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검업체 "동절기 수축 과다, 손상 가능성"
'계속 주의관찰' 지적에도 구청 대응 미비
최종 등급 A... 안전점검 실효성도 도마에
이달 3일 갑자기 내려앉은 서울 영등포구 도림보도육교가 사고 보름 전 정기안전점검에서 “구조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전 경고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부실 위험이 예견됐지만 종합 평가는 A등급을 받았고, 구청도 안이하게 대응하는 등 허술한 시설물 관리 체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11일 한국일보가 전승관 영등포구의회 의원(사회건설부위원장)을 통해 입수한 ‘2022년 하반기 3종 도로시설물 등 정기안전점검 용역 종합보고서’에는 도림육교의 위험 징후가 상세히 적시돼 있다. 보고서는 우선 “교량 받침 확인 결과, 동절기 수축이 다소 과다하게 이동한 것으로 조사됐고, 이로 인한 손상은 조사되지 않았지만 수축여유량 부족으로 구조물에 좋지 않은 영향이 우려된다”고 평가했다. 이어 “동절기 동안 교량 받침을 주의관찰해 수축여유량 부족에 따른 손상 발생 여부를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특별관리 요구사항도 첨부했다.
교량 받침은 다리 상ㆍ하부가 만나는 지점에서 상부 구조를 지지하는 중요 부품이다. 외부 온도나 건조, 풍압 등 환경 조건이 변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수축ㆍ이완하며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보고서는 교량 받침이 추운 날씨에 여유가 부족할 만큼 과하게 수축돼 있어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고 주문한 것이다.
구청 측 대처는 미흡했다. 점검 결과를 설계 특허권자와 설계자에게 보내 검토를 부탁하는 선에서 조치를 끝낸 것이다. 구청 관계자는 “유지 관리만 잘 하면 당장 교량 사용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란 특허권자와 설계자의 답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구청이 사고 징후를 무시한 정황은 또 있다. 안전점검 이후 지난달 31일과 이달 2일, 행정안전부 안전신문에 ‘육교 외형에 변형이 생겨 안전이 우려된다’는 두 차례 신고가 있었지만, 역시 무시했다. 한 교량 전문가는 “육안이 아닌 측정ㆍ시험장비로 정밀 진단을 했다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위험 신호가 충분히 감지됐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도림육교는 안전등급 산정 기준이 되는 점수 평가에서 A등급을 받았다. 안전점검은 영등포구청의 용역을 받아 민간업체 M사가 시행했다. M사는 지난해 10월부터 12월 15일까지 도림육교를 비롯한 다른 육교와 지하보도, 옹벽 등 11개 시설물의 안전점검을 했다.
M사 관계자는 “정기안전점검은 외관조사 수준인데, 조사할 때 외관은 깔끔했고 시설물안전법에서 규정하는 ‘중대 결함’에 해당하는 손상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결과적으로 구조체 이상을 경고하는 보고서 지적에도 점수는 최고 등급을 받고, 구청이 손 놓은 사이 보름 만에 다리가 주저앉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현재 진행 중인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조사가 끝나야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조성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인명 피해가 없는 이른바 ‘아차’ 사고에서 교훈을 얻어야 참사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예산, 점검 시스템, 안전 불감 등 모든 미비점을 철저히 되짚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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