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 내 소수 세르비아계가 불씨
세르비아, 자국민 보호 명분 삼아 전투 준비 태세
'코소보 분쟁' 재점화 우려 최고조
발칸반도가 다시 화염에 휩싸일 위기에 놓였다.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한 코소보 북부에서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 주민 간 민족 갈등이 일촉즉발로 치달으면서다. 세르비아는 최고 수준의 전투 태세를 발령하면서 군사행동에 나설 채비를 갖췄다.
세르비아, '자국민 보호' 명분 삼아 군사 행동 채비
2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전날 "(코소보 내) 우리 국민을 보호하고 세르비아를 보존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군의 전투 준비 태세를 최고 등급으로 올렸다. 지난 10일부터 코소보 북부 미트로비차의 주요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시위 중인 세르비아계 주민 보호를 명분 삼아 군사 위협 수위를 높인 것이다. 세르비아와 코소보의 '피의 역사'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남유럽 발칸반도의 세르비아와 코소보는 1992년 해체된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뿌리를 뒀다. 즉시 독립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과 달리 코소보는 2008년 세르비아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1998, 1999년 코소보 분쟁 때 세르비아계의 '인종 청소'로 1만3,000명이 학살되는 피의 대가를 치렀다.
코소보를 '민족의 발원지'로 여기는 세르비아는 코소보를 쉽게 놔주지 않았다. 코소보 내 세르비아계는 지금도 "코소보는 세르비아다"를 외친다. 인구 195만 명인 코소보는 이슬람교를 믿는 알바니아계가 절대다수다. 세르비아계는 약 5만 명으로, 주로 북부에서 사실상의 자치권을 누리며 모여 산다.
주권 vs 정체성… 물러설 수 없는 두 민족
10여 년간 이어진 '불안한 동거'는 최근 '자동차 번호판' 갈등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코소보가 지난달 세르비아계의 자동차 번호판을 세르비아 정부가 아닌 코소보 정부가 발급한 번호판으로 바꾸도록 강제한 것이 불씨가 됐다. 코소보엔 주권이 달렸고, 세르비아계엔 민족 정체성에 관한 문제였다. 세르비아계는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코소보 경찰에 위협사격을 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이 중재에 나서면서 갈등은 봉합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달 들어 전직 세르비아계 경찰관이 코소보 경찰을 폭행한 혐의로 체포되면서 다시 불이 붙었다. 세르비아계는 경찰관 이송을 막기 위해 주요 도시를 바리케이드로 봉쇄했다. 25일 경찰과 세르비아계의 총격전이 벌어지자 세르비아 정부까지 끼어들었다. 세르비아는 "코소보가 세르비아계에 대한 테러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하고, 코소보는 "세르비아가 불법 무장 단체의 배후에서 정치적 불안을 부추긴다"고 맞서고 있다.
주변 정세도 꼬여… 러시아 vs 서방 대리전 되나
외교적 돌파구를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세르비아는 인종 경계에 따른 코소보 영토 분할을 제안한 바 있지만 코소보가 수용할 가능성은 없다. 세르비아계는 "코소보가 세르비아계에 제한된 자치권을 부여하기로 한 2013년 브뤼셀 협정을 따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코소보는 '국가 안의 독립국가'가 생길 것을 우려한다.
코소보 독립을 후원한 EU·미국과 세르비아의 우방인 러시아 간 대리전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코소보는 "세르비아가 발칸반도에서 갈등을 조장하는 배경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고자 하는 러시아가 있다"고 비난한다. 코소보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러시아는 세르비아 편에 서 있다.
세르비아와 러시아는 정교회를 믿는 슬라브족 국가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난 4월 재선에 성공한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다. 세르비아는 러시아 경제제재도 불참했다. 코소보 분쟁 당시 학살을 막는다는 취지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세르비아를 폭격한 것에 대한 원한도 깊다.
EU와 미국은 거듭 중재에 나섰지만, 코소보와 세르비아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고 영국 BBC방송은 전했다. 코소보에 약 3,700명이 주둔 중인 나토 평화유지군은 "세르비아계를 보호하라"는 세르비아와 "바리케이드를 해체하라"는 코소보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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