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결성된 동인 '시힘'의 시인 16명
11번째 동인지 '꽃이 오고 사람이 온다' 출간
약 37년 시 써온 자신과 독자에게 바치는 시집
괴롭다. 외롭다. 시를 쓰는 이들은 말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동인일 테다. 한뜻으로 시를 대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격려하는 공간으로. 하지만 대개 동인은 세월에 따라 흩어진다. 시대가 변하면 동인을 묶던 문학적 사명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최근 열한 번째 동인지 '꽃이 오고 사람이 온다'를 낸 동인 '시힘'은 1984년 고운기 시인의 제안으로 결성됐다. 40년 가까운 세월 속에서도 끝내 흩어지지 않은 것이다. 동인을 구성했던 젊은 시인들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중견 시인으로 자리 잡았다. 고 시인을 비롯해 나희덕, 문태준, 안도현, 이병률 등이 함께하고 있다.
이번 동인지는 열 번째 이후 26년 만이다. 한참의 휴지기 후 다시 모인 셈. 그사이 동인의 해체 논의가 없었던 게 아니다. 고 시인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문학 동인의 성격상 몇 년 하다 보면 깨질 수 있고, 우리도 그런 논의가 있었다"면서도 "문학 전선에서 열심히 싸우다 지쳐 돌아올 수 있는 포근한 집처럼 (시힘을) 남겨 두자"는 데 의견이 모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느슨한 연대는 '시힘'의 장수 비결이다. 물론 창간호 서문에서 밝힌 '삶에 기반을 둔 서정성' '각각의 목소리의 가치와 조화, 그리고 상호' 등이 여전히 이들 시인을 묶는 중심이다. 각기 다른 개성의 시인 16명이 쓴 신작시와 산문을 담은 이번 동인지도 그 바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번 동인지에는 40년 가까이 시를 써온 시인의 마음가짐이 엿보이는 작품들이 적지 않다. 괴로움에도 포기하지 않고 시를 써온 자신과 독자에게 바치는 시들로 읽힌다. '흰 모란꽃 위에 바위를 얹었지요 // 그 바위가 삭아 주저앉기를 기다리면서요 // 모란꽃 흰 접시는 천년이 지나도록 깨지지 않았어요 //……' 안도현의 '모란꽃'은 흰 모란꽃처럼 깨지지 않고 버티며 스스로를 지키는 시의 힘을 생각하게 한다. 시인을 '감정 수선사'라 칭한 이대흠의 '감정 수선사의 밤'엔 시를 쓰는 일에 대한 겸허함이 담겼다.
책에 실린 '시작노트'는 또 다른 재미다. 최영철 시인은 "내 시의 가장 큰 동력은 천부적인 건망증"이라고 고백하고, 나희덕 시인은 인간중심주의가 부서져 내리는 시대를 소망한다. 나 시인의 산문은 그의 신작시 '밤과 풀' '물풀한계선'을 이해할 수 있는 나침반이다.
'시힘' 40주년을 앞두고 낸 이번 시집은 일종의 마중물이다. 시인들은 집과 같은 시적 공간을 독자와 공유하고 싶다는 뜻을 모았다. 그 마음을 담아 첫 동인지 발간(1985) 40주년이 되는 2025년에는, 대표작 선집과 신작 시집을 펴낼 계획을 잡았다. 고 시인은 "동인이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전국 4개 도시를 거점으로 삼아 계절별로 시 낭독회를 여는 등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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