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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지향의 일본, 글로벌 지향의 한국

입력
2023.01.14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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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일본처럼 폐쇄적인 사회도 문제이지만, 한국처럼 오로지 글로벌한 보편성이 사회적 권위를 대변하는 사회도 건강하지는 않다. 문화적 독자성을 갖고 글로벌 흐름에 대응하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일러스트 김일영

일본처럼 폐쇄적인 사회도 문제이지만, 한국처럼 오로지 글로벌한 보편성이 사회적 권위를 대변하는 사회도 건강하지는 않다. 문화적 독자성을 갖고 글로벌 흐름에 대응하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일러스트 김일영

◇로컬 지향인 일본 사회, 글로벌 지향인 한국 사회

일본 사회는 매사가 ‘로컬 지향적’이다. 일본에서 살 때 한국 사회와 다르다고 느꼈던 지점 중 하나다. 그런데 단순하게 “한국과 다르다!”고 뭉뚱그리기에는 사정이 좀 복잡하다. 한국도 일본에 못지않게 다른 문화권이나 외국과 분명히 다른 사고 방식이나 생활 양식, 취향 등 독자적인 특성이 뚜렷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한일 모두 타문화에 대해 다소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경향도 있다. 신랄하게 말하자면 한일 모두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는 ‘우물 안 개구리’라고도 할 수 있다. 즉, ‘로컬’ (local)의 특성이 강하다는 점은 한일 공통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매사에 이 로컬의 협소함을 뛰어넘겠다는 의지가 지속적으로 표출된다. 문화적 독자성이 뚜렷한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극복해 ‘글로벌’을 매사의 준거로 삼으려는 뜻이 강하다. 예를 들어, 많은 정치인들이 국가 과제의 전범으로 삼는 것은 예외 없이 서구의 선진국이다. 미국처럼 자유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마땅하고, 북유럽 국가처럼 복지 시스템을 목표로 삼아야 바람직하고, 서유럽 국가처럼 세련된 문화를 선도하면 좋겠다는 식이다. 글로벌을 선호하는 욕망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거리낌없이 발휘된다. 할 수만 있다면 자녀를 해외로 유학 보내려 하고, 주머니 사정에 여유가 있다면 국내 여행보다는 해외 여행을 선호한다. 국산차보다는 외제차를 타는 것이 부자가 제대로 돈자랑을 하는 방법이라는 인식도 있다.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한국 사회에는 로컬을 벗어나 글로벌로 나아가는 것만이 더 잘살 수 있는 길이라는 암묵의 정서가 있는 듯하다.

일본에서도 겉으로는 ‘서구의 선진국을 본받자’라는 슬로건이 동원되곤 한다. 하지만, 외국의 선진적인 사례나 글로벌한 기준을 참조한다고 해도, 결국은 일본 특유의 맥락, 특수한 사정을 중시하는 사고 방식이 더 많은 지지를 받는다. 로컬에 대한 평가가 높고, 글로벌한 보편성보다 로컬의 특수성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알기 쉬운 사례로, 일본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해외의 명품 브랜드보다 국왕 가문에 납품하는 토종 브랜드가 사치품으로 더 권위가 있다. 백화점 직원이 고급 제품을 자랑하는 단골 멘트도 “원재료도 일본산, 만드는 공정도 일본”이라는 말이다. 소비자들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이유로 해외 여행을 선호하지도 않는다. 일본 국내에도 최고 수준의 여행 서비스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일본의 소비자들이 최고급 서비스에 거리낌없이 지갑을 열어왔으므로 럭셔리한 소비 문화가 국내에 뿌리내렸다. 한번은 길거리에 서 있는 고장 차를 본 일본인 친구가 “외제차가 늘 말썽”이라고 투덜거렸다. 일제이든 외제이든 자동차가 고장 나는 경우는 있기 마련이지만, 외제차보다 국산차가 좋다는 인식이 있다 보니 애꿎게 외제차 타박이 튀어나왔다. 그 자리에서는 피식 웃고 말았지만, 일본에는 역시 글로벌보다는 로컬을 높이 평가하는 정서가 지배적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일본 사회의 ‘갈라파고스화’를 우려하는 목소리

일본 사회의 눈높이가 로컬에 머무르는 배경에는,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 국제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면서 반세기 동안 경제 부흥에만 골몰했다는 역사적인 맥락이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은근히 많이 회자되는 표현 중에 “일본은 태평양 끄트머리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라는 것이 있다. 처음 이 표현을 들었을 때에, 인구가 1억2,000만 명에 경제 규모로는 세계 3, 4위를 다투는 일본이 스스로를 ‘작은 섬나라’라고 자리매김하는 것이 의아하게 느껴졌었다. 이런 소극적인 자기 인식 역시 일본 사회의 내향적인 자의식과 정서가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내수만으로도 자족 가능한 인구, 생산, 소비의 규모를 갖춘 만큼, 글로벌 시스템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연성이 적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눈이 휙휙 돌아가게 빠르게 변하는 초고도화 네트워크 기술의 시대다. 일본에서도 더 이상 글로벌한 흐름과 동떨어져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로컬지향적 마인드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갈라파고스화’를 자초한다는 자기 비판이 제기된 지도 오래되었다.

특히 일본 젊은 층의 내향적 마인드가 오히려 현저해지는 듯한 상황이 우려를 부채질한다. 1990년대만 해도 어학 연수나 자유 여행을 외치며 거침없이 국경을 넘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1990년대 말에는 세계 어디를 가든 일본의 젊은 배낭 여행객을 자주 마주쳤고, 그중에는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로 나왔다는 호기로운 젊은이도 적지 않았다. 지금은 직장인에 비해 비교적 여유가 있는 대학생들도 해외 여행보다는 국내 기업에서 인턴 경험을 쌓기를 선호한다. 일본 경제가 침체되면서 외유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줄었고, 삶이 불안정하다고 느끼는 젊은 층이 늘어나는 만큼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최근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한국이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할 만하다. 다만, 그런 호기심 역시 오락적 차원에서 대중문화를 향유한다는 취미의 영역에 머무른다는 인상이다. 글로벌한 관점에서 삶의 기준을 되돌아보는 성찰로는 이어지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으니, 이미 체질이 된 폐쇄적인 인식을 갑자기 변화시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 ‘글로컬’(glocal)의 시대, 글로벌과 로컬 사이의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글로벌 지향이 곧 나라의 발전이라는 생각이 큰 이의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일본 사회가 로컬 지향적이라는 사실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학계에는 소위 ‘서양물’을 먹은 유학파 연구자가 적다. 영미권에 유학한 경험이 있어야 대학에 자리 잡기 쉬운 한국의 학계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의 대학 교수 중에는 국내에서 수학한 토종 연구자가 훨씬 더 많다. 그들은 영어 프레젠테이션이 서투르고, 외국의 학자들을 대하는 태도도 어수룩하다. 하지만 해외 경험이 일천하다고 연구의 질이 낮은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충실하게 학문을 추구할 수 있을 정도로 학술 인프라가 탄탄한 만큼,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우수한 학술적 성과가 차곡차곡 축적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외국의 연구자들이 찾아와 학문적 가르침을 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로컬지향적인 성실함이 국내에 경험과 실력을 쌓는 힘이 된 것이다.

사실 일본처럼 폐쇄적인 사회도 문제이지만, 한국처럼 오로지 글로벌한 보편성이 사회적 권위를 대변하는 사회도 건강하지는 않다. 글로벌한 흐름이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 변화에 대응하는 개별 전략은 현지의 특수성, 문화적 독자성에서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과 로컬이 한 몸이 된 ‘글로컬(glocal)’이라는 용어가 있다. 1990년대 이후 사람, 물건, 돈, 정보 등이 전 지구적 규모에서 빠르게 이동하고 현지에서 통합되는, ‘글로벌화’ (globalization)가 가속화하고 있다. 글로컬은 이런 글로벌한 흐름 속에서 오히려 현지의 독자성(로컬)이 두드러지는 현상을 뜻하는 재미있는 신조어다. 예컨대, 세계 어디에 가든 미국의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 글로벌화라면, 같은 맥도널드 햄버거라고 해도 한국에서는 ‘김치 버거’가 일본에서는 ‘데리야키 버거’가 개발되고 인기리에 판매되는 현상이 ‘글로컬화’(glocalization)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글로컬한 햄버거’를 구상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로컬과 글로벌 사이에서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본도 한국도 서로 다른 방향성에서 나름의 ‘글로컬’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인 것 같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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