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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의 소멸과 장례식장이 된 예식장

입력
2022.12.28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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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풍습이 바뀌면 세상사의 많은 면모도 달라진다. 한 국수공장을 취재할 기회가 있었는데 결혼 예식에 더 이상 국수를 제공하지 않아서 물건이 안 팔린다고 했다. 이는 피로연을 집이 아니라 예식장에서 치르는 현재의 풍속과 관련이 깊다. 경제성장으로 뷔페라는 이름의 값나가는 외식에 소박한 국수가 밀려버렸다. 또 도시화는 아파트에서 뭘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간단한 김장조차 쉽지 않다. 하물며 대량의 국수를 삶고 대접할 마당과 조리공간이 있을 리 없다. 뷔페가 인기를 끌면서 잔치국수는 제일 큰 판매처를 잃었다. 설사 국수를 계속 대접하는 문화가 살아 있었다고 해도 결혼이 드문 요즘 같아서는 판매 부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옛날에 혼인날이 다가오면 예식 일주일 전부터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다른 지방에서 오는 친지들은 이미 며칠 전에 당도하여 방과 마루를 차지하고 묵었다. 밀린 회포도 풀고, 잔치의 기쁨을 미리 나누었던 것이다. 마당 같은 공간은 충분해서 차일 치고 음식 장만을 하기 좋았는데 문제는 조리도구가 별로 좋지 않았다는 거다.

나는 어려서 도시 변두리에 살았는데 집집마다 석유풍로를 징발(?)해서 잔칫집에 가져와서 불을 피웠던 걸로 기억한다. 아주머니들이 각자 잘하는 요리 하나씩 잡고 하루 종일 지지고 부쳤다. 그럴 때마다 '도감'(지휘자) 격의 아주머니나 할머니가 한 분 있어서 이런저런 통솔을 하던 장면이 생생하다. 홍어를 그리 무쳐서는 안 된다는 둥, 간이 모자라다는 둥 돼지고기를 빨리 썰라고 재촉하고 그랬던 것 같다. 우리 같은 꼬마들은 그 북새통을 헤집고 다니며 입에 단 것을 얻어먹었다.

50여 년 전의 서울 변두리 결혼식 잔치는 원래의 고향 풍습과 서울의 세련된(?) 요리 문화가 서로 섞여 있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상차림은 독상은 이미 사라졌던 것 같고, 모양도 제각각인 교자상에 여럿이 둘러앉아 잡채와 홍어무침(전라도식 삭힌 게 아니라 빨갛게 무친 잔치홍어), 돼지고기, 마요네즈로 버무린 과일 사라다(샐러드), 떡 두어 가지, 국수가 많이 들어간 갈비탕이었다. 갈비탕에 들어간 억센 뼈의 모습과 커다랗고 맛도 별로였던 무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여담이지만, 이렇게 '잔치국수'가 대중에게 싸게 공급된 것도 미국의 원조로부터다. 그 이전에는 국수를 잔치음식으로 쉽게 낼 수 있는 집은 흔치 않았다. 밀가루가 귀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1960년대 무렵부터 서울의 도심과 부도심에는 결혼식장이 정말 많았다. 당시 서울은 '청년 도시'였다. 부도심에서 더 먼 변두리에도 결혼식장이 꽤 많았다. 어머니 손을 잡고 수많은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때는 아이들을 '악착같이' 데리고 다녔다. 맛있는 걸 먹여줄 기회를 차 버릴 엄마들이 아니었다. 요즘은 결혼식이 거의 열리지 않는다. 내가 어렸을 때는 신생아가 한 해 100만 명이 넘게 태어났다. 이제는 20만 명을 겨우 넘는다. 지방 도시를 다니다가 참 황량한 장면을 보았다. 북유럽의 성 모양으로 만들었던, 한때 예뻤을 결혼식장이 장례식장 간판을 붙이고 있었다. 외관조차 제대로 리모델링하지 않아서 더욱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새로운 생명 탄생을 의미하던 결혼식장이 이제 한 인생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예식장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가 없을 소멸의 극적인 설치 미술처럼 보인다. 유치원이 망해서 노인요양원이 되는 것도 흔한 일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재를 선명하게 상징하는 그림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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