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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전신화상, 아빠는 당뇨합병증, 딸은 소아당뇨... 구청 직원은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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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전신화상, 아빠는 당뇨합병증, 딸은 소아당뇨... 구청 직원은 포기하지 않았다

입력
2022.12.29 04:0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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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숨은 영웅들] 성북구청 황정아씨
복지 사각지대 발굴하는 '통합사례관리사'
위기 처한 빈곤 가족 발견, 자립까지 도와

“아낌없이 베풀어주신 온정과 온기 덕에 어머님이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매년 연말이면 서울 성북구청 직원 황정아(39)씨에게는 감사 편지나 엽서가 종종 배달된다. 그의 직업은 ‘통합사례관리사’. 복지사각지대 가구에 보건, 고용, 주거, 교육 등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고 상담도 하는 사회복지사다. 황씨의 노력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이들이 고마움을 전해오는 것이다.

그는 특히 1년 전 성탄절 때 받은 편지가 기억에 남는다. “희망을 보게 해주셨다” “큰절 올린다” 등 서툰 글씨였지만 편지지 두 장에는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서울 성북구청 통합사례관리사 황정아씨에게 도착한 유미숙씨의 감사 편지. 황씨 덕분에 희망을 되찾았다는 내용이다. 황정아씨 제공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서울 성북구청 통합사례관리사 황정아씨에게 도착한 유미숙씨의 감사 편지. 황씨 덕분에 희망을 되찾았다는 내용이다. 황정아씨 제공

발신인은 성북구 주민 유미숙(52)씨. 두 사람의 인연은 지난해 6월 시작됐다. 당시 구청 민원실을 찾은 미숙씨는 다급한 목소리로 “어머니 병원비가 없다”며 도움을 청했다. 사정은 딱했다. 한 달 전 미숙씨 어머니(80)는 사고로 얼굴을 뺀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었다. 3도 화상은 혈관까지 손상돼 피부 이식이 필요한 중대 질환이다.

하지만 미숙씨에게는 돈이 없었다. 70대 아버지 앞으로 나오는 소액 연금이 생계의 전부였다. 딸이 해줄 수 있는 건 화상 연고를 상처에 발라주는 일뿐이었다. 상태는 나날이 악화됐다. 어머니가 극심한 고통으로 사경을 헤매는 지경에 이르자 미숙씨는 급히 화상 전문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시켰다. 병원비 문제로 고민하는 미숙씨에게 병원 측은 구청 상담을 권했다.

미숙씨는 마음의 짐을 금세 벗을 수 있었다. 성북구가 구민에게 사고 수술비를 지원해주는 안전보험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 병원비는 해결됐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미숙씨 자신도 돌봄이 시급했다. 어릴 때부터 소아 당뇨(제1형 당뇨병)를 앓아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고립된 생활을 이어왔다. 치아도 대부분 썩어 없었다. 아버지 역시 오랜 당뇨병으로 시력을 잃기 직전이었다. 여기에 월세마저 계속 밀려 임대보증금을 거의 다 소진해 거리로 내몰릴 위기였다. 누가 봐도 질병에 신음하는 빈곤 가족이었지만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은 적은 없었다.

서울 성북구청 통합사례관리사 황정아(가운데)씨가 동료와 함께 종암동의 한 가정을 방문해 상담하고 있다. 황정아씨 제공

서울 성북구청 통합사례관리사 황정아(가운데)씨가 동료와 함께 종암동의 한 가정을 방문해 상담하고 있다. 황정아씨 제공

황씨가 팔을 걷어붙였다. 일단 급한 불인 주거 문제는 지역 복지재단을 연결해 보증금과 월세 일부를 지원받게 해줬다. 미숙씨 아버지의 의료급여 신청을 도와 당뇨병 치료도 다시 받게 했다. 끝이 아니었다. 이 가족이 온전한 삶을 누리려면 ‘자립’이 반드시 필요했다. 통합사례관리의 궁극적 목표이기도 하다.

황씨는 거동이 불편한 부부 대신 미숙씨가 가장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봤다. 집안일부터 어머니 간병, 동사무소에서 서류 떼는 방법까지 각종 미션을 부여하고 다시 알려주는 식으로 차근차근 가르쳤다. 미숙씨는 소아 당뇨에 따른 저혈당 증세로 자주 의식을 잃는 탓에 초등학교 중퇴 후 ‘바깥’ 생활 경험이 없었다. 평생을 부모 보살핌 속에서 살아온 터라 처음엔 일상적 외출조차 힘겨워했다. 그러나 황씨가 인내심을 갖고 반년 넘게 ‘특훈’을 한 덕에 지금은 어머니 간병을 척척 해낼 정도로 성장했다. 미숙씨는 올해 3월 사례관리가 끝난 뒤에도 황씨에게 “감사하다”며 이따금 편지를 보낸다.

사례관리가 끝난 뒤에도 유미숙씨는 통합사례관리사로 자립을 도운 황정아씨에게 종종 감사 편지를 보낸다. 황정아씨 제공

사례관리가 끝난 뒤에도 유미숙씨는 통합사례관리사로 자립을 도운 황정아씨에게 종종 감사 편지를 보낸다. 황정아씨 제공

사실 복지사각지대 발굴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한국의 복지서비스는 ‘신청주의’ 기반이다. 미숙씨 가족처럼 당사자가 복지제도에 어두우면 혜택을 받기 어려운 구조다. 그래서 통합사례관리사들은 8월 일어난 ‘수원 세 모녀 사건’처럼 복지 공백을 질타할 때마다 중압감이 더해진다. 황씨는 “위기 상황만 잘 해소해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데, 작은 희망조차 없으면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이들이 국가 도움을 받게끔 우리가 최전선에서 뛰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일이 힘든 만큼 보람은 크다. 황씨는 몇 년 전 주거비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한부모 가족 사례를 들려줬다. 따돌림을 당해 등교를 거부하는 중학생 A양이 유독 눈에 밟혔다. 그는 “춤을 좋아한다”는 A양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소녀가 사회복지사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자리를 만들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황씨는 “A양이 자신감을 되찾아 환하게 웃는데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성년이 된 그는 댄서로 활동 중이다. 어머니도 위기에서 벗어나 작은 카페를 열었다.

“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에 저를 만나 어려움을 넘길 수 있게 작은 발판이 돼야겠다는 마음뿐이에요.” 황씨가 수줍게 웃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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