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가 담은 학교폭력 이야기
현 20대·30대의 학창 시절에도 학교폭력은 있었다
엄마는 내가 죽도록 누굴 때리면 더 가슴 아플 것 같아? 아니면 죽도록 맞고 오면 더 가슴이 아플 것 같아?"
'더 글로리' 김은숙 작가가 딸에게 받았던 질문이다. 그 답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아낸 듯 작품에는 학교폭력 이야기가 가득하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방관자도, 피해자를 몰아붙이는 선생님도 있다. '더 글로리' 속 학교는 현실과 얼마나 닮아 있을까.
'더 글로리'의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은 학교폭력 피해자다. 문동은은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졌고 온 생을 걸어 복수를 준비해왔다. 그를 괴롭혔던 아이들은 지독할 만큼 악랄한 모습을 보인다. 고데기로 화상을 입히기도 하는데 이는 문동은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충북경찰청, 언론 보도 등에 의하면 비슷한 일이 17년 전 충북 청주 한 중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더 글로리'는 드라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현실이다.
학교폭력은 우리 곁에 오랜 시간 존재해왔다. 동급생, 선후배 등에 의한 괴롭힘이 언론을 통해 조명 받아왔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피해자들의 글이 게재됐다. '더 글로리' 속 문동은의 나이는 30대다. 현재의 30대, 그리고 이들보다 열 살가량 어린 20대가 바라본 교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다양한 지역에 거주 중인 30대 2명과 20대 2명을 만났다.
30대 A씨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학교에 학생들을 괴롭히는 일진이 있었다. 지나갈 때 다른 학생들의 머리를 한 대씩 치고 급식 시간에는 새치기를 하며 괴롭혔다. 심심하면 건드리고 가거나 쉬는 시간에 갑자기 욕설을 퍼부었다"고 말했다. 서울 광진구에서 살아온 30대 B씨는 "은근히 따돌림을 받는 친구들을 봤다. 주먹질 같은 신체적 폭력은 없었지만 이들과 같은 조가 되면 짜증을 내는 학생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20대 C씨는 경상북도 포항시의 학교를 다녔다. C씨는 "중학생 때 일진들이 다른 학생의 책상을 밀치기도, 필통 안과 책상 위의 물건들을 쏟기도 했다. 화장실에 가두고 위에서 물을 뿌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20대 D씨는 "호감형 외모를 지니지 않은 친구를 보고 '예쁘다'며 비꼬는 경우가 있었다. 신체적 폭력은 목격하지 못했지만 은근한 따돌림은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문동은과 비슷한 나이대의 30대도, 그보다 어린 20대도 학교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오늘날의 교실에도 학교폭력의 아픔이 존재한다. 특히 SNS, 메신저 앱 등의 발달 속에서 사이버 폭력의 비율이 커진 상황이다. 청소년 학교폭력 예방 전문 NGO 푸른나무재단은 최근 지난해 9월 '2022 전국 학교·사이버 폭력 실태조사 및 대책'을 발표했다. 2021년 12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초·중·고교생 및 교사 등 6,025명을 대상으로 서베이, 인터뷰가 진행됐는데 학교폭력 유형 중 사이버 폭력은 역대 최고치인 31.6%였다. 이종익 사무총장은 "최근에는 사이버 폭력 양상이 다양해졌다. 푸른나무재단 사례에 따르면 익명 SNS 앱, 랜덤채팅, 배달 서비스, 공유형 교통수단, 중고거래 등 청소년들이 이용하는 대다수의 디지털 플랫폼에서 사이버 폭력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드라마가 현실과 완전히 같다고 볼 수는 없다. 차이점 중 하나는 교사의 모습이다. 정의로운 어른이 나서 사건이 잘 해결된다면 주인공이 복수심을 품을 일도 없다. 긴장감을 위해 많은 드라마 속 교사들이 사건을 방관하거나 그저 묻으려 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현실의 교사가 모두 이렇게 행동하는 건 아니다. 현직 교사 홍용덕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담임이 사건을 은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다고 했다. "직업의식이 없는 교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촌지 문화도 없어졌을뿐더러 무마시켰다가 밝혀질 때의 리스크가 더 크다. 학부모가 교육청에 사건을 은폐했다는 연락을 했을 때 생기는 일들의 해결이 돈 있는 집 학생의 아이를 처벌하는 쪽보다 어렵다. 자신의 귀찮음이 우선인 교사인 경우가 아닌 이상 굳이 학교폭력을 저지른 학생의 편을 들어줄 이유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교사가 진실이 드러나기 전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해야 하는 만큼 속상함을 느끼는 학생이 생길 수 있다고 바라봤다. 그는 "피해자 입장에서 '돈 많은 학생의 편을 들어줬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가해자도 추정되는 사람도 학교 학생이지 않나. 피해를 주장하는 학생의 마음에 섣부르게 적극 공감해 줄 수는 없다. 가해 학생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피해를 주장하는 학생의 말이 거짓말일 가능성도 존재하고 가해 학생에게도 자신의 입장이 있다. 피해 학생이 가장 원하는 건 공감이다. 교사 입장에서 마냥 공감해 줄 수는 없기에 피해자 입장에서는 '조용히 무마시키려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학교폭력은 드라마 속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교사, 학교폭력 예방 전문 NGO 등 그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집단도 많다.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학교라는 한 공간에 모이는 만큼 갈등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이 문제에 어떻게 맞설지다. 영혼까지 부서진 채 온 생을 희생해 복수를 준비하는 제2, 제3의 문동은이 등장하지 않도록 더 많은 이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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