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늬, '유령'으로 스크린 복귀
"설경구와 액션 장면, 감정 신으로 해석했다"
죽음을 위해 사는 삶은 어떤 느낌일까. 배우 이하늬는 '유령'의 차경으로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에게 여러 차례 질문을 던졌다. 의미 있게 죽고자 목숨을 아껴야 하는 인생은 이해조차 쉽지 않았다. 차경의 인생을 받아들이고 접근하기 위해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하늬는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영화 '유령'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이 작품은 1933년 경성, 조선총독부에 항일조직이 심어 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으며 외딴 호텔에 갇힌 용의자들이 의심을 뚫고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진짜 유령의 멈출 수 없는 작전을 그렸다. 이하늬는 유령으로 의심받는 총독부 통신과 암호 전문 기록 담당 차경으로 변신했다.
죽기 위해 사는 삶
이하늬는 바라본 차경은 차가워 보이지만 내면에 들끓는 슬픔을 품고 있는 인물이다. 동료를 잃고 몸을 떨며 거울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차경의 맨얼굴이 드러난다고 믿었단다. "슬픈데 소리 지르며 울 수도 없는 상황이다. 들킬까 봐 눈물을 집어삼켜야 하는 거다. 슬픔을 누르며 사는 상태가 어떨지 많이 생각했다"는 게 이하늬의 설명이다. '유령'은 이하늬가 감정을 꾹꾹 눌러 담는 캐릭터를 만나고 싶을 때쯤 인연을 맺게 된 영화였다. 그려왔던 작품과의 만남에 이하늬는 큰 반가움을 느꼈다.
차경으로 살아가는 동안 삶에 대해 생각했단다. 이하늬는 "분노, 슬픔을 일차원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캐릭터면 오히려 접근이 쉬울 수 있다. 목숨을 아껴서 죽어야 하는 희한한 삶을 이해해야 했고 내 안에 데리고 와야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하늬의 질문은 진중했고 심오했다. "죽음을 위해 사는 삶을 살면 어떤 심정일까요? 자신에게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존재가 눈앞에서 한 발의 총알로 떠났을 때 어떤 의미로 생을 끌고 가야 하는 걸까요?"
차경이 이야기한 사랑
'유령'은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도 많은 인물들의 관계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 중심에는 차경이 있다. 극 초반 난영(이솜)이 등장하는데 그와 차경의 관계는 수수께끼 그 자체다. 가족 같기도, 동지 같기도, 그 이상의 관계 같기도 하다. 극의 긴장감이 거세질 때쯤 차경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가 난영인지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사랑에 연인이 서로에게 갖는 감정, 가족이 서로를 아끼는 감정 등 다양한 마음이 속해 있기에 물음표가 더욱 짙어진다. 이하늬는 "사랑하는 사람이 난영인지, 제3의 남자인지 알 수 없다는 부분이 좋다. '잃게 된 사랑하는 사람이 난영뿐이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이러한 그는 '유령'을 촬영할 당시 이해영 감독에게 "제가 해석한 대로 연기하겠다"고 이야기했단다. 이하늬는 차경과 다른 인물들의 관계를 동지애, 연인 간의 뜨거운 사랑, 우정 등의 단어로 규정짓지 않았기에 더욱 깊은 해석의 층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본 후에는 이 감독의 섬세함에 감탄했단다. 그는 "김독님의 의지, 끈기, 성실함, 열정 등이 감동스러웠다"고 밝혔다.
설경구와의 액션
출연진은 이하늬가 '이 배우가 아니라면 이 인물을 누가 어떻게 구현했을까'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들었다. 다른 연기자가 캐릭터를 소화하는 모습이 상상조차 되지 않았단다. '유령'에서는 이하늬와 설경구의 호흡이 특히 돋보인다. 두 사람은 호텔에서 치열한 대결을 펼친다. 이하늬는 차경의 입장에서 '네가 죽거나 내가 죽거나'라는 생각을 품고 촬영에 임했다고 밝혔다. 체급, 성별 차이가 보이지 않길 원했다고도 했다. "액션 장면이지만 감정 신으로 해석했죠. 에너지의 끝판왕들이 모여 삶이 아니라 죽음을 놓고 포효하는 지점으로 바라봤어요."
이하늬는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몸에서 에너지의 파동이 나온다는 생각을 한단다. "골격을 사용해서라도 대결 신을 잘 살려보고 싶었다. 골격이 안 된다면 에너지를 담아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는 게 그의 속마음이다. "체육부 소속 남자와 팔씨름을 한 적이 있는데 이겼다. 내가 힘과 골격이 남다르다. 그래서 차경을 맡겨주신 거 아닌가 싶다"는 이하늬의 농담 섞인 말은 인터뷰 장소를 웃음으로 물들였다.
이하늬의 열정
애정이 듬뿍 담긴 작품인 만큼 이하늬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차경의 감정을 갖고 가는 시간 외에는 액션에 몰두했다. 액션이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다. 체력과 스킬이 준비되지 않으면 못 하는 거다. 운동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유령'에서 사용하는 4kg 장총의 무게에 익숙해지고자 노력했다고도 밝혔다. 여러 차례 장전하고 쏘다 보니 어떤 날에는 몸에 피멍이 맺혀 있었다. 두 번째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는 날도 있었다.
촬영하며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이하늬는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했다. 지난해 출산한 이하늬는 "익숙하게 했던 것들이 큰일을 겪고 나니 그렇지 않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포토월 앞에 서니 자신이 배우인 척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단다. 그럼에도 이전보다 훨씬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진 걸 느꼈다는 그는 앞으로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대중을 만날 예정이다.
이하늬의 애정과 땀방울이 담긴 '유령'은 오는 18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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