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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길'을 열며

입력
2023.01.14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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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사람이 사는 곳에는 길이 있다. 길은 '땅 위에 확보된 일정한 너비의 공간'이라고 정의되지만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 위나 하늘에도 사람이 일정하게 다니는 곳에는 '물길', '하늘길'이 열린다. 길 따라 걷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전에 없던 새 길도 생겼다. 계곡의 냇물 소리를 따라 '소릿길'이 있고, 전국의 사람들을 제주로 불러들인 '올레길'도 있다.

가만히 보면 길의 이름을 정하는 것은 길의 주변, 곧 '길녘'이다. 누구나 한 번쯤 따라 부른 동요 속 '동구 밖 과수원길', '꼬부랑 할머니의 꼬부랑 고갯길'은 그런 배경을 밑그림처럼 깔고 있는 이름이다. 강변을 따라 이어지면 '강변길', 논두렁을 따라 생기면 '논두렁길', 산자락을 따라 나면 '자락 길'이다. 사람과 동물의 걸음걸음이 길을 뚫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길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이다.

한 사람이 걷는 길은 그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어떤 이는 홀로 따로 난 호젓한 '외딴길'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붐비는 길목에 난 '동구길'을 즐긴다. 어떤 이는 '큰길'만 고집하지만, 혹자는 잔디밭을 가로지르더라도 '지름길'을 찾는다. 한 군데로만 나 있어 선택의 고민이 없는 '외길'과, 둘 이상의 갈래로 나누어진 '갈림길' 중 어느 것에 끌리는가? 유명한 시 '가지 않은 길'이 오랜 세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누구든 '만약…'이라며 갈림길 앞의 자신을 되돌아본 적이 있기 때문이리라.

새해, 지금 우리는 어떤 길에 서 있는가? 길은 눈에 보이는 공간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길'에서 길은 곧 한 사람의 인생이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바른길과 꼬부랑길', '큰길과 오솔길'은 길의 상태를 보이는 것을 넘어, 어렵거나 순탄한 삶, 행위의 정당성, 참된 도리 등을 담아낸다. '길을 쓸다'는 말이 있다. 바쁜 여정에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을 다 비키게 한다는 말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마음이다. 그 와중에, 통로로 쓰는 마당이라는 '마당길'이 보인다. 나의 마당을 누군가의 통로로 내주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사전에 이 말이 살아있다. 길이 공간만이 아닐진대, 마당길이 꼭 진짜 마당만을 뜻하랴. 누군가의 넓은 마음과 재능이 마당길처럼 많은 이들의 살 길을 내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운다.

이미향 영남대 글로벌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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