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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건전지, 재활용만 잘하면 철강·벽돌 만들 때 활용된다는데

입력
2023.01.04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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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우리는 하루에 약 1㎏에 달하는 쓰레기를 버립니다. 분리배출을 잘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쓰레기통에 넣는다고 쓰레기가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버리는 폐기물은 어떤 경로로 처리되고, 또 어떻게 재활용될까요. 쓰레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공동주택에 설치된 폐건전지함. 폐건전지함이 없는 곳이라면 주민센터에 직접 가져다주면 처리가 가능하다. 곽주현 기자

공동주택에 설치된 폐건전지함. 폐건전지함이 없는 곳이라면 주민센터에 직접 가져다주면 처리가 가능하다. 곽주현 기자

퇴근 후 TV 앞에 앉아 버릇처럼 리모컨을 손에 쥡니다. 오늘은 뭘 보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까,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려는데 리모컨이 말을 안 듣네요. 분명 건전지가 힘을 다한 거겠죠. 서랍장을 열어 새 건전지를 꺼내고, 리모컨 안에 들어 있던 폐건전지는 빼서 쓰레기통에 넣으려는데…. 아차, 건물 아래 폐건전지함이 따로 있었던 게 기억나네요. 폐건전지함엔 이미 다른 가구에서 내놓은 폐건전지가 가득합니다. 모양도, 종류도 다양한 이 건전지들은 어디로 가서 재활용되는 걸까요?

코인형 전지부터 일체형 배터리까지, 다양한 전지의 세계

아파트, 빌라 등 공동주택은 보통 단지 내 폐건전지 수거함이 있습니다. 만약 없다 해도, 폐건전지와 배터리 등은 따로 모아 정해진 장소에 버려야 하죠. 학교 등 공공시설이 주변에 있다면 폐건전지함을 쉽게 찾을 수 있고, 만약 없다면 모아서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 갖다 주면 됩니다. 건전지를 모아 갖다 주면 휴지나 새 건전지, 종량제봉투로 바꿔주는 지자체도 있다네요.

거점에 모인 폐건전지는 지자체에서 수거해 갑니다. 폐건전지 재활용이 가능한 업체는 전국에 딱 두 곳이 있는데, 경기 안성시와 경남 김해시에 한 곳씩 있죠. 지자체에서 보내온 폐건전지는 재활용 업체에 모여 선별 과정을 거칩니다. 같은 'AA' 건전지라고 해도 내용물이 다르거든요.

마트에서 팔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건전지. 곽주현 기자

마트에서 팔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건전지. 곽주현 기자

건전지 종류는 안에 쓰이는 물질에 따라 달라집니다. 가정에서 많이 쓰는 건전지는 망간·알칼리 건전지입니다. 둘을 구분해보자면 망간 건전지의 경우 리모컨과 벽시계처럼 전류 소모가 적지만 오랫동안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요한 곳에 적합하고, 알카라인(알칼리망간) 건전지는 단시간 전류 소모가 많은 미니카나 게임기 등에 주로 사용됩니다.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제도에 포함돼 있는 전지 배출량 중 망간·알칼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출고량 기준 92%에 달합니다.

이외 비충전 전지는 리튬 1차전지, 산화은 전지 등이 있습니다. 리튬 1차전지는 망간·알칼리 전지에 비해 높은 전압을 내고 수명이 긴데요, 그런 특성 때문에 의료기기나 군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산화은 전지는 주로 코인형으로 만들어지는데, 손목시계에 많이 쓰입니다. 과거 '수은전지'로 알려졌던 수은 코인전지는 1995년 이후 제조가 금지돼 이제는 배출되지 않습니다.

충전이 가능한 2차 전지로는 과거에 많이 쓰이던 니켈카드뮴·니켈수소 전지 외에도 최근 급격히 사용량이 늘고 있는 리튬이온·리튬폴리머·리튬인산철 전지 등이 있습니다. 이 중 리튬계열 전지는 휴대폰과 노트북부터 전자담배, 전동스쿠터 등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요. 배터리 일체형인 경우 재활용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리튬폴리머 전지가 들어가 있는 전자담배의 경우 플라스틱 쓰레기로 배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파쇄 과정에서 불이 나거나 폭발할 수 있어 매우 위험합니다. 배터리가 따로 분리되지 않는 전자기기는 대형폐기물로 신고해 지자체로 배출하거나, 폐건전지와 함께 배출하는 게 안전하다네요.

철, 아연, 니켈, 망간 파우더... 95% 이상 재활용 가능

망간·알칼리 전지 재활용 과정. 한국전지재활용협회 제공

망간·알칼리 전지 재활용 과정. 한국전지재활용협회 제공

종류별로 분류된 건전지는 분해 공정에 들어갑니다. 망간·알칼리 전지는 작게 파쇄해 열분해하고 자석으로 골라내는 과정을 거쳐 철과 망간·아연, 금속으로 나눠 담습니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망간과 국내 자급량이 2~3%밖에 되지 않는 아연까지 재활용이 가능해진 거죠. 망간 파우더의 경우 '이산화망간'으로 만들어 착색제로 많이 사용하는데, 세라믹 점토 벽돌을 만드는 과정에서 흑색이나 암적색, 암갈색을 내는 데 쓰입니다. 철 스크랩은 녹이면 다시 강철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죠. 다른 전지들에서도 니켈이나 구리, 은, 코발트 등 희소금속을 추출해낼 수 있습니다. 건전지가 제대로 버려지기만 한다면 95% 이상 재활용이 가능하다네요.

생산자에게 재활용 의무를 부여하는 EPR 제도에 포함돼 있는 전지의 경우 매년 재활용 의무율이 설정됩니다. 2021년을 기준으로 하면 망간·알칼리 전지는 출고량의 28.4%가 재활용 의무량이었는데, 실제 재활용 비율은 초과 달성(29.5%)됐습니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배출되는 망간·알칼리 전지의 30%가량만 재활용되고, 일반쓰레기로 버려지는 경우가 70%에 달한다는 뜻이죠. 다만 재활용률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데요. EPR 제도가 시작됐던 2003년만 해도 20% 남짓이었던 비율이 20여 년 만에 10%포인트 증가했습니다. 니켈카드뮴과 리튬1차전지의 경우 40%대 재활용률을 자랑합니다.

건전지 재활용을 의무화한 이유는 제대로 처리되지 않을 경우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배출될 경우 전지는 각종 광물을 얻을 수 있는 '도시광산'이지만, 땅에 매립될 경우 '중금속 오염원'으로 돌변합니다. 건전지 안에 포함된 망간은 파킨슨병을 유발할 수 있고, 아연은 급성 중독시 사지마비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니켈은 호흡기장애나 전신장애 위험이 있고, 카드뮴은 전신에 손상을 일으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중금속이 토양을 넘어 강이나 바다로 흘러 들어갈 경우 농산물뿐 아니라 어패류에 영향을 주면서 결과적으로 인간 건강에 치명적인 역할을 하게 되죠.

최근 들어서는 리튬계열 배터리를 사용하는 제품이 늘면서 배출량도 매년 2배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리튬계열 전지는 EPR 품목에 아직 포함돼 있지 않아 재활용 여부를 모르는 소비자들이 많다네요. 한국전지재활용협회 관계자는 "쉽게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일본처럼 전지 종류에 따라 색깔을 달리해 재활용 표시를 하는 등 행정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소비자들도 전자기기를 버릴 때 배터리가 포함돼 있다면 폐건전지함 또는 지자체를 통해 올바르게 버릴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습니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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