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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 영화화의 1등 공신이 '게임'이라고? [게임연구소]

입력
2023.01.1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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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출시된 슬램덩크 모바일... 중화권서 인기
저작권 문제로 전국대회 이후 캐릭터 등장 못해
영화화로 게임에서도 정우성 이명헌 만날 가능성

지난 6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설치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광고. 뉴시스

지난 6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설치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광고. 뉴시스


"농구, 좋아하세요?"

('슬램덩크'에서 채소연이 강백호를 처음 만나서 했던 질문)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30·40대 남성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개봉 6일 만인 10일까지 관객 50만 명을 동원하는 등 '아바타: 물의 길'에 이은 예매율 2위를 기록 중이다. 여기에 만화책을 비롯한 굿즈 판매, 구판 TV 애니메이션의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 정주행 등 극장 밖으로도 열풍이 확산되고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1990년부터 7년간 일본 만화잡지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된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농구만화 '슬램덩크'를 원작으로 한다. 일본에서 연재가 종료된 지 26년이나 된 '옛날 만화'가 한국에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그런데 왜 슬램덩크는 하필 지금에서야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온 것일까.

게임 캐릭터 저작권 때문에 영화를 만들었다?

모바일 게임 '슬램덩크 모바일'. DeNA 제공

모바일 게임 '슬램덩크 모바일'. DeNA 제공

최근 유튜브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갑작스러운 슬램덩크의 영화화는 게임 내 저작권 문제 때문이다"라는 이야기가 돌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산왕공고 등 슬램덩크의 일부 인기 캐릭터들이 저작권 때문에 게임 속에 등장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 자본이 투입됐고, 10년 넘게 지지부진하던 영화화가 신속하게 진행됐다는 설이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게임은 일본 게임개발사 DeNA가 2019년 12월 토에이 애니메이션과 손잡고 만든 모바일 게임 '슬램덩크 관람고수(灌篮高手)'다. 당시 슬램덩크의 인기와 함께 출시 직후 중국 앱스토어 매출 17위에 올랐으며, 이후 매출 순위 10위권을 유지하는 등 홍콩과 대만 등 중화권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동아시아권에서 세기의 명작으로 남은 원작 만화 슬램덩크의 인기 덕이었다.

이 게임은 2020년 7월 국내에도 '슬램덩크 모바일'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돼 애플 앱스토어 인기 1위, 구글 플레이스토어 급상승 1위와 스포츠 게임 분야 1위 등을 차지했다. 슬램덩크 모바일은 강백호, 채치수, 서태웅 등 등장인물들을 귀여운 SD(Super Deformation) 캐릭터로 표현했다. 또 '고릴라 덩크'(북산 센터 채치수의 덩크슛)처럼 원작의 인기 기술을 게임 속에 구현해 게이머뿐 아니라 슬램덩크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문제는 DeNA가 협약을 맺은 곳이 TV 애니메이션 저작권을 보유한 토에이 애니메이션이었다는 것. 슬램덩크 모바일에는 '슈퍼에이스' 정우성과 이명헌, '에이스킬러' 남훈 등 산왕공고와 풍전고 소속의 인기 캐릭터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슬램덩크 TV 애니메이션이 전국대회 전 스토리까지만 진행됐기 때문이었다. 전국대회 이후에 등장한 학교와 선수들은 저작권 문제 때문에 게임에 등장할 수 없는 슬픈 사정이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1994년부터 2022년까지 슬램덩크 지적재산권(IP)으로 제작된 10여 개의 게임 중 산왕공고가 등장하는 게임은 단 하나도 없다. 모두 TV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고등학생들이 쉬는 시간마다 교실 컴퓨터로 즐겨했던 슈퍼패미컴 게임 '슈퍼슬램'에도 북산, 능남, 상양, 해남대부속고만 등장할 뿐 산왕공고는 등장하지 않는다. 슬램덩크 IP로 사업을 확대하고 싶은 '어른들' 입장에서 전국대회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필수적이었다.

슬램덩크 영화화, 2003년부터 추진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 슬램덩크 프리미엄 박스판이 진열대에 놓여 있다. 뉴스1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 슬램덩크 프리미엄 박스판이 진열대에 놓여 있다. 뉴스1

하지만 '게임 저작권 때문에 슬램덩크 영화가 탄생했다'는 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전국대회를 배경으로 한 슬램덩크의 영화화는 꾸준히 추진돼 왔지만, 게임과는 무관했기 때문이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총괄 프로듀서 마츠이 토시유키의 현지 인터뷰에 따르면 슬램덩크 영화화가 처음 추진된 건 2003년이었다. 토에이 애니메이션 소속의 마츠이 프로듀서는 당시 원작자 이노우에 작가에게 TV 애니메이션 이후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려는 의향을 타진했지만 거부당했다.

TV 애니메이션 DVD 판매로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던 토에이로서는 후속작 개발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 동아시아권의 최고 인기 IP인 슬램덩크의 후속 작품을 쉽사리 포기할 수도 없었다. 이에 토에이 측은 마츠이 프로듀서를 주축으로 팀을 구성, 수년에 걸쳐 3D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프로토타입 비디오를 제작하는 등 이노우에 작가를 설득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결국 이노우에 작가가 2014년 2D와 3D가 결합된 세 번째 프로토타입 비디오를 보고 나서야 영화화를 승인했고 2015년 대본 작업, 2018년 모션 캡처 작업 등이 시작되면서 2022년에서야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빛을 볼 수 있었다.

선후관계를 차치하고서라도, 향후 슬램덩크 모바일에는 산왕공고 캐릭터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영화 덕에 게임 외에도 슬램덩크 IP를 기반으로 제작되는 2차 창작물에서 산왕공고 캐릭터의 활용 가능성도 커졌다.

슬램덩크 모바일도 영화 개봉을 전후에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는 등 마케팅에 공을 들이고 있다. 13일 앱 통계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슬램덩크 모바일은 영화 개봉일인 지난 4일 원스토어 일간 매출순위 73위에 올랐다. 영화가 입소문을 탄 지난 9일에는 애플 앱스토어에서도 매출 순위 78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동안 순위권 밖에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게임도 덩달아 인기를 얻게 된 셈이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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