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까지 관객 148만 명... "안중근 의사 향한 연민에 마음 끌려"
11일 동안 148만 명(12월 31일 기준 영화진흥위원회 집계). 뮤지컬 영화 ‘영웅’의 흥행 중간 성적이다. 성수기인 연말을 감안하면 특별한 숫자는 아니다. 국내 영화계에서 뮤지컬 영화는 흥행 사례가 없다. ‘해운대’(2009)와 ‘국제시장’(2014)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윤제균 감독은 왜 안락한 길보다 도전을 택했을까. 개봉 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윤제균 감독은 “돈이든 뭐든 떠나서 무조건 하고 싶었던 영화”라고 말했다.
'영웅’은 동명 뮤지컬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순국하기까지 1년가량 행적을 다룬다. 뮤지컬은 2009년 첫 공연된 후 국내 대표 창작 뮤지컬로 자리 잡았다. 윤 감독은 2012년 뮤지컬 ‘영웅’을 첫 관람했다. “공연을 보고선 오열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영웅’처럼 두세 시간 만에 사람 마음을 감정의 태풍 속으로 몰아넣는 콘텐츠가 세상에 얼마나 있겠냐”고 반문했다.
윤 감독은 공연 관람 후 “나중에 잘 되면 영화 ‘영웅’을 꼭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때마침 ‘국제시장’이 1,426만 명을 모았다. 투자배급사 CJ ENM에 투자를 요청했다. “어지간하면 투자해주겠지 했는데 (투자심사위원회 위원) 4분의 3가량이 반대했다”고 한다. ‘왜 하필이면’이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해요. 국산 뮤지컬 영화가 성공한 적도 없고, 제작비는 100억 원 이상 들어가야 하니까요.”
윤 감독은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감독은 마음이 움직여야 연출을 하지 돈이 된다고 억지로 영화를 만들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하며 관계자들의 마음을 돌렸다.
윤 감독이 ‘영웅’에 마음을 사로잡힌 건 ‘연민’ 때문이다. 그는 공연을 보며 “안 의사에게 너무 죄송스러웠다”고 했다. “평범한 가장이자 남편이자 아들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던 분이 나라가 힘이 없으니까 어려운 길을 갔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직 유해를 못 찾아온 점”도 죄송했다.
‘영웅’에선 이토 사살 장면이 절정이 아니다. 안 의사가 거사에 성공한 후에도 영화는 30분가량 계속된다. 윤 감독은 “공연에서 마음을 가장 흔든 건 모친 조마리아(1862~1927) 여사가 안 의사에게 항소를 포기하라는 편지를 쓰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고아는 있어도 자식 잃은 부모를 가리키는 단어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해요. 슬픔의 크기와 깊이가 너무 커서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으니까요. 옳은 일을 했으니 그냥 죽으라고 하는 대목이 감동적일 수밖에요.”
윤 감독은 ‘영웅’을 만들면서 2가지 목표를 세웠다. “뮤지컬을 봤던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뮤지컬 영화 제작”이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선 초연 때부터 무대에서 안 의사로 분해온 배우 정성화의 출연이 필수였다. 윤 감독은 “안 하겠다고 하면 무릎 끓고 사정할 각오까지 했다”며 “투자사가 반대하면 영화를 엎을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영웅’은 배우들의 노래를 현장에서 녹음했다. 윤 감독은 “필수”라고 생각했다. “라이브가 아니면 목표를 이룰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현장 녹음은 예상보다 더 어려웠다. 윤 감독이 “적당히 알았으면 아예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매번 ‘소리와의 전쟁’이었다. 겨울 촬영 때 스태프의 바스락거리는 패딩 소리까지 통제해야 했다. 촬영장 바닥에 담요를 까는 등 작은 소음이라도 제거하기 위해 여러 묘안을 짜냈다. 배우들은 장면마다 10번가량을 노래하고 연기했다. 배우들이 3, 4번 연기하던 윤 감독의 예전 촬영 현장과는 달랐다. 고생한 대신 노하우는 쌓였다. 하지만 뮤지컬 영화를 또 연출할 의향이 있는지 묻자 윤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힘들어 안 할 거 같아요.”
윤 감독은 영화 제작과 연출 이외에도 일이 늘었다. 지난해 7월 CJ ENM의 자회사 CJ ENM 스튜디오스의 공동 대표가 됐다. CJ ENM 스튜디오스는 ‘영화계의 스튜디오 드래곤’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던 회사다. 윤 감독은 “국내 시장 수익 극대화가 임무였으면 아마 맡지 않았을 것”이라며 “K콘텐츠의 세계 진출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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