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 투자 세액 공제율 6%에서 8%로 인상 그쳐
미, 설비 투자·대만, R&D 투자에 25% 공제
TSMC, 마이크론, 인텔 등 혜택 덕 투자 확대
국내 기업 투자 비용 부담 상대적으로 커져
"해외 경쟁사와 투자 유치 싸움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
국내 수출의 20%를 담당하는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한 조세특례 제한법 개정안을 두고 업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치열하게 경쟁 중인 미국·대만·중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회사들을 대상으로 한 뒷받침과 비교해 그 수준이 크게 낮아 국내 기업이 원가 경쟁력에서 밀릴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경기 침체로 반도체 수요가 크게 줄면서 SK하이닉스에 이어 삼성전자까지 내년엔 적자를 볼 가능성이 높다는 우울한 전망까지 나오면서 업계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26일 국회와 업계에 따르면 여야는 23일 반도체 등 국가 첨단산업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8%,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로 정하는 내용을 포함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현재 대기업의 세액공제율이 6%인 것을 고려하면 이보다 약간 높아졌다.
재벌 특혜, 세수 감소 우려에 무색해진 반도체 지원 취지
여당인 ①국민의힘은 처음엔 2030년까지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20%, 중견기업 25%로 높이자는 입장이었다. 세제 혜택을 줄 테니 반도체 기업들이 더 적극적으로 투자를 해 달라는 주문도 했다. 하지만 ②더불어민주당은 특정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고 반대하며, 세액 공제율을 10%로 할 것을 주장했다. 그런데 ③기획재정부는 여당 안이 통과되면 2024년 법인세 세수가 2조6,970억 원, 2025년부터는 5조 원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난색을 보이며 야당안보다도 낮은 8% 공제를 제안했다. 결국 기재부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이를 두고 반도체 업계에서는 실망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도 "반도체 산업은 지금과 같은 하락기에 한계치에 달하는 투자를 해야 호황기를 대비할 수 있다"며 "경쟁국과의 지원 차이만큼 우리 기업이 경쟁력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 양향자 무소속 의원은 법안 통과 직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을 통해 "경쟁국은 파격적인 세액 공제와 더불어 막대한 보조금을 다음 세대를 위해 지불하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기업들과 인재 유출이 심각한 이슈로 대두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만, 중국, EU 파격적인 반도체 산업 지원 경쟁
우리 기업과 메모리,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시장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각국에서는 경쟁적으로 지원책을 제시하고 있다.
①미국은 8월 자국에 설비 투자하는 기업에 25%의 세액 공제를 제공하는 반도체 법안(Chips and Science Act)을 통과시켰다. 앞으로 5년 동안 390억 달러(약 49조7,600억 원)의 보조금도 추가로 지급한다.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기 위한 주정부의 세금 감면 혜택도 더해진다. 미국 텍사스주와 테일러시는 170억 달러를 들여 반도체 공장을 짓는 삼성전자에 20년 동안 재산세 85~90% 감면을 포함해 10억 달러(약 1조2,700억 원)를 인센티브로 준다.
②대만은 미국의 반도체 법에 대응해 지난달 현지 기업의 연구개발(R&D) 세액공제율을 기존 15%에서 25%로 높이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③중국은 아예 첨단 기술에 대한 투자의 경우 법인세를 면제하고 있다. 사실상 세액공제율이 100%인 셈이다. ④유럽연합(EU)은 이달 초 2030년까지 반도체 산업에 430억 유로(약 58조8,000억 원)를 투자하는 이른바 'EU 반도체칩법'(EU Chips Act)에 합의했다.
각종 혜택에 기업들은 즉각 반응하고 있다. 대만의 TSMC는 대만 정부의 지원책 발표 이후 성명을 통해 "더 많은 R&D를 수행하도록 장려하기 위한 정부의 제안을 환영하며 대만에 대한 투자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또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대한 투자 규모를 기존 120억 달러에서 400억 달러로 세 배 이상 늘리는 한편 독일 드레스덴에 반도체 공장을 새로 짓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마이크론, 인텔, IBM, 퀄컴도 미국 정부의 반도체법 발표에 발맞춰 천문학적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경쟁사 대비 투자 비용 늘어난 셈…"해외 투자 확대 검토할 듯"
국내 투자 환경이 경쟁사 대비 나빠지면 제품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걱정이다. 마이크론은 최근 삼성전자, SK하이닉스보다 먼저 신제품을 공개할 정도로 기술 격차를 좁혔다. 미국 정부의 막대한 혜택을 등에 업은 마이크론의 부상이 심상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파운드리 영역에선 삼성전자가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TSMC를 뒤쫓는 데 버거운 상황이다. 만약 TSMC가 생산 기지를 빠르게 늘릴 경우 시장 점유율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반도체 경우 물류비나 관세 부담이 적어 어느 지역에 생산 기지를 건설해도 크게 문제가 없다"며 "이만큼 혜택이 벌어질 경우 그동안 인력 등 운영상의 이유로 우리나라에 설비를 운영해 왔던 국내 기업들도 추가 투자할 때는 고민이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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