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1대 국회 체포동의 요청 13명 분석
"피의사실 공표""깜깜이 표결 안 돼" 논란
역대 장관, 증거 열거하되 구체 언급 자제
한동훈 최장 설명…통상 300~800자 수준
개인 의견·수사 경험까지 언급 '전례 없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국회 체포동의 요청 이유 설명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노 의원의 뇌물수수 등 혐의와 증거를 이례적으로 상세히 밝혔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노 의원과 민주당은 이를 두고 '피의사실 공표'라고 주장하지만, 한 장관은 '법무부 장관의 임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18대부터 21대 국회까지 최근 15년간 본회의에 상정된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 안건 13건을 분석했다. 법무부 장관이 정부 대표로 나서 국회 본회의 발언대에서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한 사례들이다. 요청을 하게 된 경위와 해당 의원의 혐의에 대한 설명이 공통적으로 담겼다. 다만 한 장관은 이례적으로 상세하게 증거관계를 설명했고 개인적 의견까지 언급하는 등 다른 장관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한동훈 '1950자'… '이석기 내란음모' 황교안 '1830자'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회의록 등을 분석한 결과, 한 장관의 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 요청 이유가 13명 의원 중에서 1,950여 자 정도로 가장 길었다. 2013년 9월 황교안 전 장관의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등 혐의에 대한 요청 이유는 1,830자로 뒤를 이었다. 황 전 장관은 2014년 9월 '철도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던 새누리당 소속 송광호 전 의원에 대한 요청 이유는 650자 수준으로 발언했다.
권재진 전 장관은 2012년 7월 새누리당 소속 정두언(알선수재 등), 무소속 박주선(공직선거법 위반) 전 의원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각각 700자와 500자 수준으로 설명했다. 2012년 9월 현영희 전 의원의 선거법 위반 사건은 750자 정도였다.
이귀남 전 장관은 2010년 9월 민주당 소속 강성종 전 의원의 교비 횡령 혐의와 관련해 500자 정도로 간략히 혐의를 밝혔다. 박상기 전 장관의 경우 2018년 5월 자유한국당 소속 '사학비리' 홍문종, '강원랜드 채용비리' 염동열 전 의원에 대한 요청 이유를 700자와 870자 선에서 정리했다.
21대 국회서 추미애, 박범계 전 장관이 더욱 간략하게 요청 이유를 밝혀 한 장관의 전날 발언은 더 부각됐다. 추 전 장관은 민주당 소속 정정순 전 의원의 선거법 위반 등 혐의와 관련해 2020년 10월 330자쯤으로 언급했다. 박 전 장관도 지난해 4월과 9월 '이스타항공 횡령·배임' 이상직 전 의원과 '뇌물수수'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 300자와 380자 정도로 설명했다.
앞서 김현웅 전 장관도 2015년 8월 박기춘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 380자 정도로 요청 이유를 언급한 바 있다.
녹음 발언 인용에 묘사도…이전에는 증거 열거 수준
법무부 장관들이 수사받는 의원에 대한 혐의 내용과 증거관계를 거론한 적이 있지만, 한동훈 장관은 증거에 담긴 내용 자체를 상세히 밝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 장관은 "노웅래 의원이 청탁을 받고 돈을 받는 현장이 고스란히 녹음된 녹음파일이 있다"며 "구체적인 청탁을 주고받은 뒤 돈을 받으면서 '저번에 주셨는데 뭘 또 주냐, 저번에 그거 제가 잘 쓰고 있는데'라고 말하는 노 의원의 목소리, 돈봉투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도 그대로 녹음돼 있다"고 했다.
또한 "그밖에도 '귀하게 쓸게요, 고맙습니다, 공감정치로 보답하렵니다'라고 돈을 줘서 고맙다고 하는 노 의원의 메시지도 있고, '저번에 도와주셔서 잘 했는데 또 도와주느냐'는 노 의원 목소리가 녹음된 전화통화 녹음파일도 있다"고도 부연했다. 이외 자필 메모와 의원실 보좌진의 업무수첩, 공공기관에 문의한 청탁 관련 내용 질의 회신 내역도 있다고 강조했다.
체포동의안이 이미 의원들에 배포된 상황에서 녹음파일 속 발언을 인용해 문자메시지 문구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한 셈이다. 노 의원은 체포동의안 부결 직후 입장문을 통해 "유례없는 법무부 장관의 불법 피의사실 공표에 대단히 유감을 표한다"며 "검찰 조사에서도 나오지 않았고, 당사자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녹취록 내용을 담당 검사도 아닌 법무부 장관이 어떻게 그리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한 장관은 표결 후 기자들과 만나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서 책임을 갖고 증거관계나 범죄 경중에 대해 말한 것"이라며 "(녹음파일 발언 관련 야당 지적은) 의원들이 내용을 못 보셔서 그런 것 같은데, 체포동의안에 들어 있는 구속영장 사유에 그 내용이 다 기재돼 있다"고 말했다.
역대 법무부 장관들은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되기까지의 경위를 밝히고, 범죄일시와 혐의내용 및 당사자 입장을 주로 설명하고 있다. 증거는 거론하지 않거나, 증거내역을 열거하더라도 구체적 내용을 언급하진 않았다.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법원에서 비공개로 열리지만 국회 본회의는 국회방송 등을 통해 일반에 실시간 중계되기 때문에,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의원에게 '망신 주기'가 되지 않도록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를 비교적 길게 설명한 황교안 전 장관도 배경과 법리 검토를 주로 언급했다. 증거와 관련해선 "국가정보원은 참고인 등 진술, 각종 비밀회합에서 해당 의원 및 관련자들 발언 내용, 압수된 각종 문건, USB메모리에 수록된 자료 등 제반 증거자료에 의해 혐의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열거했을 뿐이다. 녹음파일 및 문자메시지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한 경우는 없었다.
이 밖에 권재진 전 장관은 "금품 제공자가 일관되게 알선대가 등 금품 제공 사실을 진술하고 저축은행 임직원 등 참고인들 진술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어 혐의가 충분히 입증된다"고 말했다. 박상기 전 장관도 "해당 의원은 검찰 조사에서 혐의사실을 부인하나, 공여자들은 일관되고 구체적인 진술을 하고 있으며, 대학 관계자들 진술과 학교법인 이사회 회의록 및 계좌추적 결과 등 여러 인적·물적 증거들도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법무부 "혐의, 증거 설명 당연"…근거 조문 포괄적, 제한은 없어
법무부는 노 의원과 민주당 주장에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 전 근거자료로서 범죄혐의와 증거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국회법 93조에 따른 법무부 장관의 당연한 임무"라고 반박했다. 또한 구체적 사건 지휘는 하지 않지만 검찰보고사무규칙상 사건보고는 받도록 돼 있는데, 이번 사안은 국회에 장관이 직접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하기에 자세한 보고를 받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가 근거로 삼은 조문은 국회법 93조 중에서도 '위원회 심사를 거치지 않은 안건에 대해선 제안자가 그 취지를 설명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안건 제안자의 취지 설명에 대한 포괄적 조문일 뿐 범죄혐의와 증거관계 설명 의무가 명시돼 있지는 않다. 다만 구체적인 제한 규정도 없어 법무부 주장이 틀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노 의원이 주장한 형법 126조 피의사실 공표죄는 검찰·경찰 등 수사 직무를 수행하거나 이를 '감독·보조하는 이'가 직무 수행 중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제기 전에 공표한 경우에 해당한다. 검찰 사무를 관장하는 법무부 장관을 감독자로 볼 수는 있으나, 법무부 장관이 공개된 본회의에서 법에 따라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해야 했던 상황을 고려하면 피의사실 공표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개인 경험과 의견 설명 이례적…법무부 "장관 재량"
한 장관의 체포동의 요청 이유가 다른 장관들과 구분되는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덧붙였다는 것이다. 한 장관은 "동료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다음 두 가지 점을 고려하실 거라 '생각'합니다"라며 "첫째로 증거는 확실한지, 둘째로 의원을 체포할 만큼 무거운 범죄인지가 그것"이라며 운을 뗐다. "동료 국회의원이 혹시라도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 장관은 그러면서 "'저는' 지난 20여 년간 중요한 부정부패 수사 다수를 직접 담당해왔습니다만, 부정한 돈을 주고받는 현장이 이렇게 생생하게 녹음돼 있는 사건은 본 적이 없다", "뇌물 사건에서 이 정도로 확실한 증거들이 나오는 경우를 '저는' 보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다른 모든 국민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당연한 기준이 노 의원에게만은 적용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저는' 찾지 못하겠습니다" 등 한 장관의 개인적 생각과 경험을 다수 표출했다.
한 장관 이외의 다른 장관들의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살펴보면 "여러 인적·물적 증거들이 뒷받침하고 있어 범죄 혐의는 충분히 인정된다고 생각된다" 정도의 문장이 등장할 뿐이다. 역대 장관들은 정부 대표로서 설명하는 자리라는 점을 감안해 개인적 의견은 배제한 채 건조하고 간결하게 설명했지만, 한 장관은 관례를 깨고 자신의 생각까지 곁들인 것이다.
법무부 측은 한 장관이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이례적으로 상세히 설명한 이유를 묻자 "국회법상 장관이 체포 필요성을 설명해야 하기에 '깜깜이 표결'이 되지 않도록 안건에 대해 최대한 충실히 설명한 것"이라며 "설명 내용은 장관 재량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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