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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와 죄책감이 혐오와 경멸을 부르지 않도록···그 맹렬한 노력에 지지를 보낸다" [소설 심사평]

입력
2023.01.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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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문 심사평

이경재(왼쪽부터 시계 방향) 문학평론가, 한유주 소설가, 조연정 문학평론가, 은희경 소설가, 임현 소설가가 지난달 14일 2023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를 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이경재(왼쪽부터 시계 방향) 문학평론가, 한유주 소설가, 조연정 문학평론가, 은희경 소설가, 임현 소설가가 지난달 14일 2023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를 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예심을 통해 개별적으로 추천을 받은 응모작 중 인상 깊은 것들이 적지 않았다. 간략하게나마 그 제목만을 언급하자면, '조이의 눈', '칼잡이들', '없는 마음', '검은 우산은 괜찮습니다', '미즈치와 거북' 등이었다. 본심에서 주요하게 다뤄지지는 못했으나, 나름 완성도를 갖춘 소설들이었다.

최종적으로 논의의 대상이 된 응모작은 모두 네 편이었다. '로스웰식 농담'은 흥미로운 배경 정보를 바탕으로 여행 중 동행하게 된 인물들과의 일화를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외계인’과 ‘아메리칸 원주민’의 은유적 구도가 인상 깊었으나,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장면들은 너무 단조롭게 처리된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가끔 아닌 것들이'는 특별할 것 없는 상황 속에서 주고받는 의미 있는 대화들, 그로 인해 형성되는 인물 간 관계망을 능숙하게 표현한 소설이었다. 흐트러짐 없는 문장도 매력적이었으나 특히, ‘희주’라는 생동감 있는 캐릭터에 가장 호감이 갔다. 그런데 이 응모작의 장점으로 꼽힌 능숙함이 한편으로는 근래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신인 작가들에게 보이는 익숙함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BABIRUSA'는 당선작을 두고 가장 마지막까지 고민을 하게 한 작품이었다. 문장의 밀도와 기세가 압도적이었고, 도상과 제사(題詞) 등을 활용하는 방식이 단연 돋보였다. 단순히 낯선 텍스트를 직조하는 돌발적이고 일탈적인 표현 방법이 아니라, 이를 서툴지 않게 표현하는 논리와 구성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이 소설의 더 큰 가치였다. 아쉽게 당선작으로 선택되지는 못했지만, 머지않은 때 어느 자리에서건 이 작가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당선작으로 선정된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안으로 들이쳤지만'은 ‘체호프의 총’을 떠올리게 하는 도입부로 시작된다. 잘 알려진 격언대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총’ 역시 결국 격발되고야 마는데, 탄탄한 구성을 바탕으로 서사의 굴곡과 긴장감을 조성하는 솜씨가 뛰어났다. 더구나 두 인물의 비극적인 사연에서 주목하게 되는 증오와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말미에 이르러 더욱 단단해지거나 단숨에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고작 견디고 버티는 쪽으로 나아간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집 안으로 빗물이 들이치는 순간이 아니라, 제목이 암시하는 바대로 그 이후에 계속되는 생활을 그리고 있는 이 작가의 신중하고 성숙한 시선으로부터 비롯된 결말이었다. 무엇보다 증오와 죄책감을 혐오와 경멸이 대신하지 못하도록 애쓰는 노력에 대해, 그런 마음에 지고 싶지 않은 그 맹렬함에 지지를 보낸다.


심사위원 은희경, 이경재, 조연정, 한유주, 임현(대표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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