ‘긁어 부스럼’이 될까 봐 주저하면서 지역 유지인 조합장 눈치만 보고 있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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